우리가 사는 방식 -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홍한별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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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보니 지난 8월 2일에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 전문을 나는 완독했다. 이 회상록의 주요한 인물인 수전 손택 얘기다. 완독 후 남긴 짧은 글에서 나는 대담이란 형식이 지닌 '우발성의 미학'이 모종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물론, 이는 순진한 생각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상대적인 개념화에 가깝다. 수전 손택은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사람과 결혼할 정도로 조숙한 사람이었고, 우리에겐 비평적 에세이, 소설가, 영화감독 등으로 각인되어 있다.(물론, 그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로서 보다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런 사람의 글에서, 다시 말하자면 벤야민과 아렌트를 존경했던 사람의 글에서 페르소나 밑의 맨얼굴을 보는 일은 거의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담의 형식에서나마 아렌트는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때론 그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질문자가 누구인지, 인터뷰의 시간 등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상록이 내게 특별했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달 전에 접했던 수전 손택의 인터뷰가 이뤄졌던 시기인 1978년은 회상록의 주요한 시간적 배경인 1976년 봄부터 1978년 겨울까지라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인터뷰가 어디까지나 특정한 지향과 형식 속에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의 목적과 방향 안에서 우리는 특수한 진실을 담보할 수 있을 뿐 그 사실이 한 인간에 대한 전적인 진실로 전화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전 손택 아들의 애인으로 그와 함께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서 경험한 수전 손택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그를 잊게 만들 만큼 생경하고 낯설다.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의 특성 자체 또한 내게 이 회상록에 흥미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수전 손택이 보여주는 예의 그 이성적인 우아함이나 담대한 행동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사람으로서, 회상록은 수전 손택에 대한 것이지만 표현과 문장 등은 온전히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작가의 개인적 특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어렵지 않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과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인간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거리, 강도 만큼 우리는 인간 수전 손택을 더욱 예민하고 깊이있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회상록이 맺고 있는 대담집과의 관계는 아니 에르노가 알츠하이머를 앓던 어머니를 간병했던  시기의 일기를 옮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가 <한 여자>와 맺고 있는 관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이란 사건을 통해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소읍의 소규모 소매상을 운영했던 여성의 삶을 아니 에르노 특유의 '평평한 글쓰기'로 회상하고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이야기할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해 그는 '한 여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담담하면서도 객관적인 문체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구축된 어머니와 아니 에르노와의 객관화된 거리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에서는 여지없이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입을 최대한 자제한 글쓰기를 통해서 구축하려고 했던 진실을 자신 스스로가 훼손시키는 결정 앞에서 망설였던 순간에 대해 쓰면서 이러한 강고한 진실의 의지가 드러내는, 아직은 포착되지 않는 문학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성격에 대해서 그 어떤 책에서보다 명확한 입장을 취했던 <한 여자>를 바로 그런 성격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문체를 통해서 배반하는 (결과적으로 사후적) 기획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이는 어머니라는 인물을 통해 특정한 사회 계급 여성의 삶이 지닌 '공통적인 것'을 구축하려는 문학적 기획 속에서도 혈육으로서의 어머니, 친밀한 영역에서 모든 감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관계 맺었던 어머니를 바라보는 한 딸로서의 간극을 보여줌으로써,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기획이 지닌 내면적 고통의 강도를 짐작케하면서도 특정한 문학적 기획을 수행하는 자아와 그러한 결심과 상관없이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서 한없이 처절하고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자아의 분열된 정체성을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글쓰기 기획을 깨뜨리는 또다른 자아를 노출시킴으로써 진실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가를 메타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이해되었다. 자신의 문학적 기획을 철저하게 배반하는 자신 안의 다른 자아를 바라보고, 이를 스스로의 당혹과 타자의 비난 앞에서도 진실의 이름으로 드러내겠다는 태도, 혹은 이를 가능케 하는 어떤 궁극적인 문학적 기획.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가 <한 여자>와 맺고 있는 이러한 구도가 수전 손택의 인터뷰집인 <수전 손택의 말>에 대해 <우리가 사는 방식: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라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상록이 취할 수 있는 문학적 의미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시그리드 누네즈 회상록이 지닌 문학적 기획은 아니 아르노가 한 개인 안에서 보여주었던 상이한 자아의 표현을 더욱 확장된 형태로 취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이 자신의 글을 통해 구축하려 했던 지극히 근대적인 성격의 작가적 정체성(자기동일화)은, 그와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인물인 시그리드 누네즈와 다른 사람은 결코 들여다 볼 수 없는 삶의 공간(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서의 관찰을 통해 여실히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간극에 대한 반응이 시그리드 누네즈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모종의 문학적 기획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의 회상록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로 한정해서 이해해야 하는 '인간 수전 손택'에 대한 '이야기'이자, 보다 넓은 의미의 문학적 기획의 구도 안에서 '진실'을 구축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수전 손택이 쓴 글과 기자 인터뷰의 반대편 극(pole)을 구성하면서 우리에게 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묻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가 ‘우리 어머니‘라는 말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아서 나도 ‘너의 어머니‘라고 말하자니 어쩐지 어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언제나 수전, 셈프레sempre 수전이었다. - P17

그런데 작가 레지던시는 왜 가려는 거야? 수전이 궁금해했다. 자기라면 그런 데는 절대 안 갈 거라고 했다. 한동안 어딘가 틀어박혀 일을 해야 한다면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몇 번 그렇게 했는데 아주 좋았다고, 룸서비스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신들린 듯이 일했단다. 하지만 시골 휴양지 같은 곳에 고립되어 지낸다니 너무 우울하게 들린다고 했다. 게다가 시골에서 무슨 영감을 얻겠다고? 플라톤도 안 읽어봤냐고 했다(<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나는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나무와 시골 풍경은 나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P40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그러듯 몸무게에 연연했다. 담배를 얼마나 피우는지 글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 수전의 몸무게는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곤 했다. 글을 많이 쓸 때는 보통 암페타민도 먹었다. 마흔 살이 넘은 뒤에는 마른 쪽보다는 과체중에 속할 때가 많았다. 또 많은 여자들이 그러듯 선호하는 다이어트법이 있었다. 여섯 끼를 굶고 6파운드 줄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 P47

나는 수전 특유의 과장법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에 든 예술 작품은 모두 걸작이고, 감동을 준 예술가는 모두 천재이고, 용감하게 행동한 사람은 모두 영웅이고,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헬레네 아미녀 아도니스가 있었다. - P49

수전은 생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들을 미심쩍어 했다. 본인은 월경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취급했고 불편을 과장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여자들이 여자의 신체가 연약하고 섬세하다는 낡은 믿음에 빠져 있는 거라고 했다. 사실 수전은 사람들이 신체적 감정적 고통을 과장하거나 과잉 반응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 P51

수전은 페미니스트였지만 여자들을 성에 안 차 했다. 수전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있는데, 아주 똑똑한 남자라 그 사람 말을 듣기를 좋아했다. 유부남이었지만 단둘이 만날 때가 많았다. 가끔 그 사람이 아내를 대동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늘 만남이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 이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이 하는 말이 어째서인지 따분해진다고 수전은 말했다.
수전은 아주 똑똑한 여자와 대화할 때조차도 똑똑한 남자와 같이 있을 때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에 답답해하기도 했다. - P53

수전을 추모하는 글에서 나는 수전이 오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글이 발표되고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 수전 손택이 얼마나 오만했는데! 내 말은 수전은 어떤 사람의 출신이 아무리 별 볼 일 없고 빈한하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수전은 계급에 기반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았다. - P62

수전은 타고난 멘토였으나... 가르치기를 싫어했다. 될 수 있으면 가르치지 말라고 말했다. 아예 안 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라고 했다. "내 세대 최고의 작가들이 선생질하다가 망가지는 걸 봤지." 수전은 작가의 삶과 학계의 삶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기는 스스로 학계에서 물러난 사람이라고 했다. - P73

수전이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는 유머 감각이 없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성깔 있는 사람으로 비칠 때가 많았다. 특히 청중과 질의응답 시간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를 잘 냈고(눈빛으로 여기 바보들만 모여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쉽게 모욕감을 느꼈다(수전은 늘 같은 것 한 가지가 불만이었다. 미국인들은 유럽인들과 달리 교양이 없고 무지하고 보통 쓰잘데기없는 질문을 한다는 것). - P85

20쪽짜리 글을 쓰기 위해 책장 한 칸을 다 채울 만큼 많은 책을 읽고, 몇 달을 들여 글을 쓰고 또 고쳐 쓰고, 타자 용지 한 묶음을 다 털어 쓰고야 비로소 완성했다고 하는 것. 진지한 작가에게는 이게 보통이었다. 물론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다("보통 어떤 글이든 다 쓰고 나면 쓰레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거든."). (독서처럼) 즐거워지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한 청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다. 문학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수전은 말했다. 작가가 결과물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오히려 주기적으로 회의감에 시달리지 않는 작가의 글은 아마도 쓰레기일 것이다). - P96

친구들도, 중요하거나 위압적인 사람이 아닌 한, 수전의 위협과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수전은 "잘못된 것을 지적"라거나 "바로잡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그게 진실의 문제라는 듯이 말하곤 했다. 사람들에게 말을 해줘야 한다고. 하지만 수전은 사정없이, 다른 사람이 옆에 있건 없건 가차 없이 지적하곤 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 앞에서 더욱 신랄해지는 것도 같았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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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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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제외하곤, 김이듬 시인의 이전 두 산문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총서임에도, 파리라는 어찌보면 클리셰가 되어버린 도시에 대한 국내 작가의 글을 더 이상 읽기가 꺼려졌다. 슬로베니아란 도시는 내 관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너무도 간단한 이유로 그의 글은 아직 저편에 머물러 있다.


시대는 달라졌고, 세상은 변한다. 전국에서 하나 둘 늘어가면서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동네책방' 혹은 '독립서점'은 김이듬이란 시인을 통해 '책방 이듬'으로 탄생하였고, 그는 파리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셰익스피어앤컴퍼니' 같은 서점을 꿈꾸며 '책방 이듬'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산문집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책방 이듬' 시즌1을 마치며" 그가 기록해나간, 시인이 아닌 '책방주인' 김이듬으로서의 일상 분투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애초 그의 예상보다 훨씬 버거운 현실 속에서 그는 거짓 긍정이나 자기 위안 등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의 시가 그렇듯, 현실을 그다운 문체로 철저하게 우리의 인식 위에 아로새긴다. 그것은 예의 어떤 관조나 성숙을 가장하지 않는다. 그의 감각을 뚫고 지나가는 현실은 그대로 그의 언어를 통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언어로, 하지만 아름답게 우리를 눈뜨게 한다. 그의 문체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연상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TV 대담에 나와서 글인지 말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결을 지닌 표현을 하고, 그 표현은 다른 누구에게도 듣기 힘든 종류의 것임을 직감하게 하는.


그가 철저하게 기록한 실패의 목록들은 '전기적 환상'에 사로잡힌 글이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성공적인 삶에 대한 반테제이자 사람이 곧 글인 형식의 어떤 경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원형 탈모와 남모를 도움 같은 현실적 어려움의 증상을 겪으면서도, 결코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어느새 사람을 좀더 향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런 기록이 문학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문학적일 수 있을까.



일종의 자기 파괴일까? 시 창작을 등한시한 채 문학을 말하는 거, 낭독회와 북 토크, 인문학 특강 등을 여는 거, 동네 사람들과의 소소한 독서 모임을 이끄는 거. 심지어 책을 팔고 차를 팔다니. 어쩌면 문단에서 미끄러져 창작을 폐기하고 문학과 예술을 향유하는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작동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다. 하지만 나는 후회나 자기 연민의 시기를 통과했어. 고귀하고 관능적이며 황홀한 문체도 잊어버렸어. 무력감의 잉여적인 느낌이 든다. - P125

한 인간은 우주 같아서, 서로 부딪힐 때 그 내면에 팡팡 터질 준비를 하는 위선과 오만, 광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 - P266

책방이 성장 혹은 발전하는 것까지는 바랄 수 없다. 모쪼록 꾸준히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위태롭지 않게, 기왕이면 신나게,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고 싶어질 만큼. - P270

누군가를 만나 자신이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한 편의 시를 읽고 예전과 다른 사람을 꿈꾸는 것.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하얀 연기로 변하는 것처럼 물리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그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 P278

시인은 말한다. 오늘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아름다운 언어, 감동적인 말, 자유로운 소통이 불가능했던 어린 시절의 탓으로 돌리기엔 무참하다. 아직 나는 시인이 아니다. - P295

노점상에게도 일용직 노동자에게도 독서할 여유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과속하고 추월해서 우리를 사고로 몰아가는 세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버스를 운전하다가 신호에 걸렸을 때, 떠오르는 시 구절 하나를 메모하는 패터슨이 나오려면 일한 만큼 최소한의 휴식과 임금은 보장되어야 한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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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철부지 -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의 기억 트랜스로컬 감성총서 3
최유준.장상은 지음 / 책과생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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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던 지역방송의 대학가요제와 주요인물에 대한 분석을 통해 80년대 이후 사라져 버린 듯한 로컬리즘(지역문화)의 행방과 존재 의의를 묻고 있다. 


저자들은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청년문화-대학가요-민중가요라는 개념적 일별 속에서 사라져 버린 진실, 즉 세 범주 사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연속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를 저자들은 김민기와 김종률이라는 실존인물 간의 지역-횡단적(트랜스로컬) 영향 관계, 실제 교류를 통해서 증명해내고자 한다.


80년대 이후 더욱 강고해진 중앙집권화는 건강한 로컬리즘(지역문화)의 상실, 부재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또한 존재한다. 전국 규모의 전일방송 대학가요제는 80년대 새로이 들어선 정권 하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이는 통치의 효율성을 중히 여기던 권위주의 정권이 지역방송의 문화적 역할 및 기능에는 관심이 없고 지역방송을 정리하고 중앙방송에 편입시킴으로써 언론 통제의 집중화/일원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의도의 부수적인 효과로 지역방송은 지역의 문화예술을 결집시키고 알리고 순환시켜서, 결과적으로 축적시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역 문화의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많은 부분 상실하고 만다. 그리고 이는 헌법에는 존재하지만, 9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된 지방자치제와 함께 뒤늦게 회복되기 시작한다.


이 문제는, 잠정적인 가설 형태로, 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되고 80년대 본격화된 강남 개발이 사실은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라는 문화적 효과를 발휘하게 된 사실과 연계해서 이해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즉, 서울은 강남(사실상 분당, 수지, 대구의 수성, 광주의 봉선 등은 문화적 기호로서의 '강남'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을 전국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따라야 할 라이프 스타일의 모델로 구축함으로써 서울 집중이라는 흡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고, 지방은 정치적으로 자치가 지연되고 문화적으로 로컬리즘에 대한 가치와 의의를 찾는 일이 드문 일이 되면서, 지역 문화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지역방송 기능의 (사실상의) 부재로 서울로의 집중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압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모모는 철부지"라는 노래 뒷편에 존재하는 역사와 그것이 유발하는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지역을 통해, 지역을 넘어서 전체를 사유하게 한다. 책이 <트랜스로컬> 총서에 편입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1980년 말에 신군부 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언론과 방송 통폐합 사건‘이다. 이 사건이 대학가요제에 미친 의미심장한 결과가 ‘전일방송‘의 해체와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의 중단이었다. - P71

‘청년문화‘와 ‘대학가요‘, 그리고 ‘민중가요‘의 범주를 관통하는 김민기의 독특한 위상은 1970년대 말에 좀 더 의식적으로 행한 음악 실험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그것은 <공장의 불빛>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는데, 그 어떤 기존의 양식적 범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1980년대로의 전환기에 김민기가 광주의 로컬 음악과 맺었던 인연이 있다. - P128

혹시 현재의 수도권 중심의 음악 생태계는,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억압과 언론 방송 통폐합의 후유증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문화적으로 치유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 P163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가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국으로 파급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전일방송이 없어지고 나니 로컬리즘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 P170

"언론통폐합으로 지방이 사라졌습니다. 방송은 지방의 문화를 집약하는 곳인데 방송국이 사라지면서 지방의 문화도 없어져 버린 겁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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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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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읽기/쓰기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장폴 사르트르의 <말>과 비견된다. 다만, 후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부여와 자기의식 속에서 진지한 어조를 띠고 있다면, 오에 겐자부로는 그 어떠한 자부와 진지함과는 거리를 두는 편안한 얼굴로 우리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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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경쾌한 에디션)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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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닌 가치를 논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수전 손택이라는 인물이 대담의 형식을 취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살아 생전 그는 미디어와 다른 이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데 신경을 쏟았던 사람으로, 그 어떠한 매개와 설명, 보충, 삭제 등 없이 인터뷰 전체가 오롯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우리를 그러한 통제를 벗어난 그와 마주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를 통해 글만으로 접근가능한 수전 손택이라는 사람의 리얼한 모습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지식인 셀러브리티에 대한 흔한 가십성 관심과 관음증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절제되고 정리된, 그래서 미처 가 닿지 못했던 수전 손택이라는 사람이 어느샌가 대화 사이로 출현하고 마는 것이다. 인터뷰어인 조너선 콧은 수전 손택이 가진, 인간이라면 불가피하게 가질 수밖에 없는 편견 등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질문을 던지고, 손택 역시 그렇게 자신에 대한 신화가 한꺼풀씩 벗겨지는 대답을 함으로써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에게로 데려간다. 이는 온전하게 통제될 수 없는 '말'를 매개로 벌어지는 하나의 우발적인 사건이며, 이는 명확하게 진실의 미학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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