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신문사 및 잡지사 기자나 또는 방송 작가 등이 현장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지은이와 같이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을 지낸 것은 특별한 경험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그 경험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고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는 책이 <대통령의 글쓰기>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도 그 바쁜 와중에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는데, 그리고 이렇게 잘 썼는데... . 도전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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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꿈
최문순 지음 / 고즈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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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요즘 강원도 춘천엘 자주 가게 된다. 춘천은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이곳도 6.4지방 선거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거리의 높은 빌딩에 걸려 있는 출마자들의 현수막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기초 단체와 광역 자치 단체의 장, 의원에다 교육감이 되어 보겠다고 내미는 얼굴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진정 주민을 위한 좋은 후부의 선후를 분간하기 쉽지 않다. 내가 사는 지역도 그런데 하물며 남의 동네임에랴!

지금의 강원도 지사는 최문순이다. MBC 기자로 시작해 노조 위원장을 거쳐 사장까지 지내고 국회의원을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나는 그가 이번 선거에 나와 연임에 도전하는가가 궁금했다. 춘천 시가지에 나부끼고 있는 그 많은 후보 현수막 중에 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궁금증은 더 했다. MBC 사장이었을 때에도, 국회의원일 때에도 가끔 만나는 그에게서 수수한 촌부(村夫)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는데, 그리고 서민으로 살아가는 나와의 근친성(近親性)으로 인해 위로받곤 했는데 그 많은 후보군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서운한 일이다.

그런데 그 궁금증이 의외의 곳에서 쉽게 풀렸다. 일을 보고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처가에 들렸다. 장인어른의 서재에 들려 서적들을 일별하던 중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이즈도 크지 않고 그렇게 두터운 책이 아닌데도 내 눈에 잡힌 것이. 도리어 이 책은 그 반대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규격에다 쪽수도 200을 간신히 넘고 있었으니까.

책의 제목은 <감자의 꿈>(고즈윈). 그는 이 책에서 정치적인 언사는 조금도 밝히고 있지 않았다 그냥 서민 아닌 서민으로 살아오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는 책이었다. '감자'는 강원도를 상징하는 농산물이다. 이것은 종종 강원도 사람들을 조금 비하하는 듯한 말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나는 이 '감자'라는 단어에서 꾸밈없는 진실과 천진난만함의 속성을 더 자주 떠올린다. 여기서 '감자의 꿈'은 최문순의 꿈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최문순에게서 정치인(도지사)이 아닌 동화 작가의 면모를 느꼈다. 높임말 문장부터가 그랬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묻어나는 자기 겸손과 꾸밈없는 순수성이 그랬다. 이런 것은 동화의 특징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선거를 겨냥해서 찍어낸 책들에서 읽는 과대 포장성 글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이 책은 모두 여섯 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감자의 꿈, 감자의 희망, 감자의 사랑, 감자의 평화, 감자 마을 에피소드들, 내가 본 문순C 각 파트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여기서 수식어 '감자의'를 뺀 꿈, 희망, 사랑, 평화 등은 최문순이 목표하며 살아왔고 또 앞으로 추구해 나갈 그의 가치들이다. 이어‘감자 마을 에피소드들'은 그 가치의 살아있는 예들이다.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Part6. '내가 본 문순C'이다. 사람을 치우치지 않고 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각이 중요하다. 최문순을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함께 생활한 사람들의 '최문순 관(觀)'을 담은 '내가 본 문순C'에서 공통된 한 어절을 집어낸다면 그것은 '인간 사랑'이 아닐까 싶다. 또 '인간 사랑'을 받들고 있는 단어들도 언급해야 할 텐데. 순수, 진리, 정의, 신뢰, 섬김 등이 보조 단어들이다.

나는 이젠 정치꾼이 아닌 진정한 정치인이 지역과 나라를 책임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에 안타까워할 수만은 없다. 국민이 나서서 진정한 정치인을 만들고 세워나가야 한다. 최문순이 그런 정치인 중 앞 자리에 위치해 있지 않을까.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생각하는 최문순이니 말이다. '모든 감자는 귀하다'는 그의 책 첫 글의 일부에 그의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부기한다. 아울러 그의 승리를 멀리서 간절히 기도한다.

"감자 한 알 한 알이/모두 귀한 감자들입니다./누구도 버릴 수 없습니다./감자 한 알 한 알이/존중받고 존엄하게 여겨지는/감자밭/못생긴 감자도 찌그러진 감자도/굼벵이 먹은 감자도/귀퉁이에서 자란 감자도/덜 자란 감자도!/모두가 귀하게 여겨지는 감자밭!/그것이 감자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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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다시, 새롭게 -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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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읽어줘서 미안한 책이 있습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책이 특히 그렇습니다.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고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는 책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 책들입니다. 약자를 생각하며 그들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이야기의 책도 빨리 읽어주어야 할 것들입니다. <지선아 사랑해>의 온전히 갖춰진 이름은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입니다. 이 책은 늦게 읽어서 정말 미안한 책입니다.

 

이지선은 2007년 7월 30일 교통사고로 전신 55% 3도 화상을 입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한 불굴의 사람입니다. 살아도 사람 꼴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진단도 보기 좋게 뛰어 넘어 그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행복을 책으로 담아 낸 것이 <지선아 사랑해>(2003년 출판)와 <오늘도 행복합니다>(2006년 출판)이었습니다.

 

2010년 위의 두 책을 개정 합본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이 1판 24쇄로 되어 있으니까 무척 많은 부수가 판매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지선이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 승리한 '화상둥이'의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척 모습에 있다기보다 내면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정금 같은 사람의 고백이어서 감동이 더 큽니다.

 

이 책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감명 깊에 읽은 책을 주위에 자주 소개해 주는 편입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 책을 사서 선물하기도 합니다. 저희 아이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독서에 한해서 말한다면 제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 <지선아 사랑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내 윤경이가 지난 1월 3주 일정으로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한 목회기관의 도움으로 다녀온 비전 트립이었는데, 그 일정 앞자리에 화상을 극복하고 우뚝 서 있는 이지선 작가와 만남의 시간이 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 한 가지 약속만으로도 비전 트립 전 일정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약한 요즘 아이들에게는 고통을 극복하고 믿음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장애인과의 만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윤경이도 나름대로 작가 이지선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에게 직접 싸인(sign)을 받기 위해서 책도 한 권 준비하고 또 그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해서 정독하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이지선 작가를 만났을 때 그가 아이들 숫자만큼 자신의 책을 가지고 와서 일일이 싸인을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지선 작가는 인터넷 상으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미리 익히고 싸인을 해 주어 아이들에게 놀라움을 더 해 선물했다고 합니다.

 

윤경이는 가지고 간 한 권에 언니에게 선물로 줄 양으로 싸인을 받아 왔습니다. 싸인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현경 ♡, 사랑과 희망을 담은 이지선 싸인, 2014. 1. 18. 윤경이의 ♡ 담아 이지선"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들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아이를 통해 책을 읽게 되었을 뿐 아니라 비행기를 가장 오래 타고 내 손에 들어온 책이 되기도 합니다. 인천공항에서 미국으로 다시 인천 공항으로, 여기에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탄 것까지 계산에 넣으면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제가 외국 여행을 이렇게 멀리 그리고 오래 한 적도 없으며, 가끔 미국 책을 인터넷으로 신청할 때도 편도이기 때문에 여기에 비할 바 못 됩니다.

 

작가도 귀한 분이고 또 오랜 여행과 동행했던 책인데다 작가가 직접 싸인까지 해 준 책이기 때문에 읽는 제게도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런 대 봉투로 책 표지를 입혔습니다. 저는 소중한 책은 이렇게 겉표지를 싸서 읽습니다. 주로 오래 손에 잡고 정독할 필요가 있는 이론서들이 여기에 해당되지만 간혹 이지선의 <지선아 사랑해>처럼 마음이 따뜻한 작가가 쓴 책이거나 내가 늦게 읽어 미안한 책들도 싸서 읽게 됩니다.

 

이 책은 모두 여섯 개의 선물의 장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삶, 고난, 기적, 감사, 사랑, 희망이 그것입니다. 그 사이 사이에 COVER STORY와 작가와 각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쓴 글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선물의 장 여섯 개는 작가 이지선이 가혹한 병고 속에서 경험한 일들을 주제로 묶어 놓은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내면을 잘 다스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이면 누구나 쉽게 눈치 챘겠지만 이 여섯 개의 주제는 또한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강조하신 것이기도 하고, 그분이 몸소 걸어가신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손가락은 잘려 나가고 얼굴은 뒤틀려 있지만 내면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이 '삶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30번이 넘는 수술을 하면서 그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엄혹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 너를 세상 가운데 반드시 세우리라. 그리고 힘들고 아프고 병든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리라"(69쪽).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우리는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 간의 세상 약속과는 달리 반드시 지켜지며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별해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작든 크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켜집니다. 그것을 작가 이지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살아도 사람 꼴이 안 된다는 의사들의 진단을 비웃듯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특별한 사람으로 우뚝 섰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기적을 발견하고 감사하고 있는 이지선입니다. 그는 기적을 믿는 사람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38년 된 중풍 병자를 말씀으로 고치신 주님의 기적도 믿지만 덤으로 사는 장애인의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바라보는 것도 작은 기적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지선은 지금 누구 못지않게 평안한 삶, 기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는 긍정의 마음을 가질 때 나올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가 열 손가락 중 양 손 엄지만 빼고 여덟 개의 손가락을 절단했으면서도 더 많이 자르지 않아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왜 하필 나냐고 하나님께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회복 불능에 가까운 화상을 당했으면서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하나님 백성의 자세입니다.

 

그는 그 때의 마음을 이렇게 집약된 하나의 시로 고백합니다.

 

감사해요 /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지만 / 이렇게 행복한 날도 맞게 하시고 더 기쁜 날을 소망하게 하신 주님 / 온 몸에 남은 상처, 짧아진 여뎗 개의 손가락. / 이 모든 것은 주님이 날 사랑하신 증거, / 그 사랑이 다녀가신 흔적임에 감사합니다.(129쪽)

 

이지선은 이 책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늘 고백하고 감사합니다. 마치 고통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 다윗과도 같이 그는 고난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감사히 감당하겠다고 말합니다. 고통의 종류도 다양한 것입니다. 물질적 궁핍에서 오는 고통도 있을 것이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겪는 고통도 있을 것입니다. 영적 피폐에서 감당해야 할 고난의 정도는 그 어느 것보다 클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지선의 고백록 <지선아 사랑해>를 권하고 싶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에게 애끓는 사정들이야 다 있겠지만 그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지선은 '삶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1등을 하기 위해 치닫는 사회에서 1등의 소중함도 소중함이지만 그 외의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쉽게 목숨을 던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지선의 사랑은 우주적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가 3급 장애의 몸을 갖고 사회에 당당히 서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며 재활 상담과 사회 복지를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들의 사랑이 모여 미국서 공부하며 홀로서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유별납니다. 아빠 엄마 오빠 등 가족 전체가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끈끈한 사랑으로 엮어진 가족 공동체의 사랑이 온갖 간난을 이겨내고 이지선이 우뚝 설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뒤질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세울 것도 없는 가정, 그 가정을 붙들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셨고 가족 전체가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니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 삶의 근거가 됩니다. 이 희망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는 사랑이 있어 희망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288쪽).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는 말씀도 이런 점에서 삼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삼자 종합의 문제로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지선도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희망을 꿈꾸고 다시 사랑을 나눌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292쪽).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시각입니다. 지난 한 때 장애가 없는 사람을 '정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정상인'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편향적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장애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장애는 '틀리다'는 개념이 아니라 '다르다'는 개념으로 읽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지선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애인 관(觀)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뒤돌아보지 마세요. 그리고 제발 속으로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무심코 던지는 짧은 말고 몇 초간 더 머무르는 시선, 그리고 '쯧쯧쯧' 혀 차는 소리가 이 나라 장애인들을 집 안에 가두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 주세요."(180-181쪽).

 

이것은 사고 뒤의 삶이 그에게 새롭게 알려준 비밀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가 만약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밀을 알 지 못했을 거란 말이지요. 그는 이런 점에서 사고 이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정말로 중요하고 정말로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고난을 축복이라고 에필로그에서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는 이 책에서 몇 가지 단어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킨 단어들이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오까'는 화상으로 인해 입 주변 부위가 당겨져서 'ㅂ' 발음이 되지 않아 '오빠'를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또 '화상둥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것도 사전에 나오지 않은 단어입니다. '-둥이'라는 접미사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어떤 특징을 나탸내는 어린이(막내둥이, 귀염둥이 등)를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이지선은 자신이 '화상'을 입은 어린이(-둥이)와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두 개의 생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태어난 날과 사고를 당한 날이 그것입니다. 사고를 당하고 죽게 된 몸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세우시기 위해 살려 주셨고 그 때를 덤으로 살 인생으로 규정합니다. 그는 정말 사고를 당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9년 동안 30회가 넘는 수술과 부단한 재활 노력 끝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서서히 성장해 가며 생활에 적응해 가듯이 말입니다.

 

그는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흘러온 일들이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간여하신 결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 분께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눈물로 쓴 책 <지선아 사랑해>를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저는 기대합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앞으로도 펼쳐질 것입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이 모습이 아니고는, 그간의 아픔을 알지 못하고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들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며, 이런 모습의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분명 제게 맡겨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ㅣ여기에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204쪽).

 

이 책은 문학도서 전문 출판사인 (주)문학동네에서 출간했습니다. 사고로 인한 병상의 고통을 사랑과 희망으로 승화시킨 이 글은 수기에 속할 것입니다. 그의 깊은 사고와 탄탄한 문장력이 높은 문학성까지 담지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측에서도 <지선아 사랑해>를 만들면서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책 페이지마다 끈으로 책을 묶어 놓은 듯한 장식을 붙였습니다. 버릴 것이 한 쪽도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쪽수 번호를 매기면서 옛날 타자 글씨체를 차용했고 그것도 좀 비뚤게 찍어 페이지 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형적으로 매끈하고 균형 잡힌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대한 반발의 의미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지선은 이 책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보다 내면적인 아름다움 영적인 미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분명 시대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외면적 아름다움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때, 내면의 빈곤 상태를 초래하게 되고 그것은 삶의 황폐함으로 쉬 연결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편집 디자인도 작가의 의도를 잘 읽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승자독식주의가 팽배하고 약육강식의 경쟁주의가 세상을 호령하고 있는 이즈음 약자를 생각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자는 작가의 의도는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주님의 생각이자 사역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기적을 경험해서 사랑이 만연된 희망의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피력하면서 어려운 시절인 지금 이지선의 <지선아 사랑해>를 읽고 마음을 세척하시는 효과를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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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독서 명품인생
이상욱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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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화가 세상을 온통 뒤덮고 있는 판에 '독서'에 대한 책이라니. 나는 세상을 역린(逆鱗)하는 듯한 이러한 용기에 가끔 연민을 느껴왔다. 학교 직장 심지어 가정에서도 온통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지배하고 있다. 아니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거리를 활보하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는 세태이다. 이런 마당에 '책 좀 읽어시오!' 그것도 '명작을 읽어시오!'라는 외침이 통할 리가 없을 것 같다.

아니다. 통할지도 모른다. 인터넷 문화를 앞장서 이끈 빌 게이츠(William H. Gates)는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그의 주위엔 늘 책이 놓여 있으며 특히 장거리 여행을 갈 때에는 가방 가득 책을 담아 떠난다고 한다. 인터넷 문화를 이끄는 힘을 그가 책에서 공급받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의 끈끈한 생명력을 그는 증명해 보이고 있다. 사람이 역사의 주인인 이상 책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앞으로도 사람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시점에 독서에 대한 책이 한 권 출판되었다. 이상욱의 <명작 독서 명품 인생>(예영커뮤니케이션)이 그것이다. 한편 반갑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 그의 이 책이 울림 없는 외침이 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출판 산업이 침체되어 있는 가운데 세상에 던져진 독서 관련 책이어서 더 그렇다. 지금 그나마 겨우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책은 처세술과 건강 그리고 재테크 관련 도서 정도라는데, 명작 독서로 명품 인생을 만들기 위한 책이 독자의 반향을 적게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책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진리로 통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 무분별한 인터넷으로 인해 그 진리가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점검해 볼 때이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볼 때이다. 독서에 대한 책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관련 도서가 독서에 대한 기술을 제시하고 지적 만족감을 맛보게 하는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서로 인해 계산에 밝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상욱의 <명작 독서 명품 인생>이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면 나는 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을 강조했고 '정신'에 가치를 부여했으며 '바른 삶의 방법'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정신적 건강에서 진정한 행복을 꿈꾸고 평화를 그리고 있다. 그가 명작 독서법을 '명작을 읽고 명품 인생을 살게 하는 독서법'이라고 정의한 것에서도 이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11쪽). 책읽기가 자기를 채워 남을 지배하고 세상에 군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에 저자는 강력 반대한다. 그의 책읽기는 문·사·철(文·史·哲)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세계로의 입문을 뜻한다. 그 방법으로 1941년 로빈슨(Francis Robinson)이 대학생들의 학습 전략으로 개발한 SQ3R's를 원용하고 있으며, 이것을 저자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독서법에 적용하고 있다.

<명작 독서 명품 인생>의 총 면수는 351쪽이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이 속에 책과 관련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도서가 등장한다. 이 책들은 역사에 쉼 없이 기여한 것들이고, 저자들은 인류 역사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그가 인용한 책과 저자들과 책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예상한 것 이상의 유익을 얻게 된다. 이 책은 모두 합해 6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소개하면, 1부 세상 읽기:세상을 읽어라. 2부 개관하기(Survey):명작 세계를 보라. 3부 질문하기(Question):명작적 질문을 하라. 4부 보물찾기(Reading):보물을 찾아라. 5부 내면화하기(Recite):명작화하라. 6부 표현하기(Review):명작으로 표현하라. 여기에 더해 앞에 추천의 글과 여는 글이 있고, 뒤에 참고문헌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책 전체의 1/3이 넘는 면수를 할애해서 1부 세상읽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나만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독서를 강조하고 있다. 세상과 동떨어진 독서는 오히려 성숙한 인간으로의 삶에 해가 된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독서의 목적이 물질문명의 팽배로 인하여 쇠퇴해가는 인간성 회복이 되어야 하고, 사회악으로부터 '나'를 구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사회에 대한 최선의 방안이 되어야 한다(30쪽)고 말하는 것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고민한 현대 문명이 가지고 있는 7대 사회악에 암시 받아 지금 우리 인류 앞에 놓여 있는 난제를 여섯 가지고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 환경문제-모두의 것으로 살기 ▲ 전쟁문제-약자와 함께 살기 ▲ 빈곤의 문제-가난한 자와 함께 살기 ▲ 교육문제-능력이 부족한 사람과 함께 살기 ▲ 질병의 문제-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 종교문제-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등이다. 이것을 하나의 어절로 요약한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될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이를 위해서 명작 독서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본주의가 장점이 많은 경제 체제지만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무한 경쟁에서 오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승자 독식주의 또 극도의 이기주의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한지 오래이고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돈의 노예로 추락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저자는 해결 대안으로 문·사·철(文·史·哲) 중심의 인문학 독서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동서양의 수많은 예들을 들이대고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약자들을 위해 큰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 바로 인문학 독서로 깨달음을 얻은 결과라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아프리카 오지로 들어가 흑인들을 위해 인술을 베푼 알버트 슈바이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유대인을 대신하여 죽은 막시밀리안 신부, 태평양의 나환자 섬에 들어가 헌신하다가 죽은 다미앵 신부,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 청년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 등을 들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문학 독서로 깨달음을 얻어 이런 결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 그의 주장을 보완하기 이해 소개한 책과 사람들은 남녀노소, 계급과 계층 그리고 종교를 따지지 않는 것에서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또 소크라테스의 책에서부터 최근에 출판된 도서까지 독서에 관계 되는 것은 놓치지 않고 인용하고 있다. 목회자인 저자가 가톨릭 신부, 유교의 성리학자 심지어 불교의 스님까지 끌고 와서 논지를 보충하고 있는 데서 그의 열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의 논지는 많은 곳에서 성경으로 귀결시키고 있음을 본다. 성경을 철학과 함께 인류의 정신 유산인 다양한 고전들에서 길어 올린 샘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63쪽). 인류가 물려준 유산 중 성경만큼 귀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상욱은 이 책에서 통섭형 인간형을 강조하고 있다. 통섭(統攝)은 지식의 대통합, 즉 인문학과 자연 과학의 통합을 의미하는데(81쪽), 중세의 사람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박물학자들을 들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의 완성자라고 일컫는 다산 정약용을 통섭의 사람으로 꼽고 있다. 사회가 전문화 다양화되고 있는 때에 어울리지 않는 주장 같기도 하지만, 저자는 한 가지에 정통하면서 다른 것에는 무지한 반신불수의 인간형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두루 꿰뚫는 전인적 교양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산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쓴 문과적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강의 배다리(舟橋), 수원 화성 설계, 기중기 발명, 의학서(麻科會通) 저술 등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과학자였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통섭형 지성인이었다(78쪽).

나는 솔직히 책 읽기에 대한 테크닉은 무시하는 편이다.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의 책은 정독이든 속독으로든 나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욱의 <명작 독서 명품 인생>은 좀 다르게 소화해야만 했다. 이 책의 2부에서 6부까지는 상술했듯이 SQ3R's 독서법을 저자 나름으로 재해석해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문사철을 독파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았다. 그가 제시하는 독서법에 따라 책을 읽어간다면 통섭의 지성인, 실천이 따르는 지성인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저자는 청소년 독서 지도로 오랜 시간을 헌신해 왔다. 그는 인문학 독서로 학생들이 변하고 그 부모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는 많은 예를 직접 보아온 산증인이다. 이 책도 그것의 결과물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명작 독서 명품 인생>은 더욱 돋보인다. 이웃 집 사람이 슬픔을 당해도 그냥 지나치고, 심지어 죽어도 별 관심이 없는 세태에서 이 책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명품 인생을 살기 위한 지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두 번 이상 정독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쉬운 언어로 가볍게 쓴 책이지만, 한편 미주(尾註)와 참고 문헌을 수록할 정도로 학술 서적의 체계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처음 읽어서 많은 양을 수용해 내기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 두 번 읽으면 또 다른 가르침이 독자의 머리와 마음에 담길 것이다.

좋은 책은 저자의 주장에 기분 좋게 설득당할 수 있는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이 그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읽고 기분 좋기는 오래만의 일이다. 사족(蛇足)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가끔 오탈자가 보인다는 것과, 많은 배려를 했지만 미주 등 꼭 한자(漢字)가 필요한 곳에는 한글과 병기했으면 좋았겠다는 것이다. 또 <로마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를 다른 곳에는 <로마제국 흥망사>로 표기하기도 했던데 고유명사는 통일시켜 주는 것이 좋다.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닌 이상 '여는 글'이 있으면 '닫는 글'도 있는 게 원칙이다. 저자를 위해서도 그렇고 특별히 독자를 위해서 '기(起)-서(抒)-결(結)'의 3단 구성은 지켜주었으면 좋아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이 책이 판을 거듭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란다. 명작 독서가 우리의 장래를 위해서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이 행세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문적 소양을 갖춘 통섭의 사람이 사회적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듯이 고전을 읽고 교양을 쌓은 인문적 사람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심지어는 연예계에까지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다. 독서에서 얻는 깨달음은 그 가치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의 바람에 톡톡이 값하고도 남는다. 저자 이상욱이 인문학 독서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니 희망을 갖게 된다. 저자의 건필을 바라며 독자 제현들에게 <명작 독서 명품 인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소개하고 자신 있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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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읽는 신약성서 이야기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한은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사기는 2년도 더 되는 것 같다. 어느 대학 축제 때 50% 세일로 구입한 책이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어제(12월 30일) 주일 예배 끝나고 독파한 책이 헨드릭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이 지은 <신약성서 이야기>이다. 번역은 전문 번역가 한은경이 했다. 박학한 지적 소유자인 저자에 조응하는 매끄러운 번역이었다.

 

반 룬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다. 나의 지적 얕음을 말해주는 것이 될 터이다. 책을 독파하지 전, 표지 안쪽에 소개되어 있는 저자 약력을 보았다. 반 룬은 네덜란드 출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AP 통신 특파원으로 여러 곳에서 일했고, 뒤엔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서양 근대사를 강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시대를 읽고 있는 사가(史家)인 셈이다.

 

그런 그가 성서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는 이 책을 어려운 내용에 접근하기 힘든 아이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역사와 신학은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런 선입관을 깨뜨리는 책을 쓰고 싶은 저자의 노력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성서도 이야기책이다. 일반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건을 이야기 식으로 엮어놓은 책이 성서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를 구속사의 결정물이라고 한다.

 

반 룬은 <구약성서 이야기>에 이어 그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약성서 이야기>를 펴냈다. <신약성서 이야기>는 총 13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그림으로 보는 성서 연대표'가 부록으로 붙어 있다. 총 206쪽에 걸쳐 내용이 채워진 책이다. 부피가 많은 책은 아니다. 13개 장으로 엮어져 있지만 성경처럼 연속성이 있는 글이 아니라 각 장을 눈이 닿는 대로 읽어도 괜찮을 책이다.

 

하지만 일반 성경의 내용에 저자의 상상을 살로 붙여 서술해 나갔기 때문에 읽는 재미는 가벼운 문학 서적보다 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저자의 그것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짜릿한 쾌감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가령 신약 성서의 4 복음서 저자가 마태와 마가, 누가와 요한으로 되어 있지만 그들과 이 유명한 문학적 글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55쪽)과 3세기 넘게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는 현대의 뉴욕이나 런던, 파리보다 국제적인 사회였으며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고 혈통을 많이 따지지도 않았다(65쪽)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또 유대와 갈릴리는 명목상으로 독립 왕국이었으나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 일이 생기자 로마는 이들 역시 정해진 날짜에 자신의 족속이나 가문의 고향에 있어야 한다(71쪽)고 서술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 호적을 하러 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호적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로마 제국의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을 어겼다며 비난을 받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과 일에 대해 너무나 민감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리새인들은 옷에서 핀 하나도 빼려 하지 않는 바로 그 안식일"(125쪽)이라며 율법에 결박되어 있는 그들을 간접적으로 나무라고 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은 유명하다. 거기서 제물 파는 자들과 환전상들의 상을 엎으시고 쫓아낸 이야기가 나온다. 성전 부정의 한 고리 역할을 한 것들이지만 거기서 환전상을 요즘으로 말하면 은행가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예수를 은 30에 판 유다는 갈릴리 출신이 아니라 가리욧 지방 출신이다. 예수의 열 두 제자가 모두 갈릴리 출신인데, 이 유다만은 가리욧 출신이어서 그 소외감으로 예수를 배반하고 팔기까지 하지 않았나 추측하는 대목에 공감이 갔다. 가룟 유다를 빼고 나머지 제자들이 모두 갈릴리 출신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어부로 일하던 제자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제자가 그곳 출신인 것은 맞다. 예수가 살았던 세상도 오늘날과 같이 조화롭지 못했던 것 같다. 강력한 지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많은 것이 있었던 반면, 노예들은 가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수는 강자보다 천 배는 더 많았다(173쪽)고 본 저자의 시각에 나의 시선도 모아졌다.

 

가끔 성모 마리아와 예수와의 관계에 대해서 대화를 할 때가 있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을 만날 때, 이 점을 질문할 때도 있다. 마리아와 예수를 동격에 놓고 믿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에베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리스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는 아버지 제우스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중세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보다 더 많은 숭앙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184쪽)라고 한 말은 오늘날 우리의 궁금증 중 일부를 해소해 주지 않나 싶다.

 

지금은 눈으로 보는 것이 성행하는 시대이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인쇄된 글자만으로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 앞에 '온 가족이 함께 읽는'이란 수식 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또 저자 머리말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성서 이야기라고 했다. 거기에 만족할 만큼 그림을 유효적절하게 배치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전혀 지루하거나 건조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 몇 편의 사진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중세 저명한 미술가들의 그림을 옮겨 놓았다.

 

옮긴이 한은경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이 책을 번역한 것 같다. 옮긴이의 말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나누어 호칭하는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하느님'으로 통일해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는 습관이고 개념이기 때문에 편리하게 쓰면 되는 것이다. 하나로 통일해 쓰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사회 종교적 역학 관계가 허락하지 않을 때엔 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가면 사물이 변화하듯 앞으로 통일되어 사용될 날이 올 것이다.

 

번역이 매끄럽게 되었다고 상술했다. 옮긴이의 많은 노고가 따른 번역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125쪽 베데스다 연못을 설명하면서 '벳새다'로 옮긴 것은 잘못이고 그 외 몇 곳에 오탈자가 산견된다. 성경을 쉽게 읽고 이해하는 것은 오래 이어져 온 소망이었다. 하지만 성경은 만나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단적으로 믿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렇더라도 성경을 쉽게 풀어 재미있는 이야기 식으로 독자에게 제공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에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헨드릭 빌렘 반 룬은 '존 뉴베리'상에 빛나는 20세기 최고의 사상가라고 뒷 표지에 소개되어 있다. 상혼에서 나온 문구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반 룬의 성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사회와 접맥시키는 뛰어난 기술을 발견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 성서에 눈이 자주 가게 된다면 반 룬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낸 것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라고 독자 제현께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서를 읽는 시야에 장애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이 책은 해 낼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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