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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 김화영 예술기행 ㅣ 김화영 문학선 4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4월
평점 :
정련된 문장을 읽는 것은 항상 기분좋은 일이다. 그 문장의 주인이 폭넓은 학문적 지식과 섬세한 감수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그가 이번에 풀어놓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네, 콩브레, 위세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두근거리게 하는 프랑스의 고성들을 문학적 모티브를 가지고 돌아본 기행담이라면, 그 책은-적어도 내게는- 당연히 진수성찬이 된다.
책을 읽는 동안, 박식하고 유창한 안내자와 함께 르와르 계곡의 퇴락한 위세 성에서 파리의 당당한 노트르담까지 두루두루 돌아보는 기분이었다. 여행을 다녀 보면, 어디건 장소 그 자체만으로는 감흥이 크지 않다. 어딘가를 빛나게 하는 것은, 의미있게 하는 것은 역사이건 문학이건, 그 성, 그 저택, 그 광장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여행의 그런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는, 역시 평소에 많이 읽고 공부할 수 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낀 점이다(이쯤에서 지난 가을 프랑스 여행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몇 군데 성에 나도 갔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렇지만 물론 거기에서 내가 느낀 감흥이나 사유는 저자의 것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물론 내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가기 전에 이 책이 나왔었다면 어쩌면 조금 다른 여행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읽는 동안 내내 두근거리고 즐겁다. 내용만이 아니라 종이질이나 활자, 사진상태, 편집도 썩 만족스럽다. 여행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후회하지 않을 책! 덧글) 흠을 하나 잡자면, 뒷부분의 인도와 아프리카 기행문은 앞의 프랑스 부분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다. 기행문이라는 면에서 함께 묶은 것은 이해하지만, 프랑스 부분만으로도 한 권 분량이 충분하니 뒷부분은 다음에 다른 책으로 묶여 나왔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덧글) 여행과 문학의 행복한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즐긴 독자라면, '김인성의 영국문학기행'도 추천한다. 불문학은 소설을 이야기할때도 시적이고 영문학은 시를 이야기할때도 어딘가 산문적.이라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