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아침 저녁으로 울타리를 넘어 정원으로 찾아 드는 새들처럼 온다.
꽃나무를 심어야 꽃을 볼 수 있다. 가족이라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 혹은 무지하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 한 평의 텃밭, 강가의 산책길 같은 내 마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꽃들이 무심히 피었다가 지기도 하겠지만 어느 때인가는 그대가 가꾸어 놓은 정원에 파랑새가 날아와 오랫동안 지저귀게 될 것이다.
그 기다림만으로도 그대의 정원에서 지금 행복하리라.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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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한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들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 50여 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책임진다는 기분이 그런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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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어유머: 애완동물 가게에서

 

 

A : May I help you?

 

B : Yes. I'd like to buy a parrot.

 

A : I have one here that can say "Sure, I'm sorry, Thank you, Hello, and Goodbye."

 

B : That's not a very big vocabulary.

 

A : I know, but some humans don't even know how to say these words.

 

 

 

 

전문해석 by http://English60.com

 

 

A :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B : "앵무새를 한 마리 사고 싶은데요."

 

A : "좋아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안녕, 안녕히 계세요' 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앵무새가 한마리 있는데요."

 

B : "근데, 그건 별로 많은 어휘가 아니군요."

 

A :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어떤 인간들은 그런 말조차도 할 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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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막에 가고 싶나? 하고 어떤 시인이 물었다.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누가 그렇게 물어보리라 예상치도 않았지만 미리 그것에 대해 생각을 했더라도 아마 같은 답을 했을 것이다.
“사막에 서 있고 싶어서”
내가 사막에 가고 싶은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돌아서서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마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토록 오래 전부터 사막에 가고 싶었던 나였지만 뭔가 분명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처음 사막을 떠올렸을 때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막연한 꿈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프리카를 떠 올리면 나는 늘 흥분이 된다.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희망이 부겐빌레아꽃처럼 핀다 (2006년 06월 27일자 아침공감)고 했다.
사막에 서면 알게 되지 않겠나 싶다. 내가 왜 사막에 가고 싶은지를. 단지 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많은 답을 단 한 번에 구하려는 어리석음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막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 나는 지금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워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사막에 갈 것이다.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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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사막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늙어 가는 것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사막 언저리에서는 어느덧 인간이 더 이상 거주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내면의 황폐화에 대한두려움도 생겼다. 사막은 소멸을 미리 조금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는 고향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

사막에서라면 우리는 존재하는 동시에 완전히 여분으로 남는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삶에 짐이 되었던 수많은 일들이 아주 멀리 떨어져있고, 우리로부터 벗어나 있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날 찾거나 필요로 하거나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를 볼 수 있는 거울도 없는 곳이라면 나 자신마저 없어도 더 이상 낯설게 없기 때문이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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