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지금은 당연히 생각하는 이사실을 17세기에 지동설 주장하는 책을 냈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인간이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 후에 지동설과 관련된 일을 하지않겠다는 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책을 내었다. 바로 이책 새로운 두 과학이다. 이책의 내용은 고체의 강도와 낙하법칙에관한것에대해 실존 인물과 공상의 인물들이 대화하는 형식으로되어있다.지은이가 분명 갈릴레오 갈릴레이이면서도 설명의 용의함을 위해 다른 인물들의 대화를 보여준다. 이책은 읽는 독자를 생각해주는 책이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여러가지 현상들에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이책에 쓰여진 여러가지 과학의 정수들을 빨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친절함이 독자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몇년전엔가 논리책이 하나의 선풍을 일으킨적이 있었다. 이 반갑다 논리야 씨리즈도 그랬는데 이책에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사놓고 후회한 것이다. 전혀 아이들의 수준을 무시한 책이라고 밖에는 생각할수 없었다.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내가 읽었기에 그런면이 더했는지도 모르지만 애들의 수준이 대체 이정도를 가지고 논리를 논한다고 할수있을까하고 생각했었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바로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논리교육의 현주소라고도 생각할수 있기에 씁쓸했다. 마땅한 논리교재하나 아이들에게 선사할수없는 사회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의 꿈나무라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논리책은 손꼽을 정도이고 그것마저도 정당하다 할수없다.
최불암씨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모습과 신세대간의 의사소통의 부재가 묘하게 가슴에 와닿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적이 있었다. 그것을 대변하듯 최불암을 소재로한 개그를 출판하는 곳마저 여러곳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샀다. 개인적으로 책의 내용이 그리 대단한 뛰어나서 산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대에 뒤쳐지지 않기위한 하나의 발악이었다. 나는 최불암의 유머를 몰라서 동류에서 떨어져 왕따당하기를 두려워한 것이다.최불암씨의 너털웃음이나 소박하게 보이는 모습들이 조롱의 모습이 된것은 신세대가 느끼는 기성세대의 모습임을 예민한 독자라는 누구나 금방 알아챌수 있다. 그의 모습이 장차 나이들어서의 자신이 모습일수 있음을 왜 아무도 생각지 않고 있는것인지..나또한 그렇기에 인생은 살아보아야 한다고 하는건가보다.
허영만의 만화가 먼저다 . 김성수의 영화 비트보다 훨씬 탁월하다. 여러점에서 그렇다. 특히나 허영만의 그림체는 이미 경지에 오른사람의 연출과 선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대표만화가인 그가 보여주는 화면분할이라던가 구도는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스토리면에서도 탁월한 무엇인가가 있다. 박하의 글은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삐삐가 대중화되었던 시기의 노예팅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이만큼 세월보다 통신이 빠르게 달려가는 구나 하는것을 느낄수도 있다.
이 책과는 약간 다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에 빠졌다. 알코올 중독자의 아들이 다시 알코올 중독자가 될 확률이라든가 담배흡연자의 아들이 담배흡연자가 될확률등이 어떤 이유에서든 연관성이 크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껏이다.그런데 돈에관한 문제마저도 유전이 된다는것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준 책이다. 돈에대해 알아야한다. 그리고 돈이 자신을위해 일해줄 요소를 갖춘 아이가 성인으로 크기위해 받은 교육은 일반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설득력이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위해 노력한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이 한결같이 공부잘해서 좋은 대학나와서 좋은 회사 취직하라고 말했던 점이 미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