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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인간의 고통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아픔 이야기 ㅣ 명화 속 이야기 8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한 직업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다 그러하듯이 저자는 삶 가운데 취미생활을 자신의 직업과 접목시키고 있다. 명화를 앞에두고 그림에 메스를 대고 해부하듯 분석하고 싶다는 생각. 저자의 이러한 생각을 엿보는 듯한 기분만으로도 일종의 짜릿한 흥분을 가지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는 이야길 하고 싶다. 그가 예술을 선택한 것은 꽤나 탁월한 선택이지 않은가.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미술가들은 저마다 시체해부에 꽤나 열성적이었다.
그림에 메스를 댈 수 는 없으니 미술사적 지식과 자신의 전문 지식을 적절히 버무려 글이 완성되었다.
글은 미술이 중심에 있다기 보다 꽤나 대중적인 의학지식을 설명하기위해 그림이 예로서 들어진 수준이었다. 특별히 그림에 메스를 대고 그림 속 근육 하나하나에 대한 예술가의 사고와 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묘사의 탁월함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물론 그러려면 그림 선택에서부터 이제는 식상하기까지한 명화를 가지고 이야기 할 수 는 없는 것이다. 명화가 만들어기 전의 데생 스케치나 특수 레이저로 촬영한 명화 제작 당시의 붓터치가 그대로 살아 있는 자료를 구하는 것이 이미 어려운 시대도 아니다. 사실은 은근히 이러한 책이길 바라며 책을 들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저자의 80 생애에서 나오는 혜안이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나오기는 하지만, 너무나 많은 명화들과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루다 보니 저자의 의학적 관점에 대한 내용은 의학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꽤나 감명깊은 구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적인 면에서는 특별히 다른 책들과 비교될만한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 민국에 나온 미술 대중서가 별로 안되기에 미술에 관심이 많은 독자가 이미 자신을 타겟으로 한 미술 대중서를 전부 읽었다면(합해보았자 일정 수준을 충족하는 미술 교양서가 100권도 안되니 맘만 먹으면 다 읽었을 독자도 많을 것이다) 굳이 이 책에서 새로운 명화에 대한 시각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이 내세우는 장점인 전문적인 법의학자의 관점이 책에 충분히 묻어나기에도 마치 잡지나 신문의 연재분 정도의 분량이라 그리 깊이있는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님은 정말 아쉬운 점이다.
솔직히 이정도의 훌륭한 필자가 다른 글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과 같은 정도의 책을 내었다는 것은 아쉽다면 많이 아쉬운 점이다.
전체적으로 <들어가는 글>에서 보이는 혜안이 고르다기보단 앞쪽과 뒤쪽에 집중되어 짧은 단락속에서 명철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세월속에 쌓은 연륜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어구가 많다는 점은 이러한 저자의 장점이 전면에 드러난 책을 바라게 만든다.
전문적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가운데 평생을 예술과 밀접한 직업에 종사하며 대중을 위한 책을 써 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명이나 있겠는가를 생각했을때, 주제넘은 말이 되겠기에 몇번이나 주저하면서도 괴테에게 달라붙어 말년에 파우스트 2부를 마저 쓰게 만든 에커만의 심정으로 한마디 올리자면, 남들과 같은 고만고만한 책을 쓰기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