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애가 ‘칼날’에서 가족과 난장이에게 ‘우리도 난장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억압 받는 사회적 입장(=약자)의 공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육체적 입장이 엄연히 다른 난장이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신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애가 사회적 입장에서 난장이와 동일시 하고 있다는 점은 알겠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두가지 있다.

신애가 왜 다른 이웃 사람들과는 달리, 난장이와 자신을 동일시 하느냐 하는 점과, 신애가 칼을 집어 들고 난장이를 구하려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같은 약자로서의 보호라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신애는 평소에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을까? 침묵함으로서, 위해를 받지 않는 시대에, 사나이의 외침소리에도 놀라는 그녀가, 어떻게 대담하게 사나이를 향해 죽이려는 생각으로 칼을 휘두를 수 있었는가.

여기에 바로 지금까지와 다른 난장이의 숨은 속성이 있다. ‘칼날’에서 난장이와 신애가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신애는 여러 번, 가슴 두근거림과 뭉클한 감정을 느낀다. 그때마다 난장이는,

“전 이웃 아주머니들이 서로 싸우실 것 같아 피했었어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계량기를 속이는 것은 도둑질과 마찬가지죠.”, “물이 잘 나올 세상이 언젠가는 올걸요.” “자식은 난장이가 아닙니다.”(칼날, 43~45면)

라는 말을 하였다. 이 말들 속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희망,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간의 반목을 수수방관 할 수 는 없다는 이타심 등이 담겨있다. 이런 대화 속에서, 신애는 난장이를 이웃하고 싶다고,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서 동일시가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난장이가 가진 이제까지와는 다른, 또하나의 입장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정신적인 입장’이다. 난장이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인 입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바로 조세희가 바라본 ‘거인’의 모습이 이것이다. 그렇다면, 조세희가 바라본 정신적 입장으로서의 거인이란 어떠한 존재인가?

“그러면 생각해 보게. 만약에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식으로 사태가 자연스레 진행된다면, 이들이 결박에서 풀려나고 어리석음에서 치유되는 것이 어떤 것이겠는지 말일세. 가령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풀려나서는, 갑자기 일어서서 목을 돌리고 걸어가 그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당할 경우에, 그는 이 모든 걸 하면서 고통스러워 할 것이고, 또한 전에는 그 그림자들만 보았을 뿐인 실물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 수도 없을 걸세, 만약에 누군가가 이 사람에게 말하기를, 전에는 그가 엉터리를 보았지만, 이제는 진짜에 좀은 더 가까이 와 있고, 또한 한결 더한 실상을 향하여 있어서, 더욱 옳게 보게 되었다고 (플라톤, 1997, 448~454면)

조세희가 말하는 거인의 이미지를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哲人)의 이미지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난장이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통해 본다면, ‘누군가’가 말해주어, 동굴을 빠져 나와 밝은 빛을 바라다본 철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88면)

동굴이론으로 볼 때, 지섭은 난장이를 구원의 길로 이끈 누군가에 해당하며, 지섭을 통해 난장이는 거인이 된다. 그러나, 누구나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사람 내부에 준비되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난•쏘•공’내에서는 이것을,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185면)으로 보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자’가, 지섭처럼 ‘바로보기’로 인도하는 자에 의해 ‘거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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