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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 소통 – 대립계층 바로보기 -
사회적으로 정해진 ‘법’에 따르는 사이에 자유롭게 된다라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특히 독일파 철학자나 법학자 사이에서 강하게 주장되는 듯 하지만, 그러나, 지금까지의 현실에서 제정된 법률이라는 것은, 다분히 강자가 약자를 향해, 통치자가 피통치자를 향해 허락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中村 元, 1980, 269면)
일본의 철학자가 한 위의 말은, 바로, 김불이와 김불이의 아들인 영수 사이의 행동방식에 중요한 차이점을 보여 준다. 김불이는 법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법이 자신의 기대를 이루어주지 못하자 괴리감의 극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만다. 반면, 영수는 이성에 희망을 걸었다. 법률제정이라는 공식을 빼버리고, 교육의 수단을 이용하여 누구나 고귀한 사랑을 갖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185면)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는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소통은 가능한 것인가라는 문제를 노사간의 협상과정을 통해 다루고 있다. 사용자측과 근로자간의 대화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서 바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근로자의 요구 사항이, ‘임금 25%인상, 상여금 200%지급, 부당 해고자의 무조건 복직’(위의 책, 198면)이라는 점에, 사용자는 근로자의 요구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영수 가족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도시근로자의 최저이론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현실 속에서, 근로자의 요구는 생존권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측은, 이런 요구를 들어 줄 수 가 없다. 근로자를 기업이윤의 수단으로만 인식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노사협상의 부결은 영수에게, 이성적 소통의 불가능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던 그가 법에 기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위의 책, 203면)
그러나, 법이 아버지에게 주었던 절망감이 내적인 자살로 이어졌다면, 영수는 법이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던 것이었기에,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자, 쉽게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수의 ‘살인’ 행위는 꼽추와 앉은뱅이와는 분명히 다른 행동이다. 영수가 살인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소통의 부재. 즉, 은강 그룹의 회장이 ‘인간을 인간으로 바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절이 원인이다. 이런 소통의 부재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더욱 치열해진다.
연작의 11번째 발표 작 에필로그가 쓰여진, 문학사상의 창작일기에서 조세희는 이야기를 열 한편의 작품으로 일단 끝맺은 셈(조세희, 1978, 393면)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 그가, 몇 달 후에, 난•쏘•공 연작 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제외하고는 제일 많은 분량으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라는 12번째의 작품을 발표했다는 것은, 눈 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과연, 무엇이 조세희로 하여금 일단락 지었다고 생각한 난•쏘•공을 서둘러 집필(=보완)하게 만들었는가. 작품 내적으로, 12번째 작품의 의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12번째 작품을 제외하고, 난•쏘•공을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