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영수가 ‘클라인씨의 병’(문학과 지성, 78년 봄호)에서 깨달은 바에 의해, 행동으로 나설 것을 암시한 직후에, 뒤이어 발표된 ‘에필로그’(문학사상, 78년 3월호)에서는 영수가 살인을 하고, 형무소에서 죽은 것만을 꼽추와 앉은뱅이의 입을 통해 알려 줄 뿐이다. 즉, 영수의 행위(=살인)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쏘•공 연작의 특징 중 하나가, 다양한 인물로의 시점이동임을 생각해볼 때, 앞에서 언급한 김불이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임을 알 수 있다. 조세희는 우발적이지 않은 살인 행위의 의미를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여기에, 12번째 작품이 쓰여짐으로서, 이전 연작과는 다른 특징과 사실을 보여준다. 대립적 계층이면서,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경훈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과 영수가 회장인줄 알고 닮은 그의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빈약한 상상의 항해자는 ‘칼’을 손에 쥐어본다. ‘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 으로 유명한 이오네스코 (Eugène Ionesco, 1912-1994) 의 초기작 중 하나인 ‘수업 La Leçon’ 이란 연극을 보면, 소통의 부조리에서 오는 폭력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난•쏘•공과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수업을 받으러 온 학생에게 수학, 비교 언어학 등을 가르치던 교수가 학생과의 언어적 의사소통이 점점 힘들어 지자, 끝내는 ‘식칼’로 학생을 살해하고,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해 나치의 만(卍)자가 새겨진 완장을 찬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권력을 휘두르는 교수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살인을 한다는 상황은 중요한 메타포를 담고 있다. 바로 소통의 수단이 ‘살인(=고통)’이라는 것이다.

‘부조리극의 특징은 인간들의 막연하고 근거 없는 집단적 믿음(조리) 앞에 그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적나라한 현실(부조리)를 제시하는 것에 있다’. (외젠 이오네스코, 2003, 184면)

즉,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결코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해서,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해를 중첩시킨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처럼, 근로자와 고용주의 관계는 소통의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수의 재판과정을 통해 소통의 단절은 극으로 치닿는 것처럼 보인다.

방청석 공원들을 돌아보며 사촌이 속삭였다.
“인간을 위해 일한다면서 인간을 소외시켰어.”
“형이 말하는 걸 들으면 참 근사해.”
내가 말했다.
“사실은, 공장을 지어 일을 주고 돈을 주었지. 제일 많은 혜택을 입은 게 바로 이들야.”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245면)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의 주인공인 경훈의 눈에는, 이전 난•쏘•공의 시선과는 정반대되는 시선이 존재한다. 공원들은 “나이보다 작은 몸뚱이에 감춘 적의와 오해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할 아이”(위의 책, 243면),

“고도에 천일을 함께 있어도 함께 자고 싶지 않은 못생긴 계집아이”(위의 책, 246면)

로 보이고, 영수는 독재자인 아버지의 구타 속에서 성격적 결함을 가지게 되었으며, 지섭은 잃어버린 손가락 때문에 객관적 눈을 잃었다고 단정지어 버린다. 경훈의 이런 시선은, 소통부재의 극단을 향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사촌 형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를 이해하는 입장을 보여주지만, 경훈에게 있어 사촌은 약자로서 제거될 인물일 뿐이다. 그리고, 근로자에게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단계에서는, 이러한 단절이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소통으로 보여진다. 이 단편의 중요성은, 서술의 시점이 경훈에게 있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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