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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아론 ㅣ 이화학술총서
한자경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불교의 무아론은 절에 들어가서 수도하는 스님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종교적인 이야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것은 결국 철학에서의 '자아'의 문제로, 자아동일성이라든가, 자의식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오랜 불교사만큼이나 치밀하게 무아론에 대한 해석과 논증이 전개되어왔다.
따라서 불교의 무아론은 다른 서양철학, 현대철학과 견주어서 따져볼만한 논의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 내용의 수준이 현대 철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이것이 불교를 떠나 철학적인 자아 관련 문제로서 다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불교의 논의가 결코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무아론을 둘러싼 불교의 개념들이 현대의 우리에게는 요원하게 느껴지며, 어쩐지 신비적인 깨달음이라도 동반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불교는 수행이나 명상도 병행해야 하는 종교이긴 하다. 그러나 병행되는 수행이나 명상에 관한 논의까지도 꼼꼼하게 논의하는 것이 불교이며, 이것이 불교의 진짜 매력이다.
불교의 무아론은 그 자체로 재미있기도 하고, 다른 철학에 시사해줄만한 부분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른 전공자들, 다른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비교적 알아들을 수 있게 써 주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의 꼼꼼한 논증 과정은 진작부터 불교학에 필요한 태도인데 사실 그리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가 논증을 일부러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해석이 가미되었더라도 그 재료는 어디까지나 불교 안에서 찾은 것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이런 책이 반갑고, 한편으로는 이미 충분히 꼼꼼한, 서양철학 못지 않게 대단히 꼼꼼한 불교의 논증과정이 현대 불교학에서는 오히려 잘 살아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안타깝기도 하다.
책은 근본불교, 유부, 경량부, 유식으로 이어지는 불교의 무아론을 꽤 드라마틱하게 논하고 있다. 단순히 산발적으로 이 경전, 이 논서 섞어서, 또한 자신의 통찰을 섞어서 무아론이 어떻다고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설법하는 스님의 태도일지는 몰라도 학자로서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학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다종 다양하게 전개되는 불교이론에서 무아론이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 그러한 해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또한 그 문제로 인해 어떻게 다른 학파에서 비판하고 보완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