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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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5월의 일요일 오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은 서울이라는 도시,
회사원은 늦잠을 자고 교인들은 기도를 하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누군가는 축구공을 찬다.
막 몽정을 시작한 사내아이들이 강가를 이유 없이 배회하는 것도,
강바닥을 흘러다니던 시체가 홀연히 떠오르는 것도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눈을 꼭 감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알몸의 남자.
그는 오랫동안 물밑을 떠돌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 말이 없다. 아직은...


가벼운 연애소설이나 감성 에세이와 어울릴 것 같은 정이현이라는 작가가 가족 소설을 썼다고 한다. 두 번이나 사회적 인사의 상실을 경험하고 감정적으로도 힘겨웠던, 그리고 2008년 금융대란의 여파가 아직 걷히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던 2009년에는 심리학 책이나 엄마를 찾는 소설-<엄마를 부탁해>라던가 <도가니>와 같은-이 빠른 속도로 밀리언셀러 기록을 돌파했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가족 소설이라기에 가족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 예상했는데(어쩌면 그런 듯 싶기도 하지만) 한 가족에게 생긴 미스테리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정이현의 미스테리 소설은 약간 의외다 싶었지만 이번 책을 통해 작가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해낸 듯한 느낌도 든다.

한강을 표류하는 시체. 표지를 넘기고 본문을 읽어들어가려 할 때 처음으로 만난 문장이다. 요 근래 읽은 책이 <편집된 죽음>, <보이A>, <위대한 개츠비>, <셜록홈즈> 등 죄다 살인이나 자살, 죽음이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가 없는지라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찾다가 '정이현'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그저 반가이 손에 들었는데, 맙소사 또 시체라니... 첫 문장부터 ‘이게 뭐야’ 하고 탄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살인, 죽음이라는 소재 보다는 조금 멀리, 그렇지만 긴장의 끈은 놓을 수 없는 상태에서 책은 의외로 단숨에 읽혀진다.

정이현의 소설은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 두 번째다. "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네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앞으로 꼭 챙겨 볼 작가 목록에 정이현이라는 이름을 추가할 수 있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고, 한 두해 지난 후 단편집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단편 소설을 읽지 않는 취향상 그 책은 pass.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나는 정이현 작가의 소설.
그러고보면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도 평범한 듯 하면서도 조건 좋아보이는 남자 영수가 거짓 영수였다는 사실에 꽤나 충격을 받긴했었는데 이번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자가 하나의 영수이고, 이 가족은 영수들의 집합체이다.

표류하던 시체에서 가족의 이야기로 건너온다.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 김상호, 화교 출신의 어머니 진옥영, 상호와 전처 사이의 아이 은성, 혜성 그리고 터울이 큰 막내 딸 유지. 서래마을 고급 빌라에 거주하고 남들이 보기에 꽤 그럴듯한 모습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 가족에게 겨울의 기운이 마음껏 활개치는 2월의 어느 일요일.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막내 딸 유지가 행방불명 되면서, 이미 오래전 금이 가 있던 유리창의 파편들이 아슬아슬하게 끼어있던 가족이라는 틀에서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다.

유지가 사라진
일요일, 아버지 상호는 사업상 약속을 위해 외출하고 어머니 진영은 친정어머니의 병환을 핑계로 옛 연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대만으로 간다. 첫째 은성은 남자친구와 틀어지면서 자해를 하고, 이 소식을 듣고 혜성은 누나 은성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유지가 홀로 집에 남아 있던 그 날,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누구도 유지가 집안에 홀로 남게 되었다는 사실에 신경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사라졌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몇 시 즈음에 어떤 차림을 하고 누구와 함께 집 밖을 나섰는지도 알 수가 없다. 상호는 이제 겨우 열한 살인 딸아이의 행방불명 사실을 경찰에조차 알리지 못하고 사립 탐정을 고용해 조용히 수사할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네 명. 상호, 옥영, 은성, 혜성은 서로 품어온 비밀이 들킬새라 전전긍긍하며 유지의 부재에 자책하고, 이런 네 사람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 그리고 마침내 이 네 명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상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옥영이 집을 떠난 그날 누구를 만났는지, 은성과 혜성은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무관심으로 포장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고 혹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여기고 있던 이들은 가족이 되어 서로를 돌보게 된다.

거짓 영수처럼 거짓 인생을 살고 있던 네 명의 가족이 다른 한명의 구성원의 사고로 인해 대화와 관심으로 서로를 알아가면서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전체 줄거리이니 이것도 일종의 상처 치유를 통한 ‘가족의 재탄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그 과정이 정말로 아프고 씁쓸하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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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박경민 옮김 / 한겨레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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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종, 성별, 교육 문제 등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이런 문제들을 함께 다루고 있어서 화제가 되는 소설일까? 지금이야 의문을 품을 수도 없는 문제들임에도 그 시대상으로 보면 충분히 획기적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문학 작품으로서 이 책의 가치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수 밖에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의문을 제기하고, 소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문학으로서의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이랬다, 저랬다. 동전의 양면 같은 마음이다) 워낙에 성장 소설은 좋아하지 않았거니와 이제 와서 이 책 조차 읽지 않았다는 압박감에 읽었던터라 책장을 넘기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이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이다. 여주인공 스칼렛이 학교에 입학하여 교육 받을 때에는 진보주의 교육관이 미국에 한참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듀이 대시멀 교수법을 따르고자한 스칼렛의 선생님은 스칼렛이 이미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데에 반감을 드러내는 식으로 작가는 진보주의 교육관을 가진 교사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글이 발표된 것이 1960년. 마침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미국이 공황상태에 빠져 본질주의 교육관으로 전환하려고 할 때였다. 1960년 당시에는 진보주의가 실패한 교육철학으로 여겨졌기 때문일까? 진보주의 교육관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어서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을 발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소설의 초반부에는 스칼렛과 그의 오빠의 생활을 담고 있고, 중반부에는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부래들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인종차별, 남녀차별이 심하였고 소설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흑인은 단지 피부색이 검기 때문에 핍박받았고, 여자이이는 숙녀가 되기 위해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던.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흑백 갈등이나 남녀차별이 그때만큼 심하지 않고 racist라는 말이 미국 내에서는 가장 큰 욕이나 악담으로 여겨질 만큼 인종차별은 가당치도 않는 세상이 되었지만 분명 사회 도처에서 그런 일들이 전연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당 대표란 작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식석상에서 룸살롱 자연산 발언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 환경이나 처우만 보아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다문화 가정, 교육, 양육, 노인복지, 탈북자 정책 등 아직도 해결하고 타협할 할 문제들은 산재해 있는데... 사회적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까지 합한다면 까마득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으면 뭐하겠는가. 뉴스를 보면 나오는 게 한숨이요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가 왜 요모양 요꼴인가 싶은데. 그러면서도 당장 내 피부에는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문제들이니 화만 버럭 낼 뿐 주저주저하고 만다.
100년 뒤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겠지만 그때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는 제 3자의 고통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 친구에게 빌린 1992년 첫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당시 번역 문장이 지금과는 달라서 그런지 문장 중간중간 막히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다른 역자의 책은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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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작은 거짓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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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정말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이 작가의 책이 무엇이었던가 기억하기에도 까마득할 정도이니...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신간이 나오는 족족, 한 권 나올 때 마다 한 번도 아니고 아주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닳고 닳도록 읽었었는데 어느 순간 이 작가의 문체가 질리기 시작하더니, 매번 그 캐릭터가 그 캐릭터에, 세상사 달관한 듯 내 일도 내 일이 아니고 네 일도 내 알바 아니다 하는듯한 태도를 보이는 주인공들 모습에 신물이나 어느 때인가 부터는 일본 소설 읽기 자체를 뚝 끊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에 에쿠니 가오리 신간 소식을 접하면서 달콤한 제목에 이끌려 주말에 커피 한 잔 하며 오랜만에 그냥 그런 분위기 한 번 느껴보자 싶어서 책을 골랐는데-정작 책은 평일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그리고 미용실에서 무겁게 파마롤을 머리에 말은 상태에서, 마음도 머리도 심란하고 복잡한 때에 읽었지만- 책장을 채 몇 장 넘기지도 않았을 때부터 참 한결같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을텐데. 이 작가의 글은 참 변함이 없다. 좋은 의미로든 좋지 않은 의미로든. 

“사람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 혹은 지키려는 사람에게.” (p.196)

소설은 결혼 3년차인 테디베어 작가 루리코와 평범한 회사원 사토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워낙에 말 수가 적고 내향적이었던 루리코에게 사토시는 온화한 웃음과 넉살좋음으로 다가와 그녀가 기어코 결혼을 선택하도록 했지만, 함께한지 3년이 된 이들은 수다쟁이 아줌마가 된 루리코와 표현력이 급격히 저하된 무뚝뚝한 아저씨 사토시가 되어버렸다.

외형적으로는 누가 보기에도 행복하고 금슬 좋은 부부인 이들이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저녁을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게임에 몰두하는 남편 사토시, 작업실이기도 한 그들의 집에서 종일을 보내다 퇴근해 들어온 남편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갈망하는 아내 루리코는 3년차 부부의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던 중 루리코는 자신이 만든 테디베어를 여자친구에게 사 주고 싶다며 만나게 된 하루오와, 사토시는 대학시절부터 자기를 따르던 여자 후배인 시호와 또 다른 남자, 여자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외도하는 남녀.
밖에서 취하는 달콤함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더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시크릿 가든> 마지막회를 보고 그대로 틀어두었던 SBS 채널에서 다큐멘터리로 본 한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때는 너무도 사랑하여 평생 함께 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결혼 5-6년차가 되면서 집안에서는 단 한 마디의 말조차 나누지 않던, 대화하다 보면 입씨름 뿐이라 입을 꾹 닫고 있다던 남보다 못해 보이던 부부. 결혼 전에 그들 또한 진심을 다해서 사랑했다고 하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라 情으로 산다고들 하는걸까. 깊게 오래도록 하는 사랑도 물론 있지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소설 속 남편 사토시는 아내 루리코에게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모성애를 더 느끼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루리코가 제공하고 있는 아늑함 때문일 뿐 본인은 전혀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니 어찌보면 루리코야말로 보살 중에 보살이 아닐까 싶다. 퇴근 후 저녁 먹고 일어나면 자기방에 들어가 문걸어 잠그고 노래 틀어두고 게임이나 하는 남편이라니. 너무 끔찍하잖아.
결론은, 사토시가 나쁜놈이다.
루리코를 외롭게 만든 것도, 결혼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시도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도, 시호에게 애매한 행동을 보인 것도. 이 네 사람의 관계에 최초 원인 제공자인 사토시. 이런놈이 제일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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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습격사건 - 엽기발랄 오쿠다 히데오 포복절도 야구장 견문록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동아일보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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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프로야구 인기가 뜨겁게; 치솟고 있는 것과도 관련, 야구에 관한 기본 상식이나 룰 등을 소개해주는 책에서부터 이렇게 에세이나 소설까지 꽤 많은 야구관련 서적들이 출간되었다. 2009년 프로야구가 시즌오프에 들어가면서 야구 관련 서적이나 한 권 읽어볼까 싶어서, 그 여럿 되는 책 중 고른 책이 <야구장 습격사건>.
이번에도 역시, 제목에 홀려. 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고른 책이었는데, 작년 딱 요맘때는 앞 부분 몇 장을 읽다가 접어버렸었다.
일본 야구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전무한 수준인데, 일본 야구팬의 일본 야구장 탐방기다 보니 일본 야구 선수들이 수두룩 빽빽이 등장하자 재미가 썩 있을 수 없음은 당연할 수 밖에. 물론 친절하게도 주석이 바로 아래 있긴하지만.

그러다 문득 야구가 그립기도 하고, ‘곧 2011년 프로야구가 개막하겠구나.’하는 설레임에 이 책이 생각나 다시 손에 들었는데 작년과는 반대로 술술 잘도 읽힌다. 처음 한 스무장이 고비였었구나 -_- ;
일본 야구에 관한 정보가 전무하다 시피하는건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지만 뒤로 넘어가다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종종 등장한다. 은근 나도 알고 있는 일본 야구 선수가 열댓명 남짓은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까지?



기분전환을 위해 여행을 떠나던 오쿠다는 공항에서 요코하마 선수들과 마주치게 되고 전지훈련을 떠나는 선수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면서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선수들이 훈련하는거나 한 번 볼까? 하면서 야구장 탐방을 시작하게 된다.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일본지역-대만도 한 곳 포함- 야구장 탐방 에세이.
정확히 짚자면, 오쿠다 히데오의 야구장 탐방, 우동집 탐방, 마사지샵 탐방 에세이
(야구장 보다 마사지샵을 더 많이 탐방한 것 같다 -_-)
내가 썼다면 "승화의 야구장 탐방, 야구장에서 먹는 피자맛 찬양, 야구장 전광판 선수 프로필의 진실 찾기 에세이 (부제 : 강민호가 98kg인데 이대호가 101kg이라고??)" 쯤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정말로 편하게 쓰여졌다. 야구장 다녀온 날 침대 위에 엎드려 일기장에 끄적끄적한 듯한 글. 그렇기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구절도 꽤 되고 가끔은 ㅋㅋ하면서 웃게 되는 부분도 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하늘 색깔이 심상찮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비올 확률 70%. 오늘 야구를 과연할까? 안하면 안돼! 하늘을 보고 기다리다가 야구장에 전화를 걸어본다. "오늘 야구 해요?"
야구장 가는 길은 이러이러 하고, 나는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먹거리들을 사 들고 야구장에 들어갔고, 들어가는 길에 운 좋게도 모모 운동선수를 만났고, 경기는 투수전 양상을 띠다가 결국 모모 선수의 끝내기로 종료됐다. 늦으면 길이 밀릴테니 어서어서 경기장을 빠져나가자 싶어서 나는 경기장에서 언능 나와버린다...
호텔로 들어와 씻고 스포츠 뉴스를 보는데 마무리 투수의 “다 내 잘못이에요. 볼을 던졌는데 가운데로 몰렸어요”하는 인터뷰를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오늘 경기는 모모 선수가 다 말아먹었어. 어떻게 득점찬스에서 병살이 두 번이야? 이 자식. 넌 오늘 밤엔 좀 굶어.’>
이런식이다. 말장난도 제법 섞여 있으면서 정말 끄적끄적하는.
"나는 이렇게 쓸꺼야. 그러니 편집자 양반 내 글에 가타부타 하지 마쇼! 아님 출간하지 말든가?" 하는.

끄적끄적한 글인데 끄덕끄덕. 야구팬이니 공감이 될만한 구절이 없을 수가 없다. 다들 똑같아 똑같아.



옛날엔 2년에 책 한 권 출간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던 오쿠다는 이제 앞으로 5년 까지 스케줄이 꽉 찬, 이렇게 마음 편하게 뭐든 끄적끄적해도 앞다투어 글을 출판해주겠다고 하는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이런 자신을 너무도 자랑스러워하고 또 신기해한다. 그런 이 사람 글을 보며, ‘정말 부럽다 -_-’고 나는 생각한다.
부러워. 부러워. 몹시도 부러워 -



책을 읽는 동안 햇살 따뜻하고 바람 선선한날. 경기 시작 한 두 시간 전에 야구장에 들어가 앉아서 초록의 잔디를 보며 안구 정화하고, 준비해온 먹거리를 먹으며 입 호강시키고, 오늘의 경기에 대해 미리 예상해가며 초록 위에 주황색 연습복을 입고 뛰어 다니는 선수들을 내려다보는 나를 상상한다. 아. 정말로 기다려진다. 이번 시즌도.
아직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포츠 뉴스조차 멀리하고 있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 바람잘날 없는 스토브리그를 겪고 있느라 몸과 마음은 아직도 눅진눅진 하지만.
야구가 그리운 요맘때 읽기에 딱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미안한 얘기지만 오쿠다 히데오, 라고 하니 그러지 않아도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가득한 나는 이 작가의 책이 선뜻 집어지지가 않았다. 왠지 오타쿠 소설을 쓰는 작가일 것 같아서? -_- 라고 하면 정말 웃기지. 근데 정말 그랬다. 오쿠다 - 오타쿠 - 오쿠다 - 오타쿠.... 자꾸 이런 느낌이 들어서.
에세이를 읽고 나니 플롯을 따로 짜지 않고 손이 가는대로 글을 쓴다는, 애초부터 자신에게는 글을 쓰는 능력따윈 없었기에 살을 후벼파며 독하게 소설을 쓴다는 이 작가의 소설도 한 권쯤 읽어보고 싶어졌다. 장난기가 가득했던 에세이와 반대로 소설에서는 아주 진지한 얼굴의 주인공들이 등장할 것 같아서 기대되기까지. 에세이는 비교적 정상적이었으니 소설에서도 오타쿠 느낌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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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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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A. 한 소녀를 살해한 죄목으로 14년간 수감된 뒤 가석방 상태로 세상에 돌아온 A는 그를 쫓는 미디어나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A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작은 소망,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잭'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세상에 백만명 쯤은 있을 법한 평범한 잭. 그는 그저 평범한 잭이 되고 싶었다.

잭은 어릴 때 부터 체격이 작았다. 친구도 없었고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기도 했다. 몇몇 덩치 큰 녀석들은 그를 시시때때로 괴롭혀서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집에 돌아온 날이 잦았지만 그의 가족 중 누구도 그에게 따뜻한 관심이나 걱정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때때로 경멸의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보이 A는 보이 B를 만나게 된다. 보이 B를 만나고부터 A는 더이상 맞고 다닐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다른 녀석들이 그를 피하기도 한다. A는 B와 함께 어울리게 되면서 가족에게서도 받지 못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잭은 교도소에서부터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던, 그리고 여전히 세상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후원자 테리의 도움으로 출감 후 새 집과 직장을 얻게 된다. 회사에서 잭은 크리스와 믿음직한 동료로, 미셸과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만 크리스, 미셸과의 관계가 점점 더 깊어갈 수록 잭의 근심이 깊어진다. 거짓 자신과 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진심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면, 미셸과 크리스는 자신에게 여전히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여줄 것일까. 처음 맺은 인연들을 잃을까 두려운 잭은 자신이 보이 A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까봐 늘 초조해한다. 미디어가 가진 그의 사진은 단 한장이지만, 출감한 후 <선>지는 그의 행방을 찾으러 더욱 더 옥죄고 있는 중이라 더더욱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잭은 자신과 비슷한 인상착의의 남자가 보이A로 오인받아 이웃들에게 피습당했다는 기사를 접한 후 끔찍한 두려움을 안게 된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서도 여전히 A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의문 투성이다. A는 법정에서도 그리고 교도소에서 수감하면서도 범죄 사실을 거듭 부인했다. 상담사와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그의 보호감수인 테리와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소리에 그만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말지만, 그가 과연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하고 계속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외톨이 A, 다른 아이들에게 멍석받이나 되었던 A, 아버지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A, 그리고 착하고 소심한 청년으로 자란 잭. A가 과연 끔찍한 살인을 벌일만큼 잔인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을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잭에게 동정표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크리스나 미셸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를 배신하게 되면서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한다. 낙인이란 것이 무섭다고 느끼면서도 잭에게 낙인을 가해버리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고,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반하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나 미셸과 달리 나는 잭의 인생을 모두 관찰했고 그의 속마음까지 꿰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이상은 그를 착하고 성실한 ‘지금 모습의 잭’ 그 자체로만 보지 못하고 있다.

분명 가해자이지만 피해자의 삶을 살았던, 이제는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된 잭...
그를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그 사람'이 지은 '죄'가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쉽게 양분되지가 않고, 가해자가 법적 형벌을 다받았다고 해서 죄가 형벌과 함께 단칼에 도려져 나갔다고 여겨지지가 않으니 참으로 혼란스럽다.
열 번, 백번 고민해도 똑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15년 전 한순간의 죄'가 '앞으로 살아갈 50년 동안 그의 발목을 평생 옭아매게 될 것이다'고.
이성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인, 가해자이지만 피해자인' 잭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어서 더욱 더 도덕적 혼란을 주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를 다 알면서도 이렇게 그에게 돌팔매질 하고 있는 나 또한 어쩌면 가해자가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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