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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박경민 옮김 / 한겨레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종, 성별, 교육 문제 등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이런 문제들을 함께 다루고 있어서 화제가 되는 소설일까? 지금이야 의문을 품을 수도 없는 문제들임에도 그 시대상으로 보면 충분히 획기적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문학 작품으로서 이 책의 가치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수 밖에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의문을 제기하고, 소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문학으로서의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이랬다, 저랬다. 동전의 양면 같은 마음이다) 워낙에 성장 소설은 좋아하지 않았거니와 이제 와서 이 책 조차 읽지 않았다는 압박감에 읽었던터라 책장을 넘기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이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이다. 여주인공 스칼렛이 학교에 입학하여 교육 받을 때에는 진보주의 교육관이 미국에 한참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듀이 대시멀 교수법을 따르고자한 스칼렛의 선생님은 스칼렛이 이미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데에 반감을 드러내는 식으로 작가는 진보주의 교육관을 가진 교사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글이 발표된 것이 1960년. 마침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미국이 공황상태에 빠져 본질주의 교육관으로 전환하려고 할 때였다. 1960년 당시에는 진보주의가 실패한 교육철학으로 여겨졌기 때문일까? 진보주의 교육관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어서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을 발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소설의 초반부에는 스칼렛과 그의 오빠의 생활을 담고 있고, 중반부에는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부래들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인종차별, 남녀차별이 심하였고 소설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흑인은 단지 피부색이 검기 때문에 핍박받았고, 여자이이는 숙녀가 되기 위해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던.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흑백 갈등이나 남녀차별이 그때만큼 심하지 않고 racist라는 말이 미국 내에서는 가장 큰 욕이나 악담으로 여겨질 만큼 인종차별은 가당치도 않는 세상이 되었지만 분명 사회 도처에서 그런 일들이 전연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당 대표란 작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식석상에서 룸살롱 자연산 발언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 환경이나 처우만 보아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다문화 가정, 교육, 양육, 노인복지, 탈북자 정책 등 아직도 해결하고 타협할 할 문제들은 산재해 있는데... 사회적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까지 합한다면 까마득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으면 뭐하겠는가. 뉴스를 보면 나오는 게 한숨이요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가 왜 요모양 요꼴인가 싶은데. 그러면서도 당장 내 피부에는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문제들이니 화만 버럭 낼 뿐 주저주저하고 만다.
100년 뒤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겠지만 그때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는 제 3자의 고통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 친구에게 빌린 1992년 첫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당시 번역 문장이 지금과는 달라서 그런지 문장 중간중간 막히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다른 역자의 책은 어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