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보이 A. 한 소녀를 살해한 죄목으로 14년간 수감된 뒤 가석방 상태로 세상에 돌아온 A는 그를 쫓는 미디어나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A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작은 소망,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잭'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세상에 백만명 쯤은 있을 법한 평범한 잭. 그는 그저 평범한 잭이 되고 싶었다.

잭은 어릴 때 부터 체격이 작았다. 친구도 없었고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기도 했다. 몇몇 덩치 큰 녀석들은 그를 시시때때로 괴롭혀서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집에 돌아온 날이 잦았지만 그의 가족 중 누구도 그에게 따뜻한 관심이나 걱정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때때로 경멸의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보이 A는 보이 B를 만나게 된다. 보이 B를 만나고부터 A는 더이상 맞고 다닐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다른 녀석들이 그를 피하기도 한다. A는 B와 함께 어울리게 되면서 가족에게서도 받지 못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잭은 교도소에서부터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던, 그리고 여전히 세상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후원자 테리의 도움으로 출감 후 새 집과 직장을 얻게 된다. 회사에서 잭은 크리스와 믿음직한 동료로, 미셸과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만 크리스, 미셸과의 관계가 점점 더 깊어갈 수록 잭의 근심이 깊어진다. 거짓 자신과 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진심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면, 미셸과 크리스는 자신에게 여전히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여줄 것일까. 처음 맺은 인연들을 잃을까 두려운 잭은 자신이 보이 A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까봐 늘 초조해한다. 미디어가 가진 그의 사진은 단 한장이지만, 출감한 후 <선>지는 그의 행방을 찾으러 더욱 더 옥죄고 있는 중이라 더더욱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잭은 자신과 비슷한 인상착의의 남자가 보이A로 오인받아 이웃들에게 피습당했다는 기사를 접한 후 끔찍한 두려움을 안게 된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서도 여전히 A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의문 투성이다. A는 법정에서도 그리고 교도소에서 수감하면서도 범죄 사실을 거듭 부인했다. 상담사와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그의 보호감수인 테리와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소리에 그만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말지만, 그가 과연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하고 계속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외톨이 A, 다른 아이들에게 멍석받이나 되었던 A, 아버지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A, 그리고 착하고 소심한 청년으로 자란 잭. A가 과연 끔찍한 살인을 벌일만큼 잔인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을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잭에게 동정표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크리스나 미셸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를 배신하게 되면서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한다. 낙인이란 것이 무섭다고 느끼면서도 잭에게 낙인을 가해버리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고,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반하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나 미셸과 달리 나는 잭의 인생을 모두 관찰했고 그의 속마음까지 꿰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이상은 그를 착하고 성실한 ‘지금 모습의 잭’ 그 자체로만 보지 못하고 있다.

분명 가해자이지만 피해자의 삶을 살았던, 이제는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 된 잭...
그를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그 사람'이 지은 '죄'가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쉽게 양분되지가 않고, 가해자가 법적 형벌을 다받았다고 해서 죄가 형벌과 함께 단칼에 도려져 나갔다고 여겨지지가 않으니 참으로 혼란스럽다.
열 번, 백번 고민해도 똑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15년 전 한순간의 죄'가 '앞으로 살아갈 50년 동안 그의 발목을 평생 옭아매게 될 것이다'고.
이성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인, 가해자이지만 피해자인' 잭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어서 더욱 더 도덕적 혼란을 주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를 다 알면서도 이렇게 그에게 돌팔매질 하고 있는 나 또한 어쩌면 가해자가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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