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르가 만난 파리의 예술가들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상과 화가들의 이야기
앙브루아즈 볼라르 지음, 이세진 옮김, 박재연 감수 / 현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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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의학 공부를 하려다가 법대를 가고, 또 거기에서 미술상을 하게 된 볼라르. 볼라르는 르누아르, 마티스, 마네, 드가 등 유명화가들이 그린 걸작을 헐값에 살 수 있던 시대에 살면서, 직접 그들을 만난 이야기를 이 책에 풀어냈다.


'대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재미, 그리고 그림에 대한 일화를 읽으며 그 그림을 찾아보는 재미까지 있는 그런 책이다. 섬세한 파리지앵 마네와 자유분방한 세잔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르누아르는 드가가 파스텔화에서 손을 떼자 안타까워했다. 세잔은 옛 대가들의 그림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고, 로댕은 본인 수염을 만지며 영감을 얻었다. 피카소 등 많은 화가는 책에 삽입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림 제목에 따라 손님의 반응이 달랐다는 것. 단어 하나로 그림에 대한 이미지를 확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느 정도 퀄리티만 담보된다면 제목만 잘 지어도 인기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림 제목이 실수로 바뀌었을 때, 성녀로 봤던 그림 속 여성을 사탄의 딸로 묘사하는 사람들의 변화도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그 그림을 그린 세잔은 ‘주제가 없다’고 하니 문학 작품과도 유사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같은 작품을 두고도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그 의미를 작가와 제목 등에서 찾기도 하니까.


그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결혼지참금으로 사두었던 그림의 가격이 전혀 오르지 않기도 하고, 다락에 버려지다시피 했던 그림이 비싼 값에 팔리기도 한다. 미술계에서 무명을 인기화가로, 인기화가를 무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해봤다.


사실 책이 전부 두툼해서 부담을 느끼고 조금 미루다 읽게 됐다. 그런데 읽어보니 생각보다 아주 술술 읽히고 재미있었다. 다만 많은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쭉쭉 이어져 나오기 때문에 약간 정신없다.

아름다운 작품은 그 자체에 신비로운 효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 P65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소소한 것이 천재성을 드러내지요." - P205

그러나 그림의 신은 예술에 결코 끝이 없음을 보여주고 싶은 듯 새로운 화가들의 시대를 활짝 열어주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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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 33가지 죽음 수업
데이비드 재럿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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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죽음이 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죽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젊을수록 죽음은 멀게만 느껴지고, 어쩌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노화’는 가장 큰 위험인자다. 많은 병이 생기고 그에 대한 치료법이 생겼지만, 노화는 막을 수 없다. 물론 옛날만큼 눈에 띄게 늙지 않는다. 노화와 죽음을 동일시하기란 힘들지도 모른다. 노화를 거부하고, 나아가 죽음까지 거부한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죽음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드라마에서처럼 “6개월 남았습니다”하며 정확한 기간을 알 수도 없고, 어떤 죽음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리고 질병과 빈곤은 노화와 함께 찾아온다.


저자는 다양한 국가에서 40년간 노인을 주로 돌본 의사다. 많은 죽음을 지켜봤고, 책에서는 본인이 만난 죽음에 대한 경험과 그로 인한 깨달음을 전한다. 뇌졸중과 치매, 우울증, 합병증, 의료사고, 자살 등으로 인한 죽음 속에서 미화된 죽음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약간의 후회와 괴로움이 비친다. 환자뿐 아니라 부모님의 죽음까지 그려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노화의 영향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집단적으로 노화를 부인하는 상태다. 사람의 수명이 150세에 이를 때가 올 거라고 예상한 미래학자들의 말은 틀렸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 P40

누군가가 한창 젊을 때에 죽으면 우리는 그 부당함에 몹시 놀란 나머지, 인간적인 자기기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위로가 될 만한 생각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낸다 - P62

오늘날 매일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산꼭대기로 힘겹게 밀어 올린 바위가 결국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시시포스의 상황에 동감할 것이다. 이 노동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조금 위로가 되기도 한다 - P8

대개는 죽음 자체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심각하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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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띵 시리즈 5
김민철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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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정도면 당당히 한식 재료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식의 5대 재료,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그리고 치즈.” 저자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우리는 이제, 치즈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명실공히 치즈공화국이다. 아쉽게도 다양한 종류의 치즈는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 아침으로 생모짜렐라를 넣은 카프레제를 종종 먹는다. 호텔에 가면 브리 치즈와 과일을 크래커에 얹어서 먹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4가지 치즈가 들어간 피자를 주문한다. 리코타 치즈, 부라타 치즈, 부팔라 치즈를 넣은 요리도 좋다. 때로는 스모크 치즈를 그냥 먹기도 하고, 어느 요리든 체다치즈나 모짜렐라를 넣으면 맛있다. 막상 유럽에 갔을 때는 치즈를 시식만 하고 사오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며 후회가 됐다.


치즈에 관한 딱 하나 괴로웠던 기억은 프랑스에서 먹은 ‘고트 치즈’. 꼬랑꼬랑한 맛이 고르곤졸라의 몇 배는 되는 듯했다. 고트 치즈 외에 다른 맛은 모조리 사라지는 마법을 겪었다. 그럼에도 저자처럼 “그 치즈를 싫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치즈를 먹었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지 않을까? 갑자기 그 치즈에 빠져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블루치즈가 괜찮게 느껴졌던 것처럼.


순수하게, 열렬하게, 한결같이 치즈를 좋아한 저자의 이야기는 치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치즈와의 미래를 그리게 한다. 다음에 유럽에 가면 먹어야 할 치즈 리스트가 생겼다. 브리 치즈와 꿀, 견과류의 조화를, 무화과 잼·블루베리 잼과 랑세 델리스 드 부르고뉴와 사토리 샤도네이 벨라비타노의 환상을, 카망베르의 왕 카망베르 드 노르망디를 맛보고 싶다.


‘억지로’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은 어느샌가 개인의 역사가 되어 있곤 한다 - P10

‘유럽 교통의 중심’이라는 프랑크푸르트의 수식어는 과연 맞았다. 모든 것들이 그 원활한 교통수단을 타고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작은 매력 하나까지도. 딱히 볼 것도, 할 것도 남지 않은 도시였다 - P29

가장 좋아하는 것 앞에 스스로를 방만하게 풀어놓는 것, 그것이 여행의 핵심이니까 - P79

분명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어느새 나를 편협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계를 알았다면, 슬며시 선을 넘어 밖으로도 나가볼 일이다 - P93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위로는 드물다. 그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더 귀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일상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작은 위로가 필요하다. 나의 치즈처럼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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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띵 시리즈 5
김민철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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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치즈와의 미래를 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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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무늬 -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을 껴안고 누워 있으며 생각한 것들
이다울 지음 / 웨일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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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잔잔하면서도 강렬하다.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며 자신의 몸과 내면에 대해 적어 내려간 이 책은 감동과 위로를 주는 삶의 기록이다. 슬픔만이 가득하거나 희망만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참 적당하다. 본인은 “지망생을 지망한다”고 하지만 이미 충분, 아니, 차고 넘친다. 


저자는 과거 정말 건강했다. 하고 싶은 것이 ‘기물 파손’이던 아이는 점점 침대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된다. 누워서 보는 안경 ‘레이지 글래시스’가 저자에겐 아플 때 세상을 보고 느끼고 알 수 있게 해주는 의료도구가 된다. 형편 없는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 논하는 것조차 즐거울 정도로 일상생활은 힘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괴롭다. 아픈 사람은 여행이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같은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기도 힘들다.


병명은 모른다. 병명을 찾는 것만으로도 지칠 정도다. 저자는 병명을 몰라 병명을 갈망하면서도, 그 병명에 속박되는 걸 두려워 한다. “의학적 병명이 없는 아픔은 때로 엄살이라 불렸다”는 말에 몸의 고통뿐 아니라 주변의 시선 때문에 겪은 마음의 아픔까지 떠올랐다.


몸의 병은 마음의 병도 만들고, 병명을 모르니 의사들은 대증치료를 계속한다. 하지만 때로는 약이 사람을 무기력하거나 무감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누구라도 옆에서 숨 쉬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 속에서 힘들 때도 있지만 소소한 행복도 찾고, 또 자신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기물 파손을 꿈에 그리던 소녀의 갈망은 간 데 없고 그저 온 몸이 파손되고 있었다 - P16

상상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으나 오랫동안 몸에 달라붙은 상상력은 불안의 충실한 원동력이 되어갔다 - P123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 P177

정해진 팔자를 말해주는 것이 아주 편리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나를 가둘지라도 차라리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싶었다 - P193

어떻게 하면 각자의 시간을 확보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길고도 지독한 나의 질병 경험이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았다 - P197

어떤 압도적인 슬픔 앞에서, 어떤 압도적인 죄책감 앞에서 위로의 말은 부서진다. 눈물은 갈피를 찾지 못한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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