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화경제사 -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
최우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동화 경제사
특정 텍스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주제의 글을 쓰는 방식은 언제나 나에게 흥미롭다. 이 책 동화경제사가 바로 그렇다.
간혹 특정 챕터에서는 동화에 대한 전문적인 책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원본 텍스트에 대한 설명도 충실한 책이다.
신문에 연재된 것인만큼 주제의 선택도 시기 적절한 것들이 많이 구성되어 있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에대한 역사적 배경 지식도 유용하게 제공한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점은 경제사를 설명하기위해 우리가 친숙한 동화의 일부분만을 차용하는 형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화가 쓰여진 그 시대상황과 배경, 그리고 작가의 삶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책 제목의 ˝동화˝와 ˝경제사˝가 등등한 수준에서 다뤄지고 있다.
가난과 배고픔에 힘겹게 맞서는 거리, 위험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에 짓눌린 공장, 도처에 소녀는 넘쳐났다. 어딘가에서 감자마름병으로 수백만이 굶어 죽어갈 때 어딘가에서 훗날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성냥왕 등극의 작은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공장이 세워졌다. 맨발의 소녀가 머나먼 하늘로 떠난 바로 그 해, 땅의 현실이었다. p.51
피노키오는 19세기 후반 자유주의 시대의 끝에서 탄생한 후, 20세기 파시즘과 산업사회를 거쳐 21세기에도 여전히 굳건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 농민층 자녀의 자유분방한 모험담은 도시 중산충 가정의 어린이가 마땅히 깨쳐야 할 교훈이자 덕목으로 당당히 승격되었다. 자유분방하고 독립된 간계로써의 유년기가 아직 미성숙한 ‘과도기‘로 격하되는 대가를 치른 건 물롬이고. p.84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나온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여행기는 둘 다 조난과 낯선 세상을 줄거리의 뼈대로 삼고 있으나, 그.안에 담긴 지은이의 세계관은 정반대다. 일찌감치 비즈니스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대니얼 디포가 아윤을 쫓는 상인 로빈슨 크루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데 반해, 왕당파 가문의 후손 조너선 스위프트가 그려낸 주인공 걸리버가 전통과 공동체을 끝까지 강조한 건 결코 우연만으로만 볼 수 없다. p.164
꿀벌 마야의 헬레네8세의 꿀벌 왕국과 빌헬름2세의 독일 제국은 슬그머니 하나의 얼굴로 포개진다. 둘의 자연스런 합체를 완성하는 건 자비롭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와 충성스런 일꾼(전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개인보다 전체를 앞세우는 공동체 라는 그럴싸한 이미지다. p.182
남성(마차)에 의존하여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이동의 제약을 이겨내는 여성의 이미지와 자전거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두 다리로 두 바퀴로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는 남녀평등의 알레고리였다. 앤의 시대 몽고메리의 시대가 그랬다.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