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이 책은 의학과 약학의 발견이 어떻게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아스피린, 모르핀, 페니실린, 피임약, 프로작 등 인류가 경험한 대표적인 ‘약’들을 중심으로 그것이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다. 단순히 약리학적 성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약들이 등장했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류 문명의 전환점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꼼꼼히 보여준다. 예컨대 페니실린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피임약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가족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또 모르핀과 프로작은 인간의 고통, 감정,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으며, 의학적 구원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중독과 남용이라는 그림자를 안고 있다.
다독가의 시선에서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약이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수단을 넘어 문명사적 좌표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밝히듯, 약은 권력과 자본, 제국주의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자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떠올린다. 그 책이 제국주의의 팽창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사리사욕,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을 “총과 균과 쇠”라는 도구로 설명했다면, <세계사를 바꾼 열 가지 약>은 보다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의약 종속’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오늘날 다국적 제약회사의 영향력은 식민지 시대의 제국 못지않다. 값비싼 신약은 선진국의 자본을 강화시키는 반면, 개발도상국의 환자들은 여전히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백신이나 필수 의약품조차 특허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의약품은 인류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자본의 거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는 세계적인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새로운 장치이자, ‘약’이라는 이름을 빌린 구조적 억압이다. 다이아몬드가 말한 제국주의의 무력적 수탈이 오늘날에는 의약품을 통한 보이지 않는 종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약의 역사’를 단순히 인류 구원의 서사로만 기억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약은 인간을 살리기도 했지만, 때로는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중독과 남용이라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낳았다. 아편 전쟁에서 보듯 약은 국가 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오늘날 신약의 독점은 국제 질서 속 또 다른 불평등을 낳는다.
<세계사를 바꾼 열 가지 약>은 독자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약을 통해 진정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새로운 속박에 갇힌 것인가?” 다독가로서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의약의 발전사를 아는 것을 넘어, 그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구조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세계사를바꾼열가지약 #책서평 #의약과역사 #총균쇠비교 #제국주의 #의약종속 #세계불평등 #다국적제약회사 #독서에세이 #책스타그램 #비판적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