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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처럼 약초처럼
김인숙 지음 / 문학의봄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척박한 삶을 견디며 지혜의 향기를 피우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이 무엇을 남겼는지, 고단했던 경험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묻게 된다. 젊은 날에는 견뎌야 할 현실이 먼저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현실을 통과하며 얻은 지혜가 삶을 지탱하는 자산으로 남는다. 문학의봄에서 출간된 김인숙 작가의 회고록 『잡초처럼 약초처럼』은 한국에서 학업과 연구자의 길을 시작해 미국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한 여성의 생애를 돌아보며, 고난과 인내가 어떻게 삶의 자양분으로 바뀌는지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일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교 메디컬센터와 존스홉킨스대학교 메디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생활하며 가정과 직업을 일구었다. 낯선 땅에서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전문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이민자로서 마주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정년퇴직이라는 생의 전환점에 이르러 저자는 그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지나온 길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한다.
이 책의 제목인 ‘잡초’와 ‘약초’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면서도, 결국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잡초는 흔히 원하지 않는 곳에서 자라 농사에 방해가 되는 식물로 여겨진다. 반면 약초는 사람에게 유용한 효능을 지닌 식물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잡초와 약초를 가르는 기준은 식물 자체의 본질만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판단에 달려 있기도 하다. 같은 식물도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원이 된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직과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 맞지 않거나 다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때로 불편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저자에게 낯선 미국 땅에서의 이민 생활은 거친 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아야 하는 잡초의 시간과 닮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단순한 생존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인 경험은 자신을 단련하고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하며, 지나온 삶을 해석하는 지혜로 바뀐다. 잡초처럼 견뎌 낸 시간이 약초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의 지혜로 익어 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눈길이 가는 부분은 저자가 과거의 경험을 성공과 실패라는 단순한 잣대로 재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나간 시간을 무조건 미화하거나 고난을 극복한 무용담으로 포장하기보다, 그 경험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돌아본다. 과거는 다시 살아 낼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지나온 경험에서 후회만 남길 수도 있고, 다음 걸음을 위한 디딤돌을 찾아낼 수도 있다. 회고란 과거에 붙들려 사는 일이 아니라 과거에서 지금의 삶을 지탱할 지혜를 건져 올리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꼰대’, ‘만보 걷기’, ‘씨앗’, ‘텃밭’, ‘설날’, ‘졸업’, ‘코로나19’처럼 일상과 세월의 변화를 담은 소재들도 책에 친근함을 더한다. 특별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살아가며 마주할 수 있는 일과 관계, 생활의 풍경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시간을 겹쳐 보게 된다. 세대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나이가 들며 느끼는 변화와 가족에 대한 마음, 고국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감정에는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다. 거창한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회고록의 중요한 매력이다.
특히 오랜 세월 타국에서 살아온 저자에게 한국과 우리말은 단순한 출신의 흔적을 넘어 내면을 지탱하는 뿌리였을 것이다.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도 마음속에 간직한 모국의 기억과 언어는 정체성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민자의 삶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끊임없이 되새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의 회고에는 낯선 땅에서 일궈 낸 생활의 성취뿐 아니라 오랜 세월 마음 한편에 자리해 온 고국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이 함께 배어 있다.
『잡초처럼 약초처럼』은 한 연구자의 이력서나 이민 정착기를 넘어,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잡초처럼 취급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낯선 환경에서 홀로 버텨야 하거나,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어려움이 삶 전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고단함이 훗날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으며, 그 경험을 지혜로 바꾸는 일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잡초와 약초의 차이는 식물에 붙인 이름에만 있지 않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쓰임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거칠고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이라도 그 안에서 인내와 통찰을 길어 올린다면 삶을 지탱하는 귀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지나온 세월을 긍정하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은 날들을 더 깊고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한 위로와 단단한 격려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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