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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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꺼지지 않는 영혼의 불꽃, 숭고한 자기헌신의 완성 『서리꽃 2』


 모든 것이 일순간에 타올랐다 손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인스턴트식 사랑의 시대다. 효율과 계산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향해 조건 없이 제 전부를 내어주는 희생은 미련하거나 비현실적인 감정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러한 메마른 세태 속에서 거장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서리꽃 2』(해냄출판사)는 사랑이라는 가치의 본령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어디까지 품어 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장엄하고도 처절한 문학적 응답이다. 1권에서 싹텄던 순수한 연정과 고결한 연대가 2권에 이르러 극한의 실존적 시험대 위에 오르며, 소설은 마침내 절정과 극적인 반전, 그리고 묵직한 결말을 향해 질주한다.


2권의 서두는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지극한 치유와 재활의 기록으로 시작된다. ‘잔인하게 완벽한’ 장흥의 자연 속에서 이재이는 병마와 싸우는 윤소인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호흡을 바친다. 수술 집도의의 지시였던 세 가지 처방—맑은 공기와 햇볕 속 비자림 산책, 낙지와 키조개, 김과 감태 등 영양을 고루 갖춘 남도 특산물 식단, 그리고 시와 노래, 자연 탐방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을 철저히 수행하며 그는 마치 공주를 모시듯 소인의 곁을 지킨다. 그동안 축적해 온 깊은 철학과 인생론을 흥미롭고 다정한 강연으로 풀어내며 절망에 빠진 연인의 영혼을 북돋우고, 보림사 찻집에서 마주한 반고흐의 그림을 통해 소인의 심연에 깃든 예술혼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 치열하고 눈물겨운 정성에 부처가 감응한 것일까. 소인은 마침내 ‘완쾌’라는 기적 같은 판정을 받아내며 두 사람의 사랑은 가장 찬란한 환희의 정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소설은 안일한 해피엔딩에 머물지 않고 잔혹한 운명의 반전을 드리운다. 완쾌의 기쁨 속에서 소인은 그동안 억눌렸던 예술적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해 화폭을 향해 처절하게 매달린다. 하지만 그림을 향한 과도한 열정은 회복된 육신을 다시 갉아먹었고, 비극은 암의 재발과 전신 전이라는 가혹한 형태로 돌아온다. 소인의 화가로서의 성취, 꿈같은 결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던 재이의 소박하고도 간절했던 바람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난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 거대한 절망 앞에서 피어나는 재이의 사랑이다. 그는 물러서거나 회한에 젖는 대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인의 마지막 소망을 향해 온몸을 내던진다. 반고흐의 예술혼을 흠모했던 소인을 위해 파리와 암스테르담 등지로 떠나는 반고흐 원작 순례의 대장정은 그 자체로 숭고한 사랑의 순례길이다. 소인은 시나브로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와 절망 속으로 침몰해 가지만, 재이는 오로지 ‘영원’이라는 지평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물질, 생의 역량을 불사른다. 그의 절대적인 헌신은 마침내 죽음의 문턱에 선 소인으로 하여금 "오빠, 나 죽고 싶지 않아요. 오빠랑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라는 사무치는 생의 갈망과 진실한 사랑의 고백을 터뜨리게 만든다.


2권에서 더욱 심화되는 종교와 생사에 대한 철학적 성찰 또한 놓칠 수 없다. 작가는 인간이 조작해 낸 초월적 신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거두어내고, 인과의 법칙과 자비, 무상(無常)의 진리를 설파하는 불교적 세계관을 향한 귀의의 암시를 곳곳에 배치한다. 소인의 죽음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마주한 재이가 슬픔에 함몰되어 자멸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그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출가(出家)의 길을 선택하는 결말은 이 소설이 도달한 궁극의 경지다. 소인을 향했던 지고지순한 사랑은 집착이나 세속적 비탄에 갇히지 않고, 우주 만물의 생멸을 관조하고 모든 고통받는 존재를 연민하는 거대한 자비로 승화된 것이다.


영하의 혹한 속에서 투명하게 피어나 찬란한 아침 햇살에 조용히 녹아내리는 '서리꽃'처럼, 소인의 짧았던 삶과 두 사람의 사랑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가장 순수하게 타올랐다. 조건과 편익에 따라 쉬이 버려지는 가벼운 사랑이 난무하는 오늘날, 《서리꽃 2》가 보여준 처절한 몸부림과 희생적 사랑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정의를 새롭게 다시 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고통 앞에서 기꺼이 함께 우는 것이며, 죽음마저 초월하여 한 영혼을 영원의 빛 속으로 인도하는 일임을 이 소설은 묵직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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