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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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노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쇠약', '고독',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사쿠라 가스미의 『읽고 읽고 말하다』(현암사)는 그 익숙한 시선을 조용히 뒤집는다. 평균 나이 85세의 여섯 사람이 스무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같은 자리에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늙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유임을 보여준다.


2026년 제175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아사쿠라 가스미는 거창한 사건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작은 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홋카이도 오타루의 오래된 카페 '시트론'에서 이어지는 '언덕 중간에서 책을 읽는 모임'은 단순한 취미 모임이 아니다. 그곳은 서로의 삶을 증언하고 기억을 이어 주는 작은 공동체다.


이 모임이 특별한 이유는 '낭독'에 있다. 참가자들은 같은 책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그 문장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오래전 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가족과의 이별을 말하며, 또 다른 이는 평생 품고 살아온 후회를 꺼내 놓는다. 문학은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타인의 문장을 읽는 순간 그것은 어느새 자신의 문장이 되고, 책은 삶과 삶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된다.


작품은 낭독이 단순히 글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읽기'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를 저마다 경험하고 있다. 낭독과 해석, 두 가지 '읽기'를 통해서…. 독서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여겨왔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야스다는 낭독을 들으며 묵독으로는 무심히 지나쳤던 문장들이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그는 낭독을 듣고 있으면 '작은 무언가'가 자신의 기억을 두드리고, 책 속 인물의 시선과 자신의 삶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을 발견한다. 혼자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읽어내는 과정임을 소설은 조용히 일깨운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결코 매끄럽지 않다. 청력이 예전 같지 않아 엉뚱한 대답이 오가고, 질문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어긋남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가 살아난다. 목적 없는 수다처럼 보이는 대화는 사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깊은 방식이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완벽한 대답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라는 사실을 소설은 조용히 일깨운다.


처음에는 노인들의 느린 말과 반복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속에 축적된 삶의 무게를 발견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0주년 공개독서회에 참석하지 못한 망자 맘마의 에세이는 이 모임의 가장 큰 힘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공동체의 힘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독서모임 회원들의 '그 사람이기에 가능한 어떤 것'을 보면서 누구라도 어딘가에 결핍과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갖춰진 찻잔이 아닌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선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픔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진다. 동병상련의 공감은 어느새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로 이어지고, 공동체는 서로의 결핍을 메워 주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독서모임이 사람들에게 선물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용기였던 셈이다.


이 작품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노년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과 죽음, 기억력의 쇠퇴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책을 읽고 다음 달의 모임을 약속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거창한 희망 대신 반복되는 일상의 약속이 인간을 지탱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읽고 읽고 말하다』는 독서에 관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관계에 관한 소설이다. 함께 읽고, 함께 말하고, 함께 기억하는 일은 인간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인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소비하지만, 정작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시간은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느린 대화와 낭독이 얼마나 깊은 치유의 힘을 지니는지를 잔잔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은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이 아니다. "다음 달에도 같은 자리에서 함께 책을 읽자." 그 소박한 약속 하나가 오래도록 가슴을 울린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을 이어가는 존재임을 『읽고 읽고 말하다』는 따뜻하고도 깊은 여운으로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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