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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수업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를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건강, 성공, 노후 준비는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애써 외면한다. 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은 이러한 회피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책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죽음을 철학이나 종교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심장이 멈춘 직후부터 시신이 장례를 거쳐 마지막 안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절차를 놀라울 만큼 담담하고 구체적으로 따라간다. 특히 독자를 '당신'이라 부르는 2인칭 시점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마치 자신의 마지막을 미리 체험하는 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남겨질 사람들의 현실까지 함께 바라보게 만든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 장례 절차, 화장과 매장, 장례지도사의 역할, 법의학적 검증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차분한 문체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불편하지만, 읽다 보면 죽음을 알수록 오히려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독일과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가 보여주는 뚜렷한 차이다. 독일에서는 죽음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시간이 비교적 길게 주어진다. 유족들은 장례 방식과 음악, 관의 형태, 추모 의식까지 천천히 고민하며 고인을 배웅한다. 반면 우리 사회는 병원 장례식장을 중심으로 3일장이라는 일정에 맞춰 빠르게 모든 절차가 진행된다. 효율성과 관습은 갖추었지만 정작 고인을 기억하고 슬퍼할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어느 문화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마저 너무 서둘러 처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문화적 차이를 넘어 가장 깊게 남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장례식이 끝난 뒤 찾아오는 적막, 고인의 옷을 정리하지 못하는 마음, 휴대전화와 이메일, 각종 디지털 계정을 정리하며 다시 무너지는 유족들의 모습은 국적과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슬픔이다. 저자는 슬픔을 극복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평생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상실을 억지로 잊으려 애쓰기보다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것이 애도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오늘날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초고령사회와 1인 가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의 준비'가 곧 '삶의 준비'임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례 방식에 대한 의사 표현, 디지털 유산과 비밀번호 정리까지 저자가 말하는 에티켓은 죽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남겨질 가족을 위한 마지막 배려다. 죽음을 외면할수록 남겨진 사람들의 부담은 커지고, 반대로 죽음을 담담하게 준비할수록 삶은 더욱 주체적이고 품위 있게 완성된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의 상당 부분이 독일의 제도와 장례 행정 시스템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한국 독자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법의학과 시신 처리 과정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묘사는 독자에 따라 부담스럽게 다가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적 접근이야말로 죽음을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 책만의 강점이기도 하다.
결국 『죽음의 에티켓』은 죽음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가를 묻는 책이다. 품위 있는 죽음은 마지막 하루가 아니라 살아온 모든 시간의 총합이라는 사실, 그리고 최고의 장례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혼란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를 남기는 것이라는 점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일깨워 준다.
죽음을 직시하는 사람만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더 소중히 살아갈 수 있다. 언젠가 반드시 맞이할 마지막을 두려움 대신 준비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 부모님의 노후와 자신의 삶을 함께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다시 펼쳐볼 가치가 있는 인생 교양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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