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주루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니들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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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삶의 문지방에서 건네는 마지막 통찰 


노년기 삶을 정리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종종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정리해야 합니까? 재산입니까, 관계입니까, 아니면 두려움입니까?” 이 질문에 가장 치열하게 응답한 인물이 바로 중국의 철학자 '주루이'이며, 그의 구술을 엮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은 임종을 앞둔 열흘 동안 남긴 사유의 기록이다. 장폐색과 복수로 음식조차 삼킬 수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더 이상의 의학적 처치가 무의미해진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이기에, 이 책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검증된 행동철학’이다.


주루이는 삶을 연장하는 기술보다 삶의 이유를 묻는다. 단순히 ‘사는 것’에 매달릴 때 인간은 두려움에 종속되지만, 가치 있는 이유를 자각할 때 비로소 생의 주인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두려움을 동력으로 삼는 삶을 경계한다. 두려움은 개인 차원에서는 노예적 삶을 낳고, 사회 차원에서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폐쇄적 민족주의로 변질된다. 두려움을 무기로 타인을 억압하려는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좀먹는다는 통찰은 오늘의 정치·사회 현실에도 유효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죽어가는 고통’을 ‘죽음’과 혼동하는 데서 공포가 비롯된다고 지적한 대목이다.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생명 순환의 한 국면이며, 단절이 아니라 ‘화(化)’—대자연과의 연속적 변환—라고 설명한다. 그는 죽음을 사랑에 비유한다. 능동적 퇴장이며, 이타적 자기완성이라는 것이다. 노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죽음을 멀리 밀어내는 대신 ‘문지방 하나’로 받아들이라는 제안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할 때, 삶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또한 그는 몸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생물학적 몸, 생리적 몸, 사회적 몸을 불교의 법신·보신·응신에 비유하며,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개 사회적 자아, 즉 ‘응신’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이 통찰은 노년기의 상실 경험—지위, 역할, 관계—을 재해석하게 한다. 사라지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역할일 뿐이라는 인식은 삶의 정리에 깊은 위안을 준다.


책 말미의 자녀 교육에 대한 조언 역시 인상적이다. 자존감을 키우고, 다양한 경험을 허락하며,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고, 유머와 존중을 심어주라는 조언은 결국 “소아(小我)에 갇히지 말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이는 노년에게도 유효하다. 개인적 안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 그것이 두려움을 넘어서는 길이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을 준비하는 책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해 삶을 재정의하는 책이다. 노년기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재산 목록보다 ‘두려움의 목록’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걷어낼 때, 남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랑, 기여, 그리고 담담한 용기. 주루이는 마지막 숨결로 그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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