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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당은 없다 - 기후와 인간이 지워낸 푸른 시간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송일만의 수필집 <바당은 없다>(맑은샘 간)는 한 권의 환경서이자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녹아든 생태적 성찰의 기록이다. 제목 속 ‘바당’은 제주어로 바다를 뜻하지만, 작가는 이 말을 단순한 자연지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바당 없음’은 오염된 현실의 바다를 넘어,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단절, 즉 마음속 바다의 소멸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뛰놀던 추억과 푸른 파도의 생명력을 떠올리며 그는 묻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계산하기 시작했는가.” 그 물음 속에는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가 자연의 순환에서 멀어진 슬픔이 스며 있다.
책 전반에 흐르는 문체는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단호하다. 송일만은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과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바다가 병들어 가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절망이나 분노의 언어로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의 회복을 통해 자연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글은 바다를 살리는 방법을 환경운동이나 기술적 대안에서 찾기보다, 인간의 의식과 태도 속에서 찾는다. “희망은 여전히 물결 속에 있다”는 그의 문장은, 작고 느린 변화가 결국 큰 회복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신념의 고백이다.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 일회용품을 덜 쓰는 습관, 그리고 자연을 향해 한 번 더 눈길을 주는 마음 같은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바당’을 다시 존재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수필집은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균형이 무너진 총체적 위기로 바라본다. 빙하가 녹고 해양 쓰레기가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무감각을 반성의 시선으로 되짚는다. 하지만 저자는 기술이나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 내면의 생태적 감수성이 회복될 때 비로소 지구의 숨결도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함께 숨 쉬는 존재로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 삶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이 통찰은 단지 환경 보호의 당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철학적 사유로 확장된다.
<바당은 없다>는 설교하듯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을 두드린다. 작가의 문장은 감성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잊고 지내던 고향의 냄새와 파도의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우리가 바당을 잃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잃는 일”이라 말하며, 자연을 향한 그리움 속에 인간다움의 회복을 담아낸다. 책장을 덮고 나면, 그 말이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윤리적 명제가 되어 가슴에 남는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답은 거대한 담론이나 첨단 기술이 아니라, 삶의 작고 진실한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이다. 송일만의 글은 그 변화를 시작하게 하는 조용한 촉매제다. 바다가 더 이상 ‘없다’고 단정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시 바당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곧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는 일이며, 인간의 영혼을 회복하는 일이다. <바당은 없다>는 그 길의 초입에서 우리를 멈춰 세우고, 깊은 숨을 고르게 한다. 그리고 잊었던 희망의 물결을 다시 듣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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