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직 거기 있었구나
김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평점 :
<지식과감성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사라진 것들과 여전히 ‘거기’ 있는 감성에 대하여
김상 시인의 두 번째 사진시집 『아직 거기 있었구나』는 감성과 예술이 섬세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한 권의 따뜻한 위로다.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자연과 일상 속 풍경이 고요하게 응시하는 사진과 그 곁에 놓인 짧은 시구들로부터 조용한 울림을 받는다. 이 울림은 작지만 깊고, 낯익지만 낯설다. 그 감정의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그리움’ 혹은 ‘멜랑콜리’일 것이다.
사계절을 아우르며 포착된 장면들—아침빛이 스미는 숲, 낙엽이 흩날리는 골목, 겨울 저녁의 고요한 들판—은 시인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존재의 흔적을 새기고 있는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리고 그 곁에 놓인 짧은 시들은 이 정적의 장면에 감정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때로는 잊고 지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하고, 때로는 멈춰 선 시선을 감상이라는 이름으로 인도한다.
현대시가 난해하다는 인식이 자리한 독서 환경 속에서, 김상 시인의 작품은 오히려 일상의 평범한 정경을 통해 보편적 정서를 건드린다. 시는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기억, 사랑, 시간, 고독 같은 감정들을 지나치게 포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낮은 목소리로 건넨다. 그렇기에 이 시집은 전문 시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무리 없이 다가설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진과 시가 상호 보완의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사진이 시를 앞서 감정을 환기하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시가 사진 속 정서를 비로소 명확하게 규정지어 준다. 이는 곧 김상 시인이 시인인 동시에 사진가로서의 자의식을 얼마나 치열하게 사유하고 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감성과 기술, 언어와 이미지가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룬 이 작업은 그 자체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지닌다.
<아직 거기 있었구나>는 단순히 아름다운 시와 사진이 담긴 책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인사이자 독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다. 번잡한 하루의 틈에서 잠시 멈춰 서서, 이 책 한 권을 통해 마음의 속도를 낮추어보는 것도 좋겠다. 여름의 끝자락, 이토록 감성 깊은 책 한 권이 독자 곁에 ‘아직 거기’ 있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선물이 될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 일도 없는 풍경 속에도 어김없이 마음이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김상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사진으로 포착된 일상의 장면들은 겉보기에 평범하고 고요하지만, 시인의 시선 아래에서는 그 안에 감정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이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지나쳐온 모든 사소한 풍경들이 사실은 감정의 공간이었음’을 새롭게 자각하게 만든다. 아침 햇살에 비치는 찻잔, 길가의 오래된 나무, 해질 무렵의 공터 같은 장면들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어떤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존재의 흔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김상 시인의 이 시집은 대단한 사건이나 극적인 문장이 없어도, 충분히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아직거기있었구나 #지식과감성 #김상 #감성시집 #멜랑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