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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클러 ㅣ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이기원 작가의 장편소설 <리사이클러>는 2025년 봄에 출간된 작품으로, 한국형 디스토피아의 새로운 초석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서기 2120년,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몰락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울, '뉴소울시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쓸모없어진 하층민의 육체를 재활용하여 만든 '리사이클러'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리사이클러는 '재활용인간'이란 뜻으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뇌속 칩에 프로그래밍 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생체로봇을 말한다. 하층민들은 젊고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는 매혹적인 제안 뒤에 숨겨진 잔혹한 현실을 파헤치며, 인간의 존엄성과 경제적 효용성 간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시대의 양극화라는 불공정의 극대화된 모습을 1구역과 2구역이라는 물리적 경계로 구분해서 엄연한 차이를 받아들여야만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필연적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의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동운은 1구역 주민들의 평온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잡다한 하층민들의 삶의 사고들을 처리하는 에르트에 근무하는 2구역 사람이다. 그는 자기와 같은 하층민의 존재가 단순히 경제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된다. 특히 췌장암 말기라는 선언은 이제 2구역에서마저 더이상의 소용가치가 사라지고 폐수의 강에 버려질 운명이라는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리사이클러 정비공으로부터 들은 불로초라는 1구역의 신약에 대한 허무맹랑한 소문을 맹신하고 1구역의 고급맨션에서 불로초로 여겨지는 아타셰케이스를 탈취하기 위해 먼저 그곳에 들었다가 갑자기 타오른 불에그을린 강도와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이기원 작가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인간 소외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물질만능과 인간성 소멸은 결과적으로 투쟁과 이기심, 나는 살아야 하고 그러러면 다른 사람은 죽어도 괜찮다는 사고가 판을 치는 지옥같은 디스토피아의 모습이었다. 그 아타셰케이스는 실제로는 불에그을린 강도나 말기암인 동운에 전혀 불필요한 1구역 다른사람의 줄기세포였을 뿐이었음에도 영생이라는 허영을 좇다 마침내 리사이클러의 운명에 빠지게 되는데도 죽기 직전까지도 리사이클러로 환생한 강도와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
2구역은 1구역에서 볼 때 필요악이었으며 1구역의 안락과 평온을 위해 소모품처럼 이용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며 그들은 비록 사회의 하층민으로서 착취당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이러한 감정과 욕망이 저항이라는 모습으로 1구역에 체제전복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출발점은 단지 무위도식하고 호의호식하려는 우매한 욕망이었을 뿐이며 결코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날의 양극화의 골이 좁혀지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간격이 더 벌어지며 필연으로 나타나는 것을 암담하게 그린 모습이라 할 것이다.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과연 우리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가치관이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리사이클러>는 단순히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물질적 가치에만 치중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