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그냥 듣기가 어렵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아서이다. 마음이 쫓기고 위태로울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내가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 사정, 귀를 닫고 싶을 정도의 많은 일이 있는것을 누군가가 들어준 뒤에라야 비로소 우리 마음에 타자의 이야기를 담을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듣기의 회복은 여기부터다.
1장 왜 들을 수 없게 되었는가
갈등의 골이 깊은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선언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단일화 하는 게 아니다. 억지로 간극을 메꾸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목소리를 듣고 상대편 마음 깊은 곳까지 소리가전달 되도록 제각기 흩어진 존재들간에 지속적으로 말이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 언어에 깊은 울림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혹독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의 언어는 그만큼 울림이 크고 멀리 갈 수 있다.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려면 화자와 듣는 사람 간의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된다. 이러한 상호 신뢰는 어느 일방의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기브앤테이크로 상호 존재이유에 대한 공감이 기반이 된다. 공감이란 마음이 아플 때 함께 아픔을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 읮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이러한 인간에게 가장큰 고통은 고독이다. 상대방에게 고독감을 안겨 줬다거나 고독한 상황을 만들었다면( 예를 들어 대화에 끼지 못하게 강제했다거나 자기말만 하거나 상대방의말을 무시해버리는 등) 결코 서로의 말을 상대방에게 듣게끔 할 수 없다. 듣기 위해서는 고독을 이겨내야 한다. 이러한 고독은 혼자서 이기기는 어렵다. 지원군 즉, 내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날 '듣기'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사회가 만성적결핍상태이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많은 이슈가 발생하고 있고,자원은 제한적이어서 모든 사라들의 결핍상태가 심각해진때문이다. 듣기가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2장 고립에서 고독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에 대해 잘 모르고 별로 알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억지로 누군가와 알게되는 게 귀찮다. 건강할 때는 그래도 괜찮을 지 모르지만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나 어린이, 장애인, 저소득자는 고립되게 된다. 그 결과 우울증을 비롯한 몸과 마음의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는 자신을 비난하는 폭력적인 목소리로 착각하게 된다.이러한 폭력적인 소리에서 벗어나고자 술을마시고 주변에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곤 또다시 고립되는 악순환에 갇혀버린다.
고립과 고독은 엄밀히 구분된다. 구립되어 있을 때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지만, 고독해지면 이야기를 들을 힘이 회복된다. 고립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면 정신측면의 이상이 굳어지면서 마음의 문을 닫게 되므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게 된다. 이러한 상태의 사람은 시간을 들여 멏번이고 만나 마음을 여는 것이 최고의 치료가 된다. 마음을 열게하려면 듣기가 필요해진다 이와 달리 고독은 혼자 있을 수있는 자기만의 방이 갖춰진 상태이며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