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 이바구
박경만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절판



 


60~70년대 시골의 풍경은 아이들이 바글바글 한데다 양식은 늘 모자라고 땔감이라곤 농사지은 수확물을 걷어들인 뒤 남는 볏짚이며 보릿짚이며 깻단, 콩깍지, 하다못해 유워리니 칠워리니 하는 여름 제초를 위해 베어놓은 풀더미까지도 고쿠락에 우겨 넣어야 겨우 난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하던 시기이다. 하물며 산림녹화정책을 밀어붙이던 시기여서 산에서 생나무를 베는 일이나 밀주를 담그는 일을 상감(아마 산림감독을 말하던 것 같음, 이 책에서는 산림개로 표현하고 있음)에게 들키기라도 하는날에는 여지없이 인생을 종쳐야 하는줄로 두려워 하던 시절이니 가을철 솔잎을 긁어 땔감을 만들려면 지게에 소쿠리를 얹고 잔 나뭇가지로 발처럼 만들어 솔잎을 멍석처럼 말아 지게에 지고 다녔으며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솔잎채취에 동원되어야 했던 시절이었다.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으며 농경의 큰 일꾼이며 재산목록 1호인 소가 차지하는 위상이 최고로 높았던 시기 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어려웠고 돈을 만들 수 있는 거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이 헐벗고 굶주렸음에도 어울려 놀이를 만들어 즐기는 재미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행복한 일상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제각각 성격도 다르고 나이들도 차이가 나고 하다보니 종종 다투기도 하였는데 그 때마다 집안 싸움이 되어버려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확대되기도 하고 그런 날이면 밤늦게까지 동네방네 고함소리와 서로 퍼붓는 욕설로 온동네가 시끄럽기도 하였다.

야생 동물에 무방비로 노출되다보니 뱀이며 벌이며 각종진드기 파리보기에 뜯기고 거머리에 빨리고 쐐기에 쏘이고 어떤 경우에는 쥐에게 물어뜯기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였고 간혹 삵에 습격을 당하거나 독사에 물려 아니들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발생하였다.요즘 상황에서는 언감생심 입에 꺼내지도 못할 사건사고가 쉴새 없이 터졌던 삶의 현장 이었다.

초등학교3학년이 되자마자 아버지는 어른들 지게 중 하나의 발을 댕강 잘라내어 내키에 맞추어 만들어 주고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여름이면 소풀을 베게하였고 겨울이면 땔감을 베어 오도록 하였다. 신작로 가에 난 풀은 소를 몰아 플을 뜯기거나 길 옆에 소를 매어두어 온동네를 둘러보아도 키큰 풀하나 찾기 힘든시절이어서 풀짐을 하러 가려면 산길을 올라 오솔길을 따라올라가 작은 내를 건너 서낭당 초입에 듬성 듬성 나있는 억새풀이나 바랭이들을 베어 짐을 짜야 했다. 반바지만 입고 런닝구에 고무신을 신고 풀을 베다보면 바로 눈 앞에서 독사든 울혈목이든 구렁이든 뱀이 자주 출몰 하였고 가금은 예리한 낫에 목이 잘려 나갈때도 있지만 풀을 베어나가는 바람에 쫒긴 뱀이 베어나가는 사람 쪽으로 도망치는 경우도 있어 뱀이 발등위로 지나가는 상황도 겪었다. 어쩌다 독사라도 한마리 생포하게 되면 낫으로 목을 누른 뒤 목을 잡아들고 칡을 잘라 껍질은 벗겨 끈은 만들어 작대기에 매달고 내려와 뱀을 드시는 할아버지에게 팔기도 하였다.

겨울방학이 되면 아침을 먹자마자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통나무며 물거리를 하루 적어도 4짐이상을 짧은 시간안에 마치려 도시락을 싸들고 나가는 경우도 생겼다. 가끔은 다섯짐을 채우느라고 저물고 이슥할때까지 산에 홀로 있어야 할 경우도 있었는데 산짐승들에 대한 두려움과 무덤에서 풍기는 두려움들이 생기기라도 하면 오금이 저리고 걸음이 떼어지지 않아 지게고 나뭇짐이고 내려두고 도망치듯이 내려오는 경우까지 있었다.

절구통을 눞히고 그 위에 볏가리를 내리쳐 이삭을 떨구던 방식의 탈곡, 스케토(저자의 놀이기구와 닮았다), 보름날 쥐불놀이, 식량증산을 위한 퇴비만들기, 초등학교 화목난로에 땔 땔감들고 등교, 도시락과 책보, 개울물고기잡기 등 어느것 하나 생소한 것이 없는 익숙한 내용들이<율리 이바구>에 담겨 있다.


율리 이바구를 읽으면서 저자가 겪은 수많은 사연들이 어릴 때 직접 겪었던 내용과 너무 흡사하고 느낌도 비슷하여 내이야기를 하는것 아닐까라는 착각에 빠질정도였다. 집안의 장남은 집안을 일으킬 대들보라 생각하던 부모님들은 장남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그 밑에 동생은 여자라면 당연히 희생을 하여야 했고 남자라도 집안 사정에 따라 학업을 중단하고 농사일에 나서야 하는 것을 당연시 했었다. 그러다 보니 생노가다라는 막일은 거의 집안의 둘째가 떠 안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의 경우도 큰형을 유학 보내놓고 학비를 대느라 희생하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삶이 녹아 있다. 소죽을 끓여 대고 농사일을 거들며 땔감까지 해대는 초등학교 어린이의 삶이라 하기에는 힘겨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송아지라도 낳아 놓으면 큰형님의 뒷바라지로 없어지고 집안 살림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아버지가 술이라도 먹는 날이면 엄마와 대판 싸우는 날도 많았다. 큰 형이 유학가서 자취라도 하라치면 여자동생은 여지없이 밥을 해주는 처지로 나서야 했고 엄마는 때마다 반친거리며 양식을 이고지고 자취방으로 날라야 했다.


전화도 귀하고 전기도 없던 시절 텔레비젼을 보려고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한곳에 모여 마치 소극장을 방불케하는 모습은 레슬링 김일선수의 박치기경기를 보려 2키로미터나 떨어진 동네로 텔레비젼을 보러 다녔던 기억을 소환하기도 했다. 텔레비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은 그야말로 칠흑같은 암흑속인데 자갈길에서 반사되는 희끄무리한 윤곽을 지표로 길을 찾아 오솔길을 걷고 개울돌다리도 건너고 집에 도착하게 되면 아무리 쌀쌀한 가을이어도 온몸이 땀에 절어 찬 서리마져 이슬처럼 녹아아 흘러내리던 시절이 생각 난다. 텔레비젼에서 본김일선수의 통쾌한 승리의 기쁨으로 2키로미터의 밤길은 짦은 산책길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가 국어책에 실려 읽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익숙한 배경과 익숙한 사건들이 이책에 실려 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추억의 이야기들이 때로는 세밀하게 때로는 쏜살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이야기의 시제를 모두 현재형으로 해두어서인지 실감이 더 확실하게 드는 것도 매력이다. 그냥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예상되는 만큼의 이야기가 벌어진다.

미경이 내용만은 내가 자랐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철저한 분리교육이 아주 어릴적부터 있었고 남아선호사상이 극에 이르던 시기여서 여자라면 아예 차별대우를 당연시 하던 시기였다. 남녀가 잠시라도 이야기를나누거나 함께 걷는다거나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순간 엄청남 놀림의 대상이 됨은 물론 공공의 적으로까지 몰리던 시절이었다. 남녀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함께 놀지도 않았고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이 책처럼 이성에 대한 감정이란 게 형성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60년대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읽는다면 깊은 정신적 정화의 효과를 맛볼수 있을 책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골에 살았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고 삶을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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