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애니메이터인 웹디자인 회사의 여사장 쥴리아와 첨단 안드로이드를 제작하는 대기업 CEO인 그녀의 아버지인 안토니 왈슈간의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을 안토니 왈슈의 주도면밀한 사전 계획하에 하나하나 짜맞추며 전개된다. 쥴리아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갈구 하였으나 늘 업무가 바쁜 아버지는 그녀에게 만족할 만큼의 표현을 하지못했고 마침내 그녀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원망이 되고 미움이 되면서 깊은 골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안토니 왈슈는 단 한순간도 자신의 딸인 쥴리아로부터 시선을 뗀 적이 없으며 출장중이라 하더라도 그의 비서를 통해 그녀의 일상을 일일히 보살피고 있었다.
쥴리아가 자기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부모의 의견을 묻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인 것에 대해 관여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동독과 서독이 분리되어 서로다른 체제하에 있을 때에 그녀가 동독 청년을 사랑하였고 나아가 그 청년과 함께 동독 할머니집으로 들어가 살고 있을 때 안토니 왈슈는 그녀가 공산주의체제하에 잘못된 선택으로 불행에 빠질것이라고 예측하게 되었고, 부득이 그녀의 삶에 관여하여 동독 연인인 토마스와의 결별을 강요하게 되면서 부녀간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쥴리아만이 그녀의 아버지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미워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그녀의 아버지 안토니 왈슈는 그녀의 행복을 짓밟고 그녀에게 불행만을 가져다 주는 악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독일은 통일이 되었고 공산주의 체제하에 갇히게 되어 억압되리라는 위협요소가 완전히 사라지자 안토니는 자신의 부적절한 관여로 쥴리아의 연인이었던 토마스를 집으로 찾아가 구타하고 강제로 빼내오는 등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었다. 첫사랑인 토마스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며 새로운 결혼 상대인 아담과의 결혼을 앞두고도 잊지 못하는 모습을 알고는 딸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모든 모종의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즉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여 장례식을 치르게 함으로써 당장 닥친 결혼을 미루게 만들고 그녀의 첫사랑인 토마스와의 완전한 정리가 새로 맞이할 남편과의 행복에 절대적이며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안드로이드 로봇으로 변장하여 쥴리아에게 배송된 안토니 왈슈는 쥴리아의 생각을 너무나도 훤히 읽고 있어서 그녀의 생각을 가로챌 수 있었고 마침내 그녀와 둘이서 6일간의 여행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여행기간동안 안토니 왈슈는 쥴리아의 출생전 그녀의 엄마와 만난 이야기부터 그녀가 어릴적 행복했던 시간을 되새겨 보게 하고 서서히 부녀간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다. 당초 신혼여행지로 잡았던 몬트리올로 여행을 떠난 쥴리아는 안토니의 계획에 따라 미리 배치해 둔 초상화를 그리는 여화가가 걸어 둔 토마스의 초상화를 보고 토마스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애틋함을 알게 된다..쥴리아가 알고 있는 토마스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는데 안토니의 정보통은 그가 아직 생존해 있고 여전히 기자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것을 안드로이드가 전해준 편지를 통해 알게된 쥴리아는 여전히 토마스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와의 사랑만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 한다. 이것을 파악한 안토니는 베를린으로 토마스를 찾으러가서 그의 친구였던 크나프를 만나게 되고 그의 계략으로 토마스와의 연락이 끊겼음도 알게 된다. 크나프의 계략은 쥴리아의 행적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 되었음을 밝히게 되고 마침내 쥴리아와 토마스는18년만의 재회시간을 가지게 된다. 안토니의 마지막 과업은 결혼을 약속한 아담과의 관계를 끝내는것이었다. 아담으로 하여금 안토니의 음모임을 깨닫게 하여 영원히 쥴리아로부터 떠나가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토마스가 들어오게 만든다.
어떤 부모도 자식을 대신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을 걱정하고 자식들이 괴로워 할 때 함께 힘들어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그래서 가끔은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 하고 자식들이 갈길을 더 쉽게 열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안하고 멍청하게 있느니 차라리 자식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 때문에 서투른 솜씨로 나서서 실수를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안토니 왈슈. .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알기 전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