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마법사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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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러시아인들의 이름이 혼돈에 휩싸였다. 풀네임, 귀족적네임, 통상적 호칭, 애칭이 제각각인 이름이 같은사람인지 아니면 또다른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노트에 사람이름을 쓰고 새롭게 부르는 이름이 등장 할 때마다 기록해두고 참고하면서 읽으니 그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 했다. 처음 읽으면서 문맥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번역상 직역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원문 자체가 문법이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30페이지정도를 읽어나가다가 이야기의 흐름이 가닥이 잡히게 되어 다시 반복해서 읽곤 하였다. 외국작품의 번역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생각인데 전문 번역인이 소신껏 번역하고 완벽하게 우리말로 옮겼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작가의 독특한 전개방식이 기발하다.

작품에 쓰인 실명은 인터넷검색을 하면서 읽을 수도 있어서 전반적인 전개내용을 가닥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작품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등장인물들의 실명을 사용한점과, 푸틴의 정권 장악 과정과 그 당시의 세계 정세, 그리고 굵직한 국제행사등이 시간의 틀에 짜맞춰져 있어 허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독자들의 긴장감을 늦출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울러 작가의 신념이나 사상을 은근히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강요한다. 이 책이 작가의 최초의 출판작이라니 천재적 작가라는 이름이 전혀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책 제목이 크렘린의 마법사로 정한 이유는 크렘린궁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과정이 극비에 이루어질 뿐더러 그 결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며 그렇게 이루어지는 행동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 불가능한 구도로 진행된다는 데 있다.

<소설의 내용>

이 소설의 독백자인 바담 바라노프는 할아버지가 새옹지마 운이 좋게 이어져 동료들이 독일과의 전쟁터에 나가 죽어나갈 때 오히려 행정관이 되어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귀족의 반열에 들게 되면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저자는 1839년의 러시아를 퀴스틴의 작품을 인용하여 밯라노프의 할아버지 시대 러시아를 표현 하였다.

"궁정의 인맥이 부와 권력에 이르는 유일한 수단이다. 민중의 열정에 기대는 건 러시아에서는 아무 효과가 없다.

요컨대 이기는 자는 언제나 궁정을 자기 힘의 근거로 삼는다.

재능보다는 아첨이, 웅변보다는 침묵이 더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유가 거기 있다. 차르에게 잘 보이려고 한겨울 망토없이 산책하는 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을 예리하게 본것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언제나 나지막한 소리로 그걸 이야기 하는 사람에 의해 조금씩 변하기 마련

벙어리의 나라, 잠자는 미녀의 나라, 자유의 숨결이 결핍된 만큼 경이로우나 생명이 없는 나라, 어제와 같은 오늘"

어찌 되었든 할아버지는 차르시대(전제군주시대)의 귀족으로 자기자신을 소신껏 표현하며 살았다.

바라노프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달리 공산당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러시아가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일 때이므로 그러한 아버지의 성품은 당으로부터 칭송을 얻게되었고 고위공무원으로 '크렘리오브카'식량바구니를 받으며 바라노프의 유복한 어린시절을 가능하게 하였다.

러시아국민들의 특성은 풍족한 자원덕분에 너무빨리 너무 많이 벌린 돈을 주체할 수 없는 나라여서 자분주의 국가와 달리 돈을 가볍게 여기고 권력과의 근접성을 특권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데 있다. 왕정시대에도 그랬고 소비에트체제에서도 그랬다. 특권이란 자유의 반대이며 노예화의 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엘리트 집단은 차르시대 귀족들과 많이 닮아 있다. 돈에 대한 귀족 특유의 경멸감이 존재하고 민중에 대한 엄청난 괴리감과 거만하면서 폭력적인 성향이 귀족의 그것을 빼닮았다. 볼세비키 혁명이든 쿠테타든 어떤 명분을 들이 대더라도 그들의 근본적인 통치체계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달리 소비에트 체제에서 인정받기 위해 본연의 심성을 감추고 평생을 명예, 사람들의 존경, 군인들의 경례, 당 총서기로부터의 화환, 고위관료들의 도열, <프라우다>에의 게재와 같은 성대한 겉치례를 위해 살았다.

아버지의 명예는 고르바쵸프의 자본주의 도입과 더불어 철저하게 파괴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비판하게 되었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할아버지와 같은 삶의 방식을 동경 하였다.

바라노프는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일체의 의도와 의무, 기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연극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예술이 문화이며, 건설이며, 예언이며 진리라고 믿게 되었다.그러다가 인생의 반려자가 될 크세니아를 만나게 되었다.

크세니아는 엄청난 미인이었으나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낸데다 교육도 제대로 못받았으며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타인을 배려하는 아량이 없었다. 그러한 크세니아에게 바라노프는 묘하게 빨려 들어가게 된다. 크세니아의 독특한 개성은 러시아 역사상 위대한 독재자들이 사용했던 '예상치 못한 처벌'이라는 인정사정 없고 변덕스러우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힌 야수와 같은 벙법을 사용해서 바라노프를 장악했다는 점이다.

크세니아의 특성은 이후에 바라노프의 군주가 된 푸틴의 특성과 묘하게 일치한다.

러시아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밀려 들 때 바라노프는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신봉가이며 선도자인 미하일에게 연인인 크세니아마져 빼앗기게 된다. 그때가 되어서 비로소 변화에 눈을 뜬 바라노프에게 운명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방송업계 소유주인 베레좁스키와 합동으로 옐친의 후계자로 푸틴을 옹위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 푸틴을 총리로 등극시키고 옐친을 대통령에 재당선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하고 이끈 실세였던 베레좁스키에 대해 부족함을 느낀 푸틴은 바라노프에게 참모가 되어줄 것을 강제하고 베레좁스키와는 결별하게 된다.

푸틴은 남들보다 빨리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고, 주저 없이 목표로 돌진하였는 바 자잘한 예법과 형식을 챙기는 일은 중요시 하지 않았다. 공무원으로서 청렴결백하게 살고자 했으며 자신이 책임진 일을 어떻게든 완수하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했다.

옐친의 뒤를 이어 푸틴은 마침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집권초기 대내적으로 자본주의의 충실한 수용자들인 올리가르히 세력을 대거 숙청하기 시작했으며 국가경제의 정상화와 민심을 동시에 얻는 방법을 사용했다.미하일의 처단은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었으며 그동안 러시아를 얕잡아봐왔던 서구사회에 경종을 주는 일이었다. 즉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모든 걸 해결해주진 못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자기돈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할지언정 그 돈을 통해 정치권력보다 우위에 설수는 없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그때부터 서방국가들과 기존 관계를 재정립하기 시작 했다. 이제 러시아가 더이상 쇠퇴한 나라가 아니며, 공산주의의 멸망을 증명한 나라도 아니며, 세계사에 점차 사라져갈 비운의 나라는더더욱 아니라는 의지를 강하게 어필하려 했던 것이다.

<올리가르히>는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에너지 자원/지하자원 국영 기업들이 민영화되면서 이를 싼 값에 구입해 해당 기업이 담당하던 영역을 독점, 엄청난 부를 손에 넣었다. 올리가르히 일부는 정계 및 마피아와 결탁해 공생 및 불법적인 영역에도 손을 댔다. 1990년대에 이들의 부정부패와 사치향락은 그야말로 악명이 높았다. 당대 러시아인들 대다수가 물가폭등과 루블화 가치하락으로 고통받을 때, 이들은 호화스러운 해외여행이나 고급 호화별장 따위를 지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면서 나라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대거 외국으로 빼돌렸다.

이로 인해 기업은 국내에 사업장을 짓고 고용할 여력이, 정부 역시 민생을 돌볼 여력이 줄어든 만큼 빈부격차는 더 극심해져 올리가르히를 증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옐친 대통령이 추진한 민영화 정책의 수혜자인 올리가르히는 옐친에게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베레좁스키가 경영하던 민영 TV 방송 ORT에서 공산당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소련을 암울하게 그린 뉴스나 다큐를 집중적으로 방영했다. 덕택에 19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옐친이 대패하리라 예측들 하였으나, 실제 선거에선 예상을 깨고 옐친이 53%로 재선에 성공했을 정도였다. 올리가르히의 선두주자였던 베레좁스키는 푸틴에게도 상당한 금전적 지원을 했다.

푸틴도 올리가르히의 지원하에 총리가 되었고 2차 체첸전쟁에서의 승전으로 옐친에게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올리가르히의 행태가 악명 높아서 여론이 매우 나쁜 데다가 이들이 돈을 이용해 다른 인물을 띄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상당수 올리가르히 인사들을 부패척결 명목으로 숙청했다. 올리가르히 세력은 기껏 푸틴을 지원하고도 뒤통수를 거하게 맞고 몰락해버리고 만 셈이었다.

숙청 이후에도 살아남은 올리가르히 세력들은 푸틴의 눈치를 보면서 충성하지만 과거만큼의 권력까진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을 대신해 권력의 정점에 선 존재들은 푸틴 대통령 본인을 포함하여KGB 출신이 대부분인 실로비키였다.에너지, 원자재, 운송, 통신 등을 올리가르히로부터 회수하여.실로비키로 물갈이해버린 것이다. 권력과 부와 무력을 결핍을 느끼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인간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충성심이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마음으로부터 충성심을 키워낼 수 있을만큼 자신감 넘치는 강한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소설의 막판에 접어들면서 프리고진이 등장하지만 그에대한 기대만큼 충분하진 않은 내용들이어서 얼마전 러시아 반군이었던 것과 대조해서는 조금 맥이 빠졌다. 이 책에서는 베레좁스키에 대해 죽을 때까지 상세히 그렸는데 푸틴에 대해 죽기직전 애원하는 편지를 쓸정도로 힘겹게 살았음을 내비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푸틴은 강압적이고 빈틈없으며 냉혹한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의리를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소치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충신 세친과 알력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푸틴의 두터운 신뢰는 전적으로 바라노프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였고 성공적인 행사로 마무리하게 된다. 힘을 얻은 바라노프는 푸틴의 정적이자 자신의 연적이었던 미하일을 사면하므로써 진정한 힘은 돈이 아닌 권력과 무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확고하게 선언한다. 바라노프는 마침내 자신의연인을 낚아채갔던 미하일에 완승을 하고 크세니아를 영원히 자신에게 속하도록 만든다. 완벽한 승리를 이룬 것이다.

세계를 좌우하던 권력의 중심에서 수많은 결정과 판단을 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던 바라노프는 절정의 시기에 그 세게에서 떠나고자 결심하였고 마침내 그렇게 떠나왔다. 이제 막 얻은 딸 아냐에게 집중된 그 행복감은 크렘린의 어떠한 권력이나 야심도 끼어들지 못하게하는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소설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소설로 보기에는 현실과 닮은점이 너무 많다.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난느낌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진행중이다. 그 중심에는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과 젤렌스키가 있다. 이 전쟁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세력들중에 올리가르히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올리가르히를 악으로 규정하였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협력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책에서 푸틴이 올리가르히를 철저하게 파괴한것으로 표현하였으나 아직도 전쟁중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러시아 국내에서의 전쟁이었다면 지금은 러시아 외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인 셈이다. 크렘린에서는 지금도 푸틴을 둘러싼 인물들이 이 전쟁에 대해 수많은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 모든 러시아인들이 제약을 받는다.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을 물리친 러시아인들의 심성 밑바닥에 깔려 있는 끈덕진 기질이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제정러시아로부터 공산체제인 소비에트를 거쳐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소련의 해체를 지나 다시금 세계의 패권을 쥐려하는 러시아의 역사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좀더 리얼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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