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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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려거란 전쟁-길승수 지음




 


 

고려거란전쟁

1차침공 993년 소손녕의 침공

2차침공 1010년 거란황제 야율융서의 침공(소배압이 도통)

3차침공 1014년 소적렬의 침공

4차침공 1015년 야율세량의침공

5차침공 1017년 소합탁의 침공

6차침공 1018년 소배압의침공(구주대첩)

7차침공 1023년 야율해령의 침공



약 30년간 7차례나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는 이를 이겨냈다. 거란이 짦은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침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뛰어난 리더(승천황태후)가 뛰어난 인재를 등용했고 그 인재들이 또 다른 인재들을 천거하여 그 수많은인재들이 거란의 부흥기를 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을 통한 거란의 철수는 사실이 아니다. 담판만으로 거란군이 철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여건이 거란으로 하여금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3대대첩인 살수대첩, 구주대첩, 한산대첩중 하나인 구주대첩은 고려 태조 왕건의 거란에 대한 적개심, 특히 발해를 멸망시킨데 대한 보복으로 시작 되었다. 왕건은 고려 건국 후 후삼국체제하에서도 강력한 북진정책을 추구 하였다. 옛 고구려의 영토를 되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북진 정책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고려거란전쟁이다. 특히 6대왕 성종과 8대왕현종대에 이러한 정책은 매우 강력하게 추진되었고 이런 정책은 결국 고려와 거란과의 화해보다는 전쟁을 택하게되었고 왕건의 유훈인 훈요10조에서도 3개조에 걸쳐 강력한 북진을 유언으로 남겨두고 있다.

고려 6대 왕위에 오른 성종은 그 이전까지 태조 왕건의 유지로 보존되어 시행되던 연등회와 팔관회의 폐지를 선언하였고 주례와 예기를 기준으로 유교적 의식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행해지는 유교적 행사 대부분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993년 거란군이 밀려오자 성종은 중군사 서희와 함께 전장에 나섰다.성종은 왕으로서의 책임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왕이라면 위험을 무름쓰고 솔선수범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적어도 그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왕이었다.서희는 고금을 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뛰어난 신하였다. 위로 성종은 고려의 정치체제를 선진화 시켰으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서희의 공헌이었다. 아울러 성종과 서희는 소손녕을 필두로한 거란의 침입을 막아냈으며 고려의 방어전략의 기틀을 만들었다.

뛰어난 신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왕이있어야 한다, 성종은 그런 왕이었다.

고려 제 8대왕은 현종이다. 어려서 실세권력을 휘두르는 천추태후의 여러번에 걸친 시해 위험을 모면하고 강조의 반란시에 왕위에 올랐다. 현종은 다른 왕들과달리 거란과는 일전을 불사하겠다는용기와 배짱을 가진 왕이었다. 중세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던 다른왕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진 임금으로 국난시에 자신을 시행하려던 살마들까지도 포용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펼친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훌륭한 인재들이 활약하게 되고 수많은 거란의 침입에도 나라를 잃지 않고 국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명한 군주 아래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어 활약을 펼치게되는데 거란과의 전쟁에 수적인 열세에도 끝까지 싸워 마침내 승리를 일구어내는 영웅들이 있었는 바 서경의 조원과 강민첨, 서북면도순검사 양규, 구주대첩을 일구어낸 강감찬과 같은 기라성같은 명장들이 현종을 중심으로 구국의 정신을 앞세워 나라를 구해내는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

한편 이즈음 거란 성종은 소합탁이라는 간신배를 중용함으로써 그동안 거란의 융성을 뒷받침 했던 승천황태후의 인재등용체계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결국 고려의 공고한 인재등용체계와 잘 짜여진 대비책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되며 망국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장은 고려거란전쟁의 대미라 할 수 있는 구주대첩을 소개 하였다.

고려를 그토록 침공하던 거란은 한번도 고려를 굴복시키지 못한 데 한을 품고 수많은 전쟁을 치룬 노장 소배압을 필도로 고려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시도하게 된다. 이 때 고려는 현종과 강감찬이라는 명장이 미리 전쟁에 대비한 준비를 해두었고 현종은 군권을 강감찬이라는 뛰어난 인대에 전권을 윌임하는 파격인사를단행함으로써 군 통솔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여 동부 김종현의 적시적절한 활용을 가능케 하므로써 거란의 10만대군을 초토화 시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붕괴시키게 되었다.

고려 현종의 새로운 일면을 알 수 있었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와 장비의열세에도 한번도 거란에 굴복하지않았던 고려의 힘은 태조 왕건으로부터 비롯된 거란에 대한 적개심과 시대를 초월한 탁월한 명군들의 리더십, 그리고 이러한 정책실현이 가능하게 만든 영웅호걸들의 충성심과 이를 믿고 따른 수많은 국민들의 신뢰가 서로 삼박자를 맞추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삼요소 중 어느것 하나라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면 진나라나 송나라처럼 상승일변도의 거란이라는 신흥세력에 무참히 짓밟히는 신세가 되었을것이다. 명군과 영웅과 민심이 일치단결하여 이루어낸 고귀한 승리가 고려거란전쟁에서 얻는 지혜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 입니다.

작가 길승수

역사콘텐츠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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