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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45
김승옥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줄거리 위주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인물 위주의 소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만남과 거기서 보게 되는 또다른 자신의 모습.. 작가는 그런 만남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걸까?..
'나' 와 하인숙의 관계는 소설 전반의 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비춰봐서 필연적 만남,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와 하인숙은 맞물리는 톱니 바퀴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들, 서로 상대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볼 때 그 두 인물은 서로 닮아있다. '나'라는 인물은 세상속을 벗어나 무언가 신비스럽고, 짜여지지 않은 무진으로 온 사람이다. 반면에 하인숙은 무진이라는 뿌연 마을 속에서의 권태로움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하인숙은 현실의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서로가 만났기 때문에 필연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필연성을 작가는 크게는 위의 내용처럼 작게는 '나'가 격은 주변 사건들에게서 보여주고 있다. 먼저 '나'가 광주역에서 만난 미친여자는 나로 하여금 어두운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무진이란 도시에서 페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즘의 자신, 그 생활 속에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자신,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나'는 무진에서의 권태로움을 가진 하인숙과 같은 경험을 (표면적으로) 한 것을 기억한다. 이 기억은 후에 '나'가 하인숙의 마음을 이해하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술집여자의 시체를 보고 연민을 느낀는 장면도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존재가치의 가벼움을 좀 더 이야기하려 한 것 같다. 술집여자의 시체는 순경에게 '한 인물의 생의 마감이라는 의미' 보다는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드려 진다.여기서 나는 자신과 같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위치보다는 돈 많은 아내와 장인에 의해 움직이는 그 자리에 있는 그냥 그런 존재로 인식되는 그 시체에게서 연민을 느끼며 동질감을 갖는다.
그 날 '나'가 그런 모든 상황들에서 느낀 감정과 하인숙의 탈출 하고픈 권태에서 서로에게 무언가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만남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만남은 그런 면들을 감싸주고 채워주는 정신적인 만남이아니라 다만 육체적인 만남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하인숙의 자신이 싫어졌던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진지한 물음) '나'는 우스갯 소리의 말을 꺼내는 것으로 작가는 표현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알려준다. '나'가 일부러 그랬단는 것을... '나'는 점점 자신의 생활 속에 들어오는 하인숙을 처음에는 반갑게 여겼다가 현실을 생각하면서 거부하고 싶었으리라. 마지막 부인의 전보는 하인숙과 그 사건들을 품고 있는 무진을 '나'와 분리시킨다.
무진이란 마을은 '나'가 그저 왔다가 가는 안개로 가득 찬 몽상적인 도피처인 것이다.이것은 '나'의 무의식적인 세계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나'는 무진이라는 마을을 다녀온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속을 여행하고 온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서의 생활은 현실의 생활과는 연결되지 못하고 다시 '나'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것이다. 주인공은 무진을 떠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진정한 만남을 원한(마지막의 하인숙의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서 알수 있다) 하인숙의 마음을 저버리고 그냥 현실로 돌아가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을 것이다. '나'와 하인숙은 정신적인 필연성에 의해 만났지만, 그 것을 진정한 만남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서로에게 채워지지 않은 모습만을 보이고 헤어진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만남을 갖지만 그 중에 진정한 만남은 몇이나 될까?.. 이 소설은 바쁜 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좀 더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책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