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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평점 :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 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잎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 허수경, 공터의 사랑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다가,
틈틈히 읽으려 옆에 놓은 시집이였다.
내게 소설읽기란
실재보다 덜 참혹한데도,
더 불편하게 느껴져 부담스러운..
그런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시인이 몸소
입구까지 바래다 주어야
집중이 쉬워진다.
학생회관의 상석에 앉아
신입생들 데리고 구라를 풀고 있는
졸업시기가 훨씬 지난듯한 복학생같은 하루키
그런 느낌적 느낌이라
한숨이 방울방울 맺히고,
내 기필코
말 수를 줄여서, 적을 줄이리라..고 했던,
막말러의 맹세가 흔들릴 때,
내 손을 잡아 준 허수경 시인.
그대 고운 목소리에
첫 장부터 입이 돌아 간다.
서른도 안되었던 시인이 쓴
너무도 나이들어 버린 시는,
차라리 하루키옵하의 Evergreen이
형형한 눈빛의 소녀가장이 보는 희망보다는
구경꾼 입장에서 덜 아프겠다는
그런 계산적 계산을 하게 한다.
인생에서 타이밍은 언제나 양아치라던데..
사람용량마다 다르게 멕이는 시간도 역시, 양아치임이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