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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2세의 별볼일없는 소설가 박수영은 총 십일 개월 동안 깊은 산 속에서 와신상담 소설 집필에 매진하다가 최근 하산했다. 그사이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여 세상이 아수라장이 된 줄도 몰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에 따라 UN의 심사를 받고 세계 각지로 흩어지는 중이다. 소설을 탈고하는라 뒤늦게 심판장에 도착한 수영에게 서기는 말한다. "소설가라, 소설가…… 모집 직종란에 없는 직업이군요."(196쪽) 소설가가 다이상 직업을 인정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완벽하게 무능력한 무직자다. "선생이 쓰는 소설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전구나 라디오 같은 발명품 아니냐."(207쪽)라거나, "노동 없는 곳에선 소설도 아무 의미 없는 게 아닌가요?"(208쪽)라는 심판관의 논리 앞에서 "그러니까 소설은…… 예술의 영역이니까……"(206쪽)라는 수영의 대답은 무력하다. 그는 어떻게 자신을 증명해야 하나._300~301쪽 :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에서

사는 배경이 대한민국이라면..
그리고, 그곳의 삶이 익숙하다면..
고작 십몇개월이라도
산속에서 지내다가 하산해 보면
원자력발전소가 좀 폭팔할 수도 있고,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이 작품에서 묘사된 상황이
그리 모진 상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무척이나 슬프고 비극적이겠으나
기상천외한 것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으려니..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게
다이나믹 코리아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가 보일 태도라고 본다.
그리하여,
이수호작가의 수인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원전폭팔도..세상 폭망도 아니고,
UN심사관의 네가 예술을 아느냐..
알면 개뿔 증명할래?..따위의 질문도 아니었다.
오로지 그리고 오롯이
자신이 소설가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소설이 전시되었으나,
이젠 이십오 미터두께의 시멘트로 봉인된 교보문고를
곡괭이 하나로 둟어 뻥하려는 하산한 소설가의 행동이였고
40페이지중 20페이지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던 곡괭이질에 대한 묘사였다.
삽질의 대명사인 삽과 더불어 양대산맥을 이루려다가 만 곡괭이질의 곡괭이를
그 연장의 선택에서 부터 수반된 인연과
식전 댓바람부터 시작된 노동으로 하얏게 불사르는 저녁까지의 하루
그리고 '이게 도대체 뭔 짓인가?'하며 찾아오는 오밤중의 물음들까지가
기승전결의 기
그리고, 그 중간부분부터 반복되는 노동에 익숙해지며 요령이 생겨서
급기야 곡괭이가 내가 되고, 내가 곡괭이가 되어서리
내가 파고 있는 것이 시멘트인지, 아님 나인지가 헷갈리는 몰아일체감을 느끼는 거까지는
기승전결의 승
거의 다 이루었노라..하고,
고지가 저기일세..하며,
거의 다다렀을 때 느끼는 알지 못할 주저함까지는
기승전결의 전으로
포털로 모은
그 행동과 마음 하나하나가
장인정신처럼 다가오는 그 곡괭이질이
내겐 모두 소설가의 일처럼 느껴지더라
그러다가 생각했다.
소설가가 아니라도..
다들 마음에 곡괭이들 하나씩 품고 살지 않을까..하고.
세상이야..뭐..
원자력발전소 몇개씩 찜쪄 먹는 폭탄이
전후맥락도 없이 왕왕 벌어지는 곳이라.
깊은 산속에서 글을 파다가 홀연히 하산을 하던,
밥 잘먹고 집나와 출근길에서 막닥들이든지,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불심검문처럼
때와 장소와 상황과 처지를 가리지 않고
나는 누구인지..
증명하라면 해야지 어쩔것이냐 말이다.
망명은 소설가임을 증명하고 떠날 프랑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불명확한 것속에서도 계속되던 곡괭이질에 있었고,
남의 곡괭이질에 입바른 소리로 평가질하던 서기의 뒷통수는 갈겨야 제 맛이며,
한번 불 붙은 곡괭이질은 이젠 멈출수가 없으며,
그 굴속을 향하여 무조건 휘두르는 스삐릿으로
기승전결의 결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