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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ㅣ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사실 저는 이 책을 꽤 오래 전에 한 번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황금가지에서 테하누가 막 출간되었을 무렵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서점을 찾았는데, 어스시 시리즈는 못 사고 마침 있던 Gift를 들고와서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나네요. 짧은 영어 실력덕에 한 달을 걸려 읽은 기억이 있어 더 애착을 갖고 있는 이야기가 한글로 나온다는 소식에 무척 들떴던 기억도 납니다.
어스시의 첫 권처럼 이야기는 주인공 오렉의 어린시절에서 시작하여 음침한 시절을 지나, 그가 빛을 되찾기까지의 인생역경을 일러줍니다. 기프트에 나오는 시간,공간등을 포함한 배경은 꽤나 현실과 거리가 멀지만, 의외로 일어나는 사건과,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현실과 무척 가깝습니다. 르귄 여사의 다른 글인 헤인시리즈도 그랬고, 어스시 시리즈도, 그리고 새로 시작한 서부 해안 시리즈에서도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현실감 없는 사건이 펼쳐지지만, 사건을 겪는 사람들의 감정과 시선은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에서 '기프트'는 마법과 같은 특이한 힘을 의미하지만,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해석하여 '소질'이나 '선물'로 해석해도 무관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석함으로써 그레이와 오렉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해결법이 현실과 겹쳐서 훨씬 깊은 의미로 와닿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혹은 살아온 환경 때문에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걷지 못하는 이는 현실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르귄 여사가 오렉과 그라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이 무엇보다 굉장하다고 느꼈습니다. 오렉의 야이가만으로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기프트를 찾는 것만으로 끝날 이야기가, 그라이가 더해지면서 주어진 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좀더 깊게 확장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실린 르귄 아줌마의 인터뷰도 재미있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남미쪽은 정말 환상문학에 강한 것 같네요. 언젠가 유럽, 특히 영국은 (두개가 어찌 다른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섞여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잠시 그쪽이 부러웠습니다. 서부해안 시리즈의 번역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보다 제목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했는데, 역시 '기프트'의 함축적 의미까지 포함한 제목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나봅니다. 다른 누구보다 이수현님이 번역하신 르귄 여사의 글을 무척 좋아하니, 부디 오래 함께해주시길.
+ 그런데 암만 봐도 표지가 ㅠㅠㅠㅠㅠㅠ 어느 분 말씀처럼 르귄 여사 팬은 표지에 신경쓰지 않고 살 테고, 르귄 여사를 모를 사람들은 표지에 혹해서 살테니 어떤 의미론 매우 잘 만든 표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