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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ㅣ 노블우드 클럽 2
사사모토 료헤이 지음, 정은주 옮김 / 로크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아카네자와 케이는 5년 전 형사를 그만두고 배고픈 사립 탐정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으로부터 35년전, 갓난아이일 때 헤어진 아들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동시에 그는 형사시절 은사에게도 의뢰아닌 의뢰를 받는데, 그가 형사생활을 그만둔 계기가 된 뺑소니 사건의 용의자가 다른 사건에 관련되었으니, 용의자의 조사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였다. 조사를 시작한 아카네자와는 (소설에선 당연하고 현실에서는)관련없어 보이던 두 개의 사건에 나타난 작은 접점을 발견하고, 의뢰를 무사히 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 바삐 발품을 팔기 시작한다.
는 내용입니다. 걸쭉한 제목과 표지에 눌려 긴장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현장 묘사보다는 사건을 조사하고 탐문하는 쪽에 글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은 '누가 뭐래도 범인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이다!' 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홈즈나 엘러리 퀸, 포와르, 귀여운 코난이 명쾌하게 증거와 증인을 대며 '범인은 저녀석이야!' 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현실에서도 정말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매번 갖곤 했습니다.
<피보다 진한>의 탐정 아카네자와 케이는 그런 면에서는 충분히 현실에서 가능할 법한 사건 수사를 펼칩니다. 전직 형사이기 때문에 갖는 성격적인 특성이라던가, 35년이라는 오래된 과거의 인물을 추적하기 위해 호적을 조사한다던가, 탐문 수사를 진행하며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 한 느낌을 가져옵니다. 날카로운 직관과 특출난 추리력을 기반으로 한 멋진 탐정은 아니었지만,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중년 아저씨'라는 인물이 현재에 잘 녹아있어 공감하기 쉬웠습니다.
제목에서도 어느정도 눈치 챌 수 있고, 탐정역의 아카네자와 케이의 사고를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깔아놓은 사건의 연결고리와 해답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다보면 사건의 해답을 알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어느새 살갑게 다가온 주연과 조연등의 글 속의 인물이 좀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어떤 의미로건, 글의 끝이 시작만큼이나 좋았어요. 대충 약력을 읽어보니 사사모토 료헤이의 책이 번역되긴 처음이고, 이 책은 꽤나 초기작이라고 하니 좀 더 후기의 글도 번역되길 기대해봅니다. 제목만큼이나 걸쭉하고 음침한 느낌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예상 밖의 면에서 재미있었거든요 :)
+ 원제는 <時の渚> 이고, 피보다 진한은 영어제목 <Thicker than blood>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 날개를 보면 <시간의 기슭>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놓았는데, <시간의 기슭>이라는 제목도 멋지지만 (비록 스포일러가 다분한 제목이라도)내용과 분위기엔 <피보다 진한>쪽이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