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라산의 사자들 1
가이 가브리엘 케이 지음, 이병무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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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가브리엘 케이는 명명의 마법과 나라는 되찾기 위한 투쟁을 그린 역사 판타지인

<티가나>라는 작품으로 만나본 적인 있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빌어 마법 등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판타지적 요소보다 선 굵은 인물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재미있는 역사 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새롭게 출간된 <알 라산의 사자들> 역시 그러하다.

하나의 반도와 그 땅에서 종교적으로 반목하며 살아가는 부족간의 모습은,

마치 실제의 이베리아 반도와 그 곳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전쟁을 그대로 연상시키는데,

마치 실제 역사를 보고서 팩션처럼 써낸 것 처럼 생생하게 일련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가상의 공간과 사건과 인물들을 다룬다는 면에서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그야말로 역사 소설이라 부를 만하다.

 

아샤르 인으로서 마지막 칼리프를 죽인 원죄를 안고 살아가는 영웅 아마르.

그리고 야드 인으로서 국가와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기사들을 이끄는 로드리고.

그 두 남자를 모두 사랑했던 킨다트 인 여의사 예하네.

반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은 이들 셋을 만나게 하고

그리고 삼각 관계의 로맨스는 그 와중에 셋을 휘몰아 간다.

 

각기 선이 굵게 움직이는 이들 등장 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역사는

반도 전체의 운명을 움직이는 격동의 전쟁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주변의 인물들.

알바르 라든가, 벨라즈, 알말릭, 이샥, 디에고와 페르난 등의 관계 속에서

이 인물들은 또한 성장해 나간다.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예하네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랑과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약한 핍박의 부족인 킨다트 족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또 의사라는 특수 직종의 직업을 가진 인물로서,

갖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 나가는 예하네는

결국 역사 속에서 가정으로 돌아가며 굳건히 선다.

참 맘에 들었던 인물이다.

 

많은, 그리고 매우 잔인한 죽음들이 있었다.

그 죽음은 살아 남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또 그 죽음으로써 삶의 역사, 그리고 부족과 국가의 역사의 한 획을 담당한다.

그렇게 움직여 왔던 것이 실제 우리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서 이름없이 나고 사라진 많은 민중들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위정자들과 영웅들만이 역사를 결정하고 움직이려 하였을 때,

조용히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은 어찌 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신의 행복과 삶을 선택하기 위하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선택했던

알바르의 가족의 모습을 에필로그에 담은 저자의 의도는

그러한 이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국가도, 종교도, 모든 사회, 역사적 상황도 아닌

개인의 만족과 행복이 넘치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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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12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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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만나는 작가, 스위스 출신의 플뢰르 이애기의 두 중편을 읽다.

 

이애기는 문체는 단조롭고 날카롭다.

날이 선 문체는 아니지만,

너무도 담담하게 읊조리는 듯한 짧은 문장들은

메말라 있어 마치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맛을 준다.

쉽게 눈이 가되, 쉽게 읽히지는 않는 문장들.

 

이렇게 성마르게 이야기하고 있는 두 소설의 화자는 어린 소녀들이다.

한창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할 나이의 소녀들이 단조롭게 주변을 바라보게 된 것은

아마도 그들이 어느 한 곳에 갇혀서가 아닌가 싶다.

한 소녀는 가족과 떨어진 채, 어려서부터 수도원에서만 생활해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숙 학교 특유의 규율적이고 닫힌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또 한 소녀는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채 그와 떨어져 결국 짧은 2주일 여의 선상 여행을 하고 있는데  

배라는 공간 역시 어디로 갈 수 있는 닫힌 공간이다.

 

억제된 감성과 자라나는 이성을 투영할 곳을 두 소녀는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바로 수도원 기숙 학교의 친구와 아버지.

그들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자라가는 감성과 이성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두 소녀는

그들과의 생활, 교감을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녀적 감수성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자인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나라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환경과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고

그저 독백만이 있는 구성 탓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름답고 절제된 문장으로 두 소녀의 내면을 잔잔하게 드러내는 미니멀리즘 적인 서술이야말로

이 두 편의 중편 소설이 가지는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

다른 모든 것들을 제쳐 놓은 채 가만히 서술되는 글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조용한 가운데 파장이 인다.

힘이 있는 소설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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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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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영화로 접했던 <파리 대왕>을 드디어 만나다.

당시에는 마치 <15소년 표류기>와 같은 소년들의 해양 모험에 뭔가 인간 내면의 폭력성이 드러나 있다,

라는 느낌 정도만 받고 그렇게 큰 임팩트를 받지는 못했었는데

책으로 읽고 보니, 300페이지 남짓의 장편 내내 상징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오히려 본 줄거리에 몰입하여 읽기 어려울 정도이다.

모험 소설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무인도에 조난된 소년들이 점차로 문명과 유리되어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다.

아주 어린 소년부터 청년으로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소년까지의 나이의 아이들이

한 무인도에 조난을 당한 이후의 상황.

조난 초기부터 우왕좌왕하고 그들이 받던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아직 '문명'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시기에 한 아이가 실종된 것부터가

그들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소년들은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애서 그 사실을 외면하며

자신들이 언젠가는 구조받을 수 있으며 다시 문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문명과의 격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돼지(piggy)라 불리며 놀림받는 아이.

천식과 비만, 약시 등으로 신체적으로 약할 수 있는 이 아이는

실제로는 섬 내에서 유일하게 불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인 안경을 가지고 있으며

(불은 문명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놀림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지만

이미 문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이 가운데 '괴물'의 존재로 인하여 소년들 사이에 확산되어 가는 공포는

인류를 항상 비문명적인 상황으로 몰아갔던-즉 전쟁과 같은-원인과 같다.

필연적으로 무리를 이루어 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그 집단의 이익과 결속을 위해 선택했던 것은

수많은 경우에 '공포'였으며 그 원인을 집단 외부에서 찾음으로써 결속을 만들어 내고

그 결속으로 많은 집단 이데올로기를 창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잭과 랠프의 대립은

집단 내에서의 권력 다툼에 다름아니며 각각이 대변하고 있는

이성과 (폭력적, 원초적) 감성의 다툼을 보여준다.

돼지 사냥 과정에서 보여지는 원초적 폭력은 인간이 문명에서 유리되어 있을 때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죽음이 벌어졌다는 것은 작가가 가하는, 인간의 허상적인 문명성에 대한 비판이다.

 

그 밖에도 심약하고 겉돌았던 사이먼이나,

쌍동이 형제, 로저 등의 캐릭터들이 대변하는 각각의 인간성들이

좁고 닫힌 공간인 무인도에서 벌이는 소년들의 비문명적 삶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작가의 의도 아래 치밀하게 계산되어 보여지고 그 모습을 목도하는 독자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비록 전편에 걸쳐서 여성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품성 중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성이 나타나지 않아

반쪽짜리 양상이 되어 버렸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골딩이 보여준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은 어떤 동물이며 난 어떤 동물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부정할 수 없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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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사원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92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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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등으로 잘 알려진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은 어렸을 때 편역본으로 조금 만나봤을 뿐 명성에 비해서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작가였다.

작품이 총 여섯 편 뿐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으니 조금은 창피한 일인데

그래서 가능한 빨리 전작을 읽어볼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초미에 실려 있는 번역자의 해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주인공인 캐서린과 주변 인물들의 대화 또는 행동들이 그 시대의 어떤 점들을 보여주고 있는가는

사실 21세기의 한국 사람으로서는 알기 쉽지 않은 일일진대,

그 점을 먼저 짚어주고 읽는 것도 작품을 보다 쉽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예컨대 작품 속에 계속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들과 문학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제인 오스틴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들이라는 것은

그 소설들이 어떤 소설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현대의 독자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역자의 해설을 통해서 어떤 맥락인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속물적인 중산층들의 삶의 모습과 그 속에서 일면 순수한 사랑 또는 애정을 보여주는 이 책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 내릴 수 있었다.

 

작품 이야기는 이쯤하고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특별히 신경써서 만들어낸 색이라는 예쁜 풀색의 표지와 엄청난 수의 라인업에,

대단한 기획이다.. 싶어 제인 오스틴 읽기의 텍스트로 이 책을 선택했는데..

어라 책을 넘기고 보니 발췌 번역이라는 말이 바로 나온다.

지만지고전선집에 대해서 나온다 말만 들었지 제대로 어떤 기획인지 알지 못했기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보고는 정말 놀라움을 참을 수 없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의 박영률 대표가 내놓고 있는 지만지고전선집은 정리를 해보면

1. 동서양 고전을 약 3천종을 4년 안에 내겠다.

2. 완역보다 약 160페이지 정도의 발췌 번역으로 묶어 내고 일부는 완력으로 다시 내겠다.

정도로 기획을 요약할 수 있는데..

 

우선 발췌번역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직접 완역 원전을 다 읽을 만한 독서력을 가지지 않았을 때에는

많은 고전을 편역으로 접했고,

시간이나 능력이 아직 안되는 사람들에게 발췌본이나마로 쉽게 고전을 접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나는 발췌본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다.

  따라서 이 <노생거 사원>도 다시 완역본으로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다른 큰 문제가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인 한기호 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한 바에 의하면,

지만지의 라인업에는

아직 저작권이 살아 있는 책들도 있다고 한다.

지만지에서 출판권을 구입하여 출간한다면 지만지에서 다시 완역본을 내주지 않는 한

그 책을 완역본으로 접할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또, 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출간된지 얼마 안 된 책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출판권 침해에 해당한다.

기출간한 출판사에서 지만지와 번역자를 동시에 고발해야 한다고 하는데

좁디좁은 나라에서 같이 일했던 번역자와 역시 출판계에서 오래도록 일해왔던 박영률 사장을

고발할 수 있을만한 출판사가 몇이나 될까..

또한 번역자가 기껏 번역해 놓은 텍스트를 놔두고 지만지와 다시 계약했다고 해서

다시 처음부터 번역할 것인가.

십중팔구는 기본 번역한 텍스트 파일에서 발췌만을 하지 않을까...

이것은 시장의 윤리에도 어긋날 수 있다.

쉽게 내기 어려운 고전을 어렵게 기획하여 완역본을 내었는데

그 돈을 받고 일한 번역자가 (얼마인지 몰라도) 다시 돈을 받고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여

같은 텍스트로 줄여서 책을 낸다니..

 

3000권이 넘는 기획 또한 조금 어이가 없다.

일년에 천권씩 내려면 한달에 백권 가까이 책이 나와야 하는데

기획자 몇명이서 그러면 동시에 몇권을 기획해야 하고 몇권을 교정해야 하는가.

제대로 된 기획과 편집이 될지 의심스럽다.

그 엄청난 물량과 기획에 들어갈 돈으로 몇권의 책이라도 제대로 나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꼭 나와야 하지만 아직 우리 나라에 나오지 않았던 중요한 책들도 라인업에 많으니 말이다.

번역도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노생거 사원>을 번역한 이미애 씨도

이번 차분에서 제인 오스틴 텍스트 6권 모두를 한꺼번에 냈다.

여섯 권 모두를 한번에 번역한다..

기획 준비가 언제부터 되었는지 모르지만 약간 그 질을 의심해 볼 수 있을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책을 읽어 놓고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선집이 아닌 완역본 시리즈가 아닌 이상

지만지의 책을 다시 볼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한기호 씨가 지적한 출판 윤리에 관한 문제는

반드시 지만지에서 적절한 해명이나 설명이 있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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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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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도서관에서 사서가 가장 많이 할 말인 '쉿, 조용히' (Quiet, Please!)를 제목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디즈니랜드로 유명한 미국의 중소 도시 애너하임에서 실제로 전문 사서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도서관의 뒷얘기, 사서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유쾌하게 들려 준다.

 

사실, 나는 도서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 가지도 않았는데..

우리 나라의 도서관이란 곳이 대부분 서가보다 열람실 위주로 되어 있고

그 열람실도 책과 자료를 찾아 보는 곳이라기 보다

그저 시험 공부하는 곳처럼 되어 있어서

그 엄숙한 열공의 현장에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한다치면

(예컨대 수험서가 아닌 책을 펴놓고 읽으며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는다거나..)

눈치보이기 일쑤인 그런 분위기를 너무도 싫어하기 때문이고,

레포트를 쓰기 위한 한번 보고 말 자료들이 아니라면

무릇 책은 사서 읽고 소장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는 일도 많지 않은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도서관에 대해 언제나 경외심 같은 것은 가지고 있었는데,

결코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어마어마한 장서로 가득찬 서가들 사이를 지나노라면

오랜 시간 동안 먼지를 빨아들인 책에서만 나는 특유의 책 냄새 속에서

왠지 읽지 않아도 그 책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며 나에게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고

그 느낌에 행복하면서도 경건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책을 찾자면 열람 카드를 잘 뒤져야 하고,

익숙치 않은 사람은 잘 찾지 못하여 꼭 사서의 도움을 받기 마련이었지만

어느샌가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검색을 통하여 책을 찾게 되자

사서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주로 보조 사서들이 책수레에 책을 싣고 다니며

서가에 책을 꽂는 모습만 보이게 되었는데..

 

그들을 보면서 이러한 공간에서 일하는 기분은 어떠한 기분이며

어떤 일을 할까.. 좋을까.. 나쁠까.. 재미있을까.. 등등의 질문은 항상 맴돌았었다.

나중에 도서관학을 전공하여 사서를 지망하는 동생을 알게 되면서

그런 질문들은 조금씩 답을 알게 되었지만서도

자세한 것은 어느새 질문조차 사라져 갔고

나 역시 사서의 세계에 대해서는 막연한 환상, 혹은 편견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앞서 쓰기도 했지만 공공 도서관 문화가 거의 없는 우리 나라에는 조금 낯선 풍경이 될

미국의 조그마한 도서관에..

문학 전공자로서 조금은 호기심에 사무 보조로 시작하여

전문 과정 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서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저자가 들려주는 도서관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미국 문화에 비교적 익숙한 나로서 상상이 되지만

미국의 공공 장소라는 곳에는 별의별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이 책에서 종종 언급하듯이 미친 사람이나 어찌할 수 없는 10대들.. 변태, 마약쟁이까지 드나들고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들 마저도 희안한 사람이 많은데..

다소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진솔하다.

그 자신의 장단점까지 시원하게 털어놓다 못해 나중에는 신상 명세까지 줄줄 늘어놓을 정도로

자신을 오픈한 상태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저자의 모습이 밉지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도서관이든 어디든 간에

사람들이 모여 살거나 무슨 일을 하는 곳은

어디나 인생의 축소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싫은 사람이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농땡이도 있고..

사랑이 있으면 미움과 질투도 있는 법.

 

저자가 보여주는 도서관의 모습도 그러한 인생의 축소판을 보여주기에

이 책의 많은 에피소드들이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임에도 낯설지 않고 진실하게 느껴진다.

 

왠지 도서관에 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면 사서가 어디있는지 꼭 한번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일반적인 이미지처럼 약간은 신경질적인 모습의 안경낀 중년 아주머니가 있는지도

한번 꼭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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