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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일단 처음 느낌은 2000년대판 <상실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성장소설이라는 점과 당대의 감수성보다 세련되었다는 점, 그리고 에로스가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등등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주인공들의 가치관은 시대가 변한만큼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인다.
주인공 히데미는 고등학생이다. 연상의 술집 여종원과 사귀고 학교에서는 반항아지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남들이 볼 때는 문제가 많은 엄마와 할아버지와 살고 있으며, 담임선생님과 술을 먹고,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는 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캐릭터다.
어머니 진코 역시 특이한 캐릭터이다. 아들 히데미가 공부를 못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진코는 공부를 못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키우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좋은 엄마라고 딱 말할 수도 없다. 돈도 없는 주제에 명품을 사고, 유부남을 만나기도 한다. 자신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캐릭터다.
장편 소설이지만 각 챕터 사이에는 연속성이 없다. 한 단위마다 히데미는 고민을 하고 성장을 한다. 그의 성장에 발을 맞추며 읽다보니 어느새 소설이 끝나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했던 고민들과는 전혀 다르지만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고 문체가 좋아 읽는 재미는 있는 소설이다.
어른인 내가 왜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공부를 못해도 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부 대신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주인공을 속으로 응원하면서 읽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충격을 받은 것은 이 책이 일본에서 1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 읽어도 감각적이라고 생각되는데 무려 10년 전 소설이라니.... 일본 소설에 대체로 가볍지만 일본 소설의 감수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