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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
함민복 지음 / 풀그림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들의 산문과 소설가의 산문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물론 거칠게 일반화시켜 말하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문은 짧은 글에서도 구조가 있다. 기승전결. 뭐 이럭 식으로.. 짜임이 단단하다. 그러나 시인들의 산문은 이 이야기 중간에 다른 이야기도 나오고, 구조가 듬성듬성하다. 그대신 훨씬 서정적이다. 특히 함민복의 산문은 매우 서정적이다. 세태를 비판하는 글도 있지만 그것 역시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감상성이 더욱 강하다.
소설가 박민규는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근사한 일이 몇 가지가 있는데 자신은 주저하지 않고 ‘함민복을 읽는 것’을 택할 것이라고 추천의 글을 썼다. 이에 꼭 수긍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서정적인 분위기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는 함민복의 수필집을 읽으라고 말해줄 수 있다.
이번 산문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시상을 떠오르는 계기들과 그래서 탄생된 시들이 나오는 글이 많았던 것이다. 시를 습작하는 입장인지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예를들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함민복 시인은 뱀을 무서워한다. 어느날 화장실에 가는 밭둑길에서 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나무 막대기로 뱀을 눌러 죽인다. 그리고는 이내 아무 잘못도 없는 뱀을 죽인 것을 후회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쓴다.
소스라치다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바위,나무,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책장을 덮고나니 시인이 세상에서 느낀 미안한 마음들이 언젠가 강화도에서 본 석양처럼 가슴에 물드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