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어둠 - 우울증에 대한 회고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임옥희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9월
품절


로맹 가리는 카뮈가 깊은 절망 상태에서 종종 자살을 언급하곤 했다고 귀띔해주었다. 때로는 농담조로 말했지만 로맹 가리를 상심하게 할 만큼 그 농담 속에 뼈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자살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저변에 깔려 있는 멜랑꼴리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시지프의 신화』에 죽음을 지배하는 생의 승리라는 엄숙한 메시지(희망이 부재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 가까스로)가 담겨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29-30쪽

중증의 우울증 상태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제2의 자아가 따라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제2의 자아는 일종의 유령 같은 관찰자로서, 본래 자아가 경험하는 치매 상태가 전혀 없는 냉정한 호기심을 갖고, 그가 다가오는 재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혹은 어떻게 무너지고 마는지 관찰한다.
이 모든 행위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있다.
그후 며칠 동안 나는 멍한 상태로 소멸을 준비해나갔다. 그런 상황이 멜로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는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 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이었다. 나는 아직 어떤 방법으로 세상과 이별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단계가 다가오리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조만간, 마치 다가오는 저녁을 피할 수 없듯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리라는 것을.-78쪽

병원은 갑작스런 안정감이라는 기이하고 만족스런 충격을 주었다. 가정이라는 너무도 익숙한,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무질서한 환경으로부터 이송되어 질서정연하고 양호한 연금 상태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진짜 치료사는 격리와 시간이었다.-84쪽

우울증의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자살이야말로 사실상 유일한 치료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영혼의 절멸은 아니라고 강조하거나 아니면 고무적인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이 병에서 회복되었던 사람들이야말로 -무수히 많을 터인데- 은총을 입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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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캐슬 대교북스캔 클래식 7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오현수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 두번째 PS에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미리니름이 있습니다. *


난 달짝지근한 연애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삶의 9할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로맨스소설은 잡식성인 내가 즐기지 않는 얼마 안 되는 장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발현.
'연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소설이라 해도
누군가를 향한 강한 애정 혹은 사랑은 주요한 화두가 되기 마련이다.

아, 그렇군.
난 사랑이야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삶의 9할은 '연애'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소설이 싫은...건가?


각설하고!
그런 내가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더구나 블루캐슬이라는 심히 의심스런-민망스런- 제목을 뒤로하고)
온전히 '루시 모드 몽고메리'라는 작가 때문이다.
사랑스런 앤과 에밀리의 창조자이자,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그린게이블즈를 꿈꾸게 한 작가가 아닌가.
그런 작가가 쓴 얼마 안 되는 연애소설이라는데 궁금할 수밖에! (탕! 탕!)
(솔직히 앤과 길버트의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며 기대가 증폭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책. 단지 연애뿐인 것만은 아니었다.
잘난 것 없고 오로지 순종하며 살아온 - 열등감을 갖는 - 노처녀 밸런시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비록 그 최종 목적지가 결혼을 향하고 있긴 하지만
시대상을 염두에 두면 이는 (작가와 내가)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열등감을 스스로 떨쳐내며 삶의 즐거움을 찾는 주인공은 더없이 사랑스럽고
이야기는 내내 밝고 유쾌하고 통통 튄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스토리에 거부감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자연과 사계四季에 대한 생생하고 싱그러운 묘사는
'과연 몽고메리!'하는 기분이 절로 들게 한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분위기를 가득 품은 연애소설이었다.
결국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베텔스만에서 나온 다른 몽고메리의 책의 주문을 결심할 만큼.

에? 잠깐?!
...사실 난 연애 소설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

PS.
이 책을 읽고 달달한 느낌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에 '사서함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있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있지만
'사서함110호~'를 읽고 있는 난..........확신한다.
사실 난 연애 소설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PS. 미리니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 내내 만족하며 읽었던 나는 결말에 다소 유감을 표한다.

바니에 대한 예상은 충분히 했었지만...
역시 신데렐라 환상은 전역사+세계를 아우르는 꿈이란 말인가..?!
아무리 작정하고 '연애소설'을 썼다지만
밸런시가 앞으로 여행하는 나라마다
그녀의 블루캐슬을 발견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쓴웃음이 나온단 말이다...!!

5%의 씁쓸함.
이 책은 연애소설이었다. 적당히 여자의 환상을 충족시켜줄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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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과 양키 -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지음, 조애리 옮김 / 미래사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에, 마크 트웨인과 '아더왕'이라니...
왠지 모를 이 불안한 조합..!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 너무 갈구신다!!

19 세기의 기술자, 행크 모르간은 우연히 아더왕이 살던 6세기에 떨어지고 만다.
행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와 현대기술로 그 시대의 아더왕과 기사들을 비롯,
사람들을 현혹하여 높은 지위를 갖게되고, 열등한 중세를 하나씩 바꾸어간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풍자한 소설이다.
그야말로, 풍자와 독설의 향연이다.

작정이라도 한듯 '나(행크)'의 눈으로 6세기 중세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모조리 비꼬기 시작한다.
과거 이 시기의 제도에 옳은 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풍자는 사실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다.
언제나 그렇듯 지나쳐 온 과거에 대해서 우리가 내놓는 옳고 그름의 잣대는 현재의 기준이다.
과거를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통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살던 행크의 눈에 중세의 모습이 어처구니없이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현재를 바탕으로 과거를 모조리 꼬집는 모습은.. 뭐랄까.. 비겁해보인달까.

행크는 수석 기술자였던 만큼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중세를 조금씩 바꾸어간다. 몇 년에 걸쳐 하나씩 하나씩..
믿을만한 사람을 모으고, 학교를 만들고,
신문을 발행하고, 전신주를 놓아 전화를 연결한다.
몇 십년을 걸쳐 영국을 놀라울 정도로 계몽하면서 모험을 감행한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작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세만을 꼬집는 듯 하던 소설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칼날을
현대를 대표하는 행크와 과학기술에 들이댄다.

행크의 독단에 가까운 문명으로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작가는 일방적으로 유입되는 문명이 사회를 파괴하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면서
과학 진보의 위험을 시니컬하게 바라본다.
중세를 풍자하는 듯 했던 작가는 행크도 비슷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인칭 작가 시점으로 주인공을 비판하는 작가라니..!)


재미있는 소재와 유쾌한 말솜씨로, 진지한 사고를 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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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위의 세 남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개는 말할 것도 없고』 - 코니 윌리스에게 감사를 바쳐야하나 - 여행기 맞아?
 - 고도의 위장술 - 무엇보다 유머! 그 능청스러움에 대해 - 역시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보트 위의 세 남자, 개는 말할 것도 없고!
THREE MEN IN A BOAT, to say nothing of the Dog!

이 책의 원제목은 이렇다.
많이 익숙한 제목이다.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코니 윌리스가 그렇게 좋아한다던 책이 아니던가.
이 책을 보는 순간, 코니 윌리스의 작품 『개는 말할 것도 없고』가 연상되는 건
나에게 당연한 흐름이었다.
한국에 출판된 책의 제목은 『보트 위의 세 남자』지만,
보는 순간 '어머!'하는 탄성과 함께 책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자, 책을 다 읽은 소감부터 말하자면
코니 윌리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해준 '로버트 A.하인리히'에게 감사를 바쳤듯이
나 역시 코니 윌리스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바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책은 세 친구와 한 마리의 개의 템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여행한 일들을 적은 여행기이다.
단지 이 세 친구가 매우 게으르고 이기적인 성격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과,
그들의 습성을 꼭 빼닮아 동행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개가 함께 한다는 점과,
그래서 결국 여행하는 행보보다 이들의 어깨다툼 혹은 수다가 매우 돋보인다는 점이
기타 여행기와 다른 점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 여행 과정도, 스토리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제롬도, 하물며 독자도)

원래 여행이란 게 명소를 찾아가며 구경하는 재미보다도,
그 와중에 일어나는 헤프닝이 더 재미있고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제롬의 이야기는 딱 그거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놀라운 위장술을 겸비한 주인공 J를 보자니,
(이니셜에서 볼 수 있듯, 주인공 J는 작가인 제롬이다.)
제롬이란 인물이 얼마나 유쾌한 인물인지 상상이 간다.
아니, 사실 그의 친구 해리스가 최강이다.
(해리스는 다른 친구 조지와는 다르게 본명을 그대로 쓰지 않았다.
과연.. 책 속에서의 까칠함은 진짜였나 보다!)

아아- 영국식 유머란 게 이런 거구나.
제롬의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수다는 마치 함께 여행하며 듣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런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라니- 보는 내내 킥킥거리며 읽었다.


하지만 역시 제목에 주인공 한 마리를 생략한 건, 조금 아쉽다.
고양이에 대한 의견차이로 제롬과 얼굴을 붉히고, 찻주전자와 용감한 결전을 벌이는
몽모렌시 역시 매우 훌륭한 일행인 것을!
(만약 몽모렌시가 도베르만이나 진도개였다면
제롬은 결코 여행에 동행시키지 않았겠지. 아니 키우지도 않았겠지....
 ..잠깐! 몽모렌시는 가상의 캐릭터였잖아! 폭스테리어일 수밖에 없었군)

어쨌든 이 책에서 개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게으름'을 논하는 제롬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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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을 감으면 자꾸 더럽고 시끄러운 런던 뒷골목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허름한 문에서 수가 튀어나오고, 저쪽 골목에서 젠틀먼이 모자를 털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한 편에선 고풍스럽지만 조금은 낡은 시골의 외딴 저택이 그려진다.
발소리마저 삼켜버린 듯, 정적에 압사당한듯한 음침한 그 저택이..

19세기 말의 런던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표현한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덕분이다.

책을 덮고도 난 한참을 초조하게 내 머릿속 어딘가를 서성거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도 싶었고,
한편으론 이런 느낌을 더 오래 지속시키고 싶어 어울릴만한 음악CD를 뒤졌다.
수와 모드, 젠틀먼, 석스비부인, 릴리씨.. 모두 살아있었다. 생생하게..

도둑질을 하며 살아가는 수전에게는, 사실 교수형 당한 어머니가 자랑거리이고,
다른 이들에겐 수전노여도 자신에게만은 따스한 석스비부인이 있다.
나름대로 사이좋은 친구도 있고, 부랑자들이 널려있는 런던 뒷골목에서도 자신에겐 집이 있다.
딱히 불만도 없다.
집이 있고, 하루하루 생활할 돈이 있고, 가족이라 불릴만한 존재가 있으니까.

어느날 젠틀먼이 찾아온다.
외롭고 돈 많은 공주님을 도와달라고-
자신은 사랑으로 그 재산을 가질테니,
수는 자신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그 댓가를 가지라고..
큰 돈, 위험하지만 흥미로운 음모, 가족들의 독촉에 수는 젠틀먼을 돕기로 한다.
그리고 너무도 여리고 수줍은 공주님, 모드를 만난다.


에.. 이 책의 장르는 '빅토리안 레즈비언 스릴러'란다.
.........!!!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빅토리안) 이미 나온 젠틀먼의 음모!(스릴러)
남은건, 레즈비언..?
자, 여기서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아뿔싸! 수와 모드가 사랑에 빠지겠구나...!! 라고.

(딴소리지만) 책을 보며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아아~~ 젠틀먼!! 젠틀먼!!!!!!'
모드와 수의 섬세한 감정선에도,
정교한 플롯에 따라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질 때도 숨죽이며 읽었던 난,
젠틀먼이 비웃을 때마다 혹은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솔직한 감탄사를 연발했다.
작가가 말했던대로 정말 지독한 악당 아닌가.
다른 인물들이 보여주었던 일말의 죄책감, 또는 인간적인 모습은
진작에 국에 말아먹은듯한 그 사악한 모습이라니!!
자신이 원하는 단하나, 그것 이외의 것들은 가볍게 웃으면서 넘기고(아아,이 큰 배포),
어느 순간에도 언제나 매너를 잃지 않는 악당(아아, 이름대로 젠틀먼).
하긴 젠틀먼은 사건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이야기 내내 그 누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는 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할테지만.


이 소설의 반전은 이야기의 1/3시점에서 일어나지만,
이 소설은 반전만을 위한 책이 아닌 탓에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오히려 반전에 대한 탄력으로 나머지 2/3의 내용에 정신없이 몰입하게 되버린다.

섬세한 인물간의 감정 표현과 함께
배경과 상황에 대한 밀도있는 묘사는 소설의 흡입력을 더욱 높인다.

과연 작가가 빅토리아 시대의 레즈비언 역사소설을 전공했다더니..
레즈비언 스릴러라...
내가 갖고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음울함과 흥미를 더욱 배가시켜줄 요소를 하나 더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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