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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황야를 향해 달린다 1
요시노 사쿠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주인공 소녀 미야코를 둘러싼 남자들은 지덕체의 양상을 고루 갖추고 있다. 괴팍한 성격조차 나름의 논리(궤변)로 포장할 수 있을만큼 지적인 평론가 히나츠,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모범소년(이름 기억안나서 미안-_-),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감성적 바람둥이인 육상선수 리쿠. (세 남자 모두 미남이라는 우연은 순정만화라는 배경의 특이함으로 눈감아줍시다-ㅁ-) 게다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내가 좋아하는 사람/그냥 남자친구 구도와 미소년/미중년 구도까지 고루 등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녀의 로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
요새 순정만화에선 찾기 힘들어진 미형 인물들, 때로는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소녀적이고 낭만적인 대사들이 가히 80년대 시리어스 순정만화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러한 감상성이 오히려 사춘기의 모습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최근 넘쳐나는 쿨한, 혹은 폭주하는 정서의 학원물들보단 말이다. (하긴 나도 이제 요새 십대들에게는 이질감을 느낄 나이로군!)
개인적으로, 남성/여성의 미분화기에 있는 소녀(프로이드가 그랬던가. 소녀와 여성보다는 소년과 소녀가 훨씬 서로 유사하다고.)의 내면을 이만큼 잘 그려낸 만화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나올 것 같지 않다. 요새 순정만화의 소녀들은 말 그대로 작기만 했지 이미 여자티를 내고 또 여자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작은 아씨들', 아니면 여자로서의 자신에 의식적으로 반항하는 '왈패'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이들의 성 인식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도 사실이고, 사회가 성적 분화를 점점 빨리 강요하는 것도 사실이다(어차피 어른들도 키덜트로서 살아가는 요즘에는, 아이들도 어른으로서의 정체성을 수립하지 않아도 남성/여성 역할에 맞는 소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성 역할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역할놀이가 또 어디 있는가.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을 그리워한다면 제1의 이유는 그 미분화성일 것이다. (물론 정말로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시점에서 그러하다면 퇴행밖에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작금의 소녀들에게는 성의 구획된 울타리를 벗어날 여지가 없다(언론매체에서 소녀들의 이러한 상황을 자유 내지 방종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차다. 그녀들이 잃고 있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순결같은 외적/상품적 가치가 아니라, 성적 카테고리와 상관없는 어떤 인식의 자유이다). 그러니 순정만화의 소녀들에서도 순종 아니면 반항의 양상밖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어쨌든, 얽매여 있는 것.
여담 1 미야코가 곱슬머리가 아니라 생머리였다면 이 만화에 대한 내 선호도는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여담 2 이 만화를 소녀의 판타지로 만드는 결정적 요인. - 세상에 리쿠 같은 외모와 감성을 지닌 운동선수 소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물론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이겠냐만은.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