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식 - 세계여성단편소설선
도리스 레싱 외 지음, 이소영 엮음 / 한국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닐스의 이상한 여행'의 작가 셀마 라거로프의 단편은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 역시 겨울이면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여름을 괜히 좋아하는 태양숭배자의 하나여서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남성인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여러 여성인물들은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여튼) 자유롭고 또한 고독하게, 하지만 외롭지는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비정기적인 회합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은, 한 여인이 회합의 이유로 그녀가 너무도 사랑하는 태양의 죽음과 부활, 즉 일식을 들고 나오면서부터이다. 다른 여인들은 처음에는 얼떨떨해하지만, 곧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그녀의 삶에는 평범한 여성들이 얽매여 살기 마련인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보다, (그토록 감각적이면서도 그토록 초지상적인 )태양이라는 존재가 더 소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떳떳하게 드러낼 정도의 자유조차 상당수의 여성들은 억누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밖에 다른 작품들도 여성으로서의 의식과 작가로서의 개성을 동시에 잘 드러내는 좋은 선택들이다. 그녀 자신의 말대로 '만년 꿈에 젖은 처녀아이'같았던 꼴레뜨의 짧고 매혹적인 작품, 장편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뒤지지 않는 강렬함을 느끼게 하는 리스의 작품, 객관적이고 차근차근한 문체로도 언제나 분노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데 실패하지 않는 고디머의 작품. 그밖에 전에는 읽어본 적 없는 작가인 프리차드, 오지크, 웰든 등의 작품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는 수작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앤 타일러와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작품이 다소 약한 느낌이라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