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전사 비룡소 걸작선 28
로즈마리 셧클리프 지음, 찰스 키핑 그림, 이지연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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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트클리프는 어린 시절의 사고로 거동이 불편했다고 한다. 그녀가 유독 역동적인 남성들과 영웅들의 세계를 많이 다룬 것은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동경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역시 어린 시절 사고로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며 근친상간 로맨스 작품들을 줄기차게 써낸 VC 앤드류즈와 비교해 볼 수도?)그러나 남성 작가들의 영웅담과는 달리, 그녀의 작품에는 영웅적 업적을 성취하기까지의 섬세한 갈등과 감정의 결이 잘 살아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훌륭한 작가이다.
이 작품말고, 역시 영국의 고대사를 다룬 <횃불을 들고>도 빨리 새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후자는 소년소설로 보기엔 좀 수준이 있지만 그만큼 깊이가 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 작가가 훌륭하게 고대를 재현해낸 소설, 재외 교포 작가가 훌륭하게 우리의 중세를 재현해낸 소설(<사금파리 한 조각>), 최근에 나온 두 작품이 이중으로 국내 역사 소년 소설의 빈곤함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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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와 산고양이 - 일본근대동화선집 1 창비아동문고 194
토리고에 신 엮음, 서은혜 옮김, 이선주 그림 / 창비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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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의 매력은 상상력이 '상상력'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너무 자연스러워 산들바람과 같이 피부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꿈을 꾸면서 '야 참 그럴 듯한 얘기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느낄 뿐인 것처럼. <바람의 마타사부로>도 그렇게 시 같고, 꿈 같고, 봄바람에 아련히 실려왔다가 금세 날아가 버리는 노래 한 구절 같다.
이선주씨의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미야자와 겐지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뚜렷이 살아나서, 처음엔 일본 원판의 그림을 그대로 쓴 건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표지에 쓰인 <도토리와 산고양이>의 그림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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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키타 구구 3
토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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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대안적 가족상이 나오는 만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치키타 구구를 좋아하는 것은 팜 시리즈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로 전혀 모르던, 혹은 아웅다웅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던 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게 되는 과정은 어떤 연애보다 포근하고 사랑스럽다. 이 역시 극도로 개인화되고 이기적인 현대 사회에 있어선 하나의 판타지인지도 모르지만...그래도 황당한 선남선녀의 연애물보다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지 않을까.외모로만 보면 판타지의 전형적 요정이나 정령들처럼 귀여운 캐릭터들이 근친상간이나 식인, 심지어 자기를 잘 키워 먹겠다는 얘기를 미소지으며 듣고 있는 등 무시무시한 언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언밸런스함도 맘에 든다. 또 한가지, 작가가 그림을 못 그리네 성의 없이 그리네 하고 말이 많지만, 애증이 교차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들을 이렇게 단순한 선으로 잘 그려내는 작가도 거의 없다. 3권에서 니켈의 표정만 쭉 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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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21
신 타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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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에 팬클럽까지 생기고, 일본 작가 홈페이지에 한국에서 영어로 보낸 편지들이 죽 올라와 있으며, 뉴질랜드까지 가서 작가를 만나고 온 팬도 있는 만화...이렇게 현상적으로 쓰긴 쉽다. 그러나 '어째서?'라고 묻는다면 말문이 턱 막혀 버린다. 최근의 만화는 극도로 장르화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스포츠만화를 비롯하여 요리만화, 바둑만화, 법률만화, 등 일본의 여러 전문 만화들이 그 필두에 섰고 이제는 국내에서도 그런 규정 아래 만들어진 작품들이 속속 나오는 듯하다. 꼭 전문 만화가 아니더라도, 소위 '순정만화'도 학원물, 판타지, 역사물, 등등으로 나뉘어지고 또 그런 전제 아래서 요새 순정만화잡지에선 학원물이 아니면 못 살아남는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보면 일본인들의 마니아적 성향을 사회에서 모난 돌이 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내적으로, 즉 사적인 취미라는 우물 속으로만 깊게 파고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 만화의 전문화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팜 시리즈는 일본 만화의 비주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옴니버스 형식의 특징을 십분 활용하여 액션, 학원물, 홈드라마, 오컬트를 넘나든다. 그러나 이런 어지러운 전개가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가가 어릴 때부터 구상해왔다는 캐릭터들, 또한 그들이 맞물려 이루는 구조의 탄탄함 때문이리라. 캐릭터들이 다들 어찌나 매력적인지, 이 만화를 보았다는 사람끼리 우연히 만나면 가장 먼저 벌이는 입씨름이 누가 제일 멋지느니 아니 누가 최고라느니 하는 것이다--;;이 만화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분은 국내 팬페이지로 찾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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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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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화를 일단 빌려보고, 다시 보고 싶어지면 서점에 가서 산다. 하지만 서점까지 갔다가 다시 한번 훑어보고 '그때 내가 뭐에 씌웠었나 보다...'하며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사 놓고 몇 번 보다가 '이젠 별로 재미없네' 하면서 구석에 처박아 두기도 한다. (주로 십대 때 산 만화책들이 이런 경우인데, 그때는 그림 예쁜 거 사는 게 남는 거라고 생각하여 카오리 유키나 쿠수모토 마키의 작품들을 주로 모았다.)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는 산지 꽤 되었지만,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 드문 만화 중 하나다. 볼 때마다 새로운 요소가 발견되고, 만화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녹화해둔 드라마 테잎을 틀어 보는 것 같다. 이차원보다는 삼차원 영상의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컷마다 느껴지는 작가의 세심한 구도잡기(이 작품과 그 외 여러 작품에서 사진과 영화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볼 때 작가는 그쪽에 취미를 가진 듯하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남자주인공 우오즈미는 언뜻 보기에 별 볼일 없는 백수같지만 사실 착하고 자신에게 솔직해서, 여자가 꼬이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여자가 보기에는, 친구이건 뭐건 곁에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남자애랄까. 쾌활하고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오래 전 첫사랑의 죽음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는 약한 구석을 지닌 시나코, 다혈질이고 감정적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솔직하고 담백할 수 있는 하루 같은 여자 캐릭터들도 정말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다. 연애물 만화로선 최고 수작에 속하지 않나 생각한다. 취향이 극과 극으로 갈라질 만화라서, 맞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궁금한 점. 글 위에 쓴 제목이 이 만화의 영어제목인데,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비틀즈의 노래를 뜻하는 건지.? 끝날 때쯤엔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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