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 보았던 책을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그것은 실망일수도 있고 기쁨일수도 있다. 그러나 4년만에 읽는 <어둠의 왼손>에서는 딱히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왜일까. 르귄의 세계가 사람들의 말대로 '사고 실험'의 산물, 그 자체로 너무나 완벽하고 완료된 세계이기 때문일까.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르귄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지만, 그만큼 닫혀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 경험은 그 완벽한 세계에 뭔가를 더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둠의 왼손>이 <빼앗긴 자들>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빼앗긴 자들>의 세계는 독자를 압도하고 전율시키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인물들은 그 설정과 사건들 속에서만 살고 그 밖에서는 생명을 갖지 못한다. 에스트라벤은 '불완전 연소'된 인물이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무언가를 더 갖고 있을 것 같은...그의 연인이자 형이었던 아렉에 대해 독자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은 게센의 창조 신화를 빌려 은유적으로 모호하게 말해질 뿐이다. 뭔가 애매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에스트라벤의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완결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겐리 아이의 시각과 에스트라벤의 시각, 그리고 감정의 변화하는 색조가 교차하는 시점을 통해 미묘하게 다가오고, 이것은 <빼앗긴 자들>의 전지적 시점에 비해 작가의 '사고 실험'이라는 느낌을 상당히 줄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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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길벗어린이 문학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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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리와 임금님>이란 제목으로 읽었던 책이 새로 나와서 기쁘다. 한번 절판되고 잊혀지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었기 때문에. 그때도 <보리와 임금님>은 표제작으로는 좀 약하지 않나 했는데, <작은 책방>이 원제라는 걸 알고 나니 딱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 담긴 얘기 하나하나는 웬만한 동화책 한권의 무게를 지니니까. <일곱 번째 공주>나 <어린 재봉사>같은 페미니즘적인 동화들을 읽고 자란 아이들은,사회에서 여자아이에게 강요하는 공주 신드롬을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이 동화 속의 공주들은 남자 작가에 의해 씌어진 것임을 기억하자)따위를 읽고 자란 아이들보다 훨씬 쉽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1950년대에 나온 작품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동화들은 가히 혁명적인 내용이다. (물론 1차 여성운동은 이미 1910-20년대에 있었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내용이었지 문화적인 쪽에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하물며 '시시한' 동화의 경우에야...) 신비적인 <손풍금>이나 위트가 넘치는 <금붕어> 등의 소품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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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최고 동화는 내 친구 10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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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토끼의 눈>이나 <나 이제 외톨이와 작별할지도 몰라요>그리고 조금 떨어지는 편이지만 <바다의 노래>까지 몇 권의 책을 죽 읽었다.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아이들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들이다. 국내 동화들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를 다룰 때 아무리 선생님이 아이들과 재미있게 잘 놀아 주더라도 결국은 뭔가를 가르치기 위한 놀이가 되곤 한다. 좀처럼 계몽적인 냄새를 벗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선악이 별 의미가 없다. 재미있으면 선이고 재미없으면 악이다. 현재 아이들을 겨냥한 대중문화의 대부분은 이 법칙을 상업적으로 악이용하고 있다. 생각있다는 어른들이 아무리 외쳐 보았자 뭐하나. 애들은 재미없어서 듣지를 않는데. 무려 몇십 년 전의 작가인 하이타니 겐지로에게서 단단히 배워야 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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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일기 2 - 고학년을 위한 생각도서관 13
수 타운센드 지음, 이경숙 옮김, 최수연 그림 / 김영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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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이드리언 몰 주위의 사람들은 당시 영국의 문화 코드를 모조리 모아놓은 것 같이 보인다. 펑크족에 게이인 나이절, 전형적인 무뚝뚝한 노동계급이며 집에선 돈벌어오는 기계 취급이나 당하는 아버지, 가능한 직업이라곤 타자수 정도인 염색한 빨간 머리의 어머니, 보험회사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뺀질이 루카스, 진보적 인텔리 부모님과 조랑말을 가진 귀족(적어도 공립 학교선 그렇겠지) 판도라 등등.

작가는 에이드리언의 일인칭 서술을 통해 사춘기 소년의 자의식은 물론 노동계급 청소년의 사고를 능청스러울 정도로 솜씨있게 드러내고 있다. 에이드리언은 노동계급의 비참한 생활(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고, 뭔가 다른 아이가 되어 노동계급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런 노동계급 청년들은 대체로 축구선수가 되거나 락 밴드를 만들거나 펑크족이 되지만, 에이드리언은 시인이 되기를 꿈꾼다(그는 아마도 그리 뛰어난 운동신경도, 음악적 소질도, 후까시도 없는 모양이다^^;) 그가 또다른 삐딱이 나이절과 가까워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대처 정부의 억압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반감을 토로하며 막연히 사회주의를 동경한다. 그러나 왕가의 결혼식에 넋이 나가서 눈물을 흘리는 반동적인 모습도 보인다. (영국인들의 그 유명한 냉소도 왕가 앞에선 헛기침을 하며 조용해지는가?) 부모님들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정치에 대해 말은 많지만

그래서 내겐 작가가 에이드리언에게 자신을 대입했다기 보다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고 느껴진다. 에이드리언은 주위 사람들을 풍자하고 비판하지만, 그 역시 작가에게 풍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식 유머의 한계. 작가는 애매한 낙관주의로 작품을 맺을 뿐, 13세 소년이 할 수 있는 이상의 현실인식과 사회비판은 전해주지 못한다. 인종차별에 있어서도, 싱 가족 등은 끝까지 타자이며 흥미로움 혹은 비꼼의 대상일 뿐이다. 앤드류 코완의 <돼지> 같은 작품과 비교해보면 이는 더욱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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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호의 모험 1 동화는 내 친구 31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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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The Minnow Leads to Treasure라고 알고 있는데...피라미호라고 하니까 너무 작고 보잘것없는 느낌이 들어서...어쨌든, 이야기 자체는 보물찾기 이야기 중에서도 아주 수작이다. 보물은 꼭 카리브해의 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뒷마당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데이비드가 찾아내려는 것은 엄청난 금은보화가 아니라 조상이 남긴 보석 몇 가지, 그저 아담이 계속 코들링 저택에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돈이다. 이 소년들은 그토록 험난한 모험을 하고서도 결국 실패하고, 아담이 데이비드와 코들링 저택을 떠나기 직전에야 보물은 어이없는 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러고 나니 그 모든 고생은 여름 한철의 흥미진진한 추억거리로 남을 뿐. 고모님이 빚은 향기좋은 꽃술과 함께. 모든 보물찾기에서는 '보물'보다 '찾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파랑새>와 비슷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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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2016-01-1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리파 피어스의 <피라미호의 모험 1>과 <피라미호의 모험 2>를 합본하여 <세이 강에서 보낸 여름>제목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