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기 2 - 고학년을 위한 생각도서관 13
수 타운센드 지음, 이경숙 옮김, 최수연 그림 / 김영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에이드리언 몰 주위의 사람들은 당시 영국의 문화 코드를 모조리 모아놓은 것 같이 보인다. 펑크족에 게이인 나이절, 전형적인 무뚝뚝한 노동계급이며 집에선 돈벌어오는 기계 취급이나 당하는 아버지, 가능한 직업이라곤 타자수 정도인 염색한 빨간 머리의 어머니, 보험회사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뺀질이 루카스, 진보적 인텔리 부모님과 조랑말을 가진 귀족(적어도 공립 학교선 그렇겠지) 판도라 등등.

작가는 에이드리언의 일인칭 서술을 통해 사춘기 소년의 자의식은 물론 노동계급 청소년의 사고를 능청스러울 정도로 솜씨있게 드러내고 있다. 에이드리언은 노동계급의 비참한 생활(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고, 뭔가 다른 아이가 되어 노동계급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런 노동계급 청년들은 대체로 축구선수가 되거나 락 밴드를 만들거나 펑크족이 되지만, 에이드리언은 시인이 되기를 꿈꾼다(그는 아마도 그리 뛰어난 운동신경도, 음악적 소질도, 후까시도 없는 모양이다^^;) 그가 또다른 삐딱이 나이절과 가까워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대처 정부의 억압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반감을 토로하며 막연히 사회주의를 동경한다. 그러나 왕가의 결혼식에 넋이 나가서 눈물을 흘리는 반동적인 모습도 보인다. (영국인들의 그 유명한 냉소도 왕가 앞에선 헛기침을 하며 조용해지는가?) 부모님들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정치에 대해 말은 많지만

그래서 내겐 작가가 에이드리언에게 자신을 대입했다기 보다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고 느껴진다. 에이드리언은 주위 사람들을 풍자하고 비판하지만, 그 역시 작가에게 풍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식 유머의 한계. 작가는 애매한 낙관주의로 작품을 맺을 뿐, 13세 소년이 할 수 있는 이상의 현실인식과 사회비판은 전해주지 못한다. 인종차별에 있어서도, 싱 가족 등은 끝까지 타자이며 흥미로움 혹은 비꼼의 대상일 뿐이다. 앤드류 코완의 <돼지> 같은 작품과 비교해보면 이는 더욱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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