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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FIELD 1
JIM DAVIS 지음 / 그린북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가필드의 세계는 폐쇄적이다. 존과 가필드는 언제나 집안-둘만의 城에 틀어박혀 있다. 존은 돈도 별로 없고, 이렇다할 취미도 없고, 여자에게 인기도 없어(그리고 그럴만 하다는 것을 독자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일 끝나고 데이트도 없는 한마디로 '따분한 녀석'이다. 명절때면 한번씩 등장하는 그의 친척들은 뚱뚱하고 목소리 큰 시골농부들이라 존의 촌뜨기스러움을 드러낼 뿐이다. 그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은 그의 '남자답지 못함'을 더욱 강조한다. 미국 문화에서 남자란 개를 친구로 하지, 고양이는 독신여성, 정확히 말해 올드 미스나 과부들에게 적당한 애완물인 것이다.
가필드 역시 이쁘고 사랑스런 고양이가 아니다. 가필드의 가장 큰 특징, 거의 매회 강조되는 특징은 뚱뚱하다, 다이어트에 언제나 실패한다는 것인데 비만=게으름, 하층 계급이라는 기호로 읽히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가필드는 존과 다를 바 없는 loser이다. 둘은 그야말로 바퀴벌레 한쌍인 것이다. -물론 오디도 함께 있지만, 그는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 상대라 같이 묶기엔 좀 소원한 느낌이다. 심지어 같은 동물인 가필드도 오디와 소통이 잘 안되곤 한다. 이 만화에서 오디의 기능(역할)은 주로, 가필드를 바보로 취급하는 것이다. (바보한테도 당하는 상바보=_=)
존과 가필드의 관계는,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그것에 비하면 그로테스크해 보일 정도이다. 그들 역시 서로 말을 못 알아 듣지만, 그렇다고 말이 필요없는 그런 관계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가필드의 뚱뚱함, 게으름과 함께 이 만화의 가장 큰 소재가 되는 것은 존의 어리석음에 대한 가필드의 비아냥이다. 존은 항상 가필드의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싱글싱글하기만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러한 불소통과 오해는 존-가필드나 가필드-오디나 마찬가지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만화는 바보들이 서로를 비웃는 시니컬한 한마당같이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뒤로 물러나서 보자. 존과 가필드의 불소통과 오해, 비웃음은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다. 존은 그리 바보는 아니다(들떠서 바보같은 짓을 할때를 제외하면, 평소에 그는 가필드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잘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필드가 자신을 비웃을 때만 눈가리고 아옹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가필드에게 언제나 다이어트를 하라고 구박하면서도 결국 그가 살이 찔 정도로 음식을 주는 것(적어도 가필드가 찾을 수 있게 암암리에 집안에 음식을 놓아두는 것)은 존의 가필드에 대한 양면적 의존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적 행동을 보이는 의존관계야말로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애증이 투영된 것이기에. 자신과 상대를 동일시할 정도로 그 감정의 정도가 깊다는 것이기에. (가필드가 예쁘고 누구나 사랑할만한 고양이였다면, 존은 그토록 가필드를 사랑했을까?) 애정결핍 환자는 폭식증에 걸린다. 존은 대신 자신의 투영물인 가필드에게 애정을 쏟아붓는다. -많이 먹이는 것이다.
그리고 비만해 늘어져 있는 '루저' 가필드를 보면서 다이어트를 하라고 구박한다. 실패자인 자신을 타박하는 대신 그는 가필드를 들볶는다.배부른-애정에 그리고 먹이에- 생활에 길들여진 가필드에게 소위 고양이의 자유스러움이란 딴나라 얘기이다. 그가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비아냥거림'뿐이다. 그는 비아냥거리지만, 절대 집을 떠나지는 않는다. 그 차원 이상의 변화란 그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이 만화는 어린왕자와 여우가 얘기했던 '길들여진다는 것'의 플러스뿐 아니라 마이너스적 측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아마도 그래서- 나는 이 만화가 좋다. 최소한 그들은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자신에 대한 위안이며 에고에 집착해서 묶여진 관계라도, 최소한 둘은 그런 서로를 인정하고 다독일 줄 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맹목적인 인정도, 철저한 냉소도 아닌 적당한 유머감각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