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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 임은정 장편소설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첫 장부터 넘기기 힘든 책이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소설화한 작품이라는 정보를 알고 읽었음에도,,,
처음부터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읽을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나의 손은 이미 책장은 넘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뿔』을 다 읽고 나자마자 소설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정원섭'이라는 이름 석 자를 검색창에 검색하고 있었다.
좀 더 다른 내용을 원해서 검색한 것도 있었지만, 책만큼의 정보는 찾지 못했다.
(도가니를 읽었을 때도 그랬다.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으면 작가 이상의 정보 찾기는 쉽지 않다.)
" 정원섭 씨는 1972년 9월 27일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을 논둑에서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 7개월을 복역한 후 198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특사로 가석방 되었다. 정원섭 씨의 삶은 1973년 형이 확정된 순간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오직 누명을 벗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그의 집념은 결국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최초로 시국사건이나 사상범이 아닌 일반 형사 사건의 피해자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입증한 전무후무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뿔』
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책의 첫 머리이다.
이 책을 통해 느낀 정원섭이라는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70년대 민주화를 위해 싸운 청춘들과 다르지 않았고, 평범한 대한민국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하나의 사건과 혼란했던 시대가 만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의 대한민국 검·경찰과 사법도 썩을 대로 썩었지만, 이승만 박정희 시절은 말할 것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 시대에 빨리 범인을 잡아들이라는 윗선의 압박에 이기지 못한 경찰의 방법은 간단했다. 진짜 번인대신 가짜 범인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 희생자로 재수 없게 걸린 사람이 정원섭씨였고, 그 일로 인해 15년이라는 감옥생활과 총 40년이라는 무죄주장이라는 긴 싸움이 시작된다.
읽는 내내 단순정황과 거짓으로 가득한 자백, 그리고 경찰들의 증거조작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정원섭씨가 어찌나 불쌍하던지!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탄원서를 제출하고 두 달 반이 지나 마침내 대법원에서 결정이 났다. 2011년 10월 27일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완전히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내가 이긴 판결이 아님에도 전율을 느끼고 환희했다.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고 작년에 내려진 판결!
40년이나 기다린 무죄!
그리고 아직 사법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이범열, 박찬운 변호사와 그를 위해 탄원서를 써준 많은 사람들과 노무현 정부까지 나도 모르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원섭씨께 그의 가족에게 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정말 먼 길을 돌아온 진실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은 강자를 위한 것 이라는 말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진실 앞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강자 약자라는 말은 없었다.
또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실제 사건이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순옥 이라는 20살 어린 여자와의 사랑을 그림으로 다큐형식의 이야기가 아닌 소설로서 모양이 더 멋지게 만들어진 것 같다.
무죄판결을 받는 현재에서 일어나는 순옥의 또 다른 살인사건과, 정원섭씨의 어린 시절부터 춘천파출소장의 딸 사건이 터지기까지의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비교 아닌 비교로 두 이야기가 겹쳐 흥미진진 할뿐만 아니라 애틋하다. 또한 보상금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은 누구를 미워할 수 없게 그리고 있어서 또 다시 나를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79세의 정원섭씨
그의 싸움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아직 보상금 문제로 정부와 싸우고 있는 중인가보다.
정부는 무슨 양심으로 여태 판결을 지지부진하고 있는지 이해가 할 수 없다. 보상금이 그들의 다친 마음과 인생을 얼마나 보상해줄지 모르지만,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고 그들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줬으면 좋겠다.
정원섭씨가 워낙 고령의 연세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동안은 고향에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따로 큰 힘이 되어 드릴 수 없지만 마음으로 응원해드리고 싶다!
올해 안에는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