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아름답다 - 가슴 뜨거워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권은정 지음 / 나무와숲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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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몇 사람이나 만나고 살까? 그냥 지나치는 사람 말고 인격적 교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 게다가 이 사회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얼마나 될까?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는 건 무의식적인 일상으로부터 의식적인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는 인터뷰의 마술사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것도 마흔 명의 이웃을 데리고 말이다.

한겨레 21, 참여사회 등 전문 매체를 통해 ‘휴먼포엠’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정착시킨 권은정 기자가 소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어쩌면 대중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게 될 때, 저들은 곧바로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진정한 주체들로 인식된다. 사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이다.

가장 돈을 못 버는 변호사, 거리 청소를 하는 전직 교장선생님, 남들이 다 기피하는 손가락 정형수술 전문의사 등으로부터 야간 학교에서 근근히 공부하는 장애인,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재봉사로 근무하는 3번 시다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사는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간결하지만 꼼꼼한 기자의 인터뷰 속에 비춰진 저들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아니 고결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책은 범인으로서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준다. 부산 사하구청의 환경미화원이 제법 인기 있는 월간지의 제작자라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 기자는 그런 사람을 찾아 인터뷰를 통해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해 준다. 그리고 단지 겉 모습만 그럴듯한 이야기꺼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내면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진지한 반성이 일게 한다. 저자와 함께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독자들은 자신들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실 그녀는 독자와 무관한 타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객관적 삶을 통해 투영되고 있는 독자 자신들의 자아와 인터뷰하는 게 아닐까? 이 글들이 단편적으로 언론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을 때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이렇게 하나의 전집으로 묶여지면서 그녀의 인터뷰는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세상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복합 공간이다. 언론 기자, 화가, 청소부, 공장 노동자, 장애인, 트럭 운전수, 수녀, 대학 총장, 집배원, 제과점 운영자...그리고 또 한 사람 바로 나 자신. 이런 다양한 군상들이 하나의 주제로 묶여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저들은 각각 다른 삶의 의미를 창출하면서 저마다의 계급 영역에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20세기 사회학자들이 만들어준 아카데미적 의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저들은 하나의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진,선,미”-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참된 가치가 저들 안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포기했던 모더니즘의 가치인 인간 진보의 꿈이 사라진 것만은 아니었음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설사 그것이 사회학적 관점에서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발견을 믿고 싶다. “그 사람이 아름답다”에서 저자가 보여준 위대한 희망은 “사람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과 같은 사람이 있는 한 이 사회에는 희망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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