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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이성형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평점 :
쿠바의 항구 도시 아바나, 사회주의 국가란 특성 때문에 중미와 카리브해의 낭만 보다는 왠지 이데올로기의 자취로 얼룩져 있을 것만 같은 이미지로 다가오는 항구이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그 곳을 새로운 서정의 주체로 바꾸어주고 있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서구 사대주의와 오리엔탈리즘으로 인해서 우리의 관심에서 소원한 라틴 아메리카가 실제로는 모든 세계 문화를 종합한 진정한 세계화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은근한 글쓰기로 제공해 주고 있는 이 책은 어찌보면 기행문이라기 보다는 라틴아메리카 정치 문학 입문서의 역할도 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 이례적으로 소개된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객관적으로 접해볼 수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쿠바와 페루, 칠레, 멕시코 네 나라의 정치, 역사, 문화, 유적 등의 재료에 지방 특유의 음악, 먹거리, 시민의식 등의 조미료를 섞어서 먹음직스러운 특별 요리를 만들어 제공해 주고 있다. 특별히 그의 전공을 살려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상황을 자세하게 소개하므로 그 동안 낯설게만 느껴졌던 지구 반대편의 나라들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촉발시키고 있다.
미국의 경제 봉쇄정책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정치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카스트로 정부와 체 게바라(몇 년 전에 한국에 그의 평전이 소개되어 우리에게도 친숙한 남미의 혁명가)에 대한 쿠바인들의 사랑을 담은 쿠바편에서부터 세계 문화 유산의 보고인 마츠피츠, 아스테카 등에 남아 있는 잉카, 마야 문명의 중심 페루와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특이하게 긴 지형으로 남과 북의 문화와 전통이 서로 다른 칠레에 이르기까지 남미의 절반을 소개하고 있는 책. 저자는 자신의 의도를 이렇게 말한다. 유럽과 동남아로만 향해 있는 이 나라의 왜곡된 정신을 세계 문화가 종합되어 있는 세계화의 중심인 라틴 문화의 순수함으로 바꿔보겠다고.
저자와 함께 책을 타고 아바나를 떠나보면 그 곳엔 또 다른 세계의 삶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정치 경제 현실 속에서 그 지난한 삶의 역경을 돌파하고자 노력하는 그곳 사람들의 노력이 있다. 이런 절박한 현실 속에서도 정열과 낭만을 잃지 않는 저들의 여유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까르페 디엠이라 했던가! 저자가 소개하는 라틴 사람들은 그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도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혼합된 저들의 문화 속에서 그 애환을 달래고 있다. 그래서 저들의 음악과 미술(멕시코의 벽화 등), 전통 음식 등에 대한 이야기에 솔깃하게 된다.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의 매력은 잉카 문명과 마야 문명의 신비스런 자취에만 있다고 느껴왔었다. 한 가지 더 첨부한다면 페루의 나스카의 미스테리 서클 등에 대한 관심 정도였다. 그러나 이곳은 지리상의 발견 이후 원주민문화와 서양 문화가 가장 치열하게 결합된 곳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아시아 문화와도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어 결과적으로 전 세계 문화를 아우르는 종합 공간이 되어 가고 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그 새로운 인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을 갖고, 그곳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 주고 있다.
어쩌면 조금은 낯선 에스파니아어들과 그 언어에서 파생된 명칭들이 책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다 읽고 나면 오히려 그 요소들 때문에 더 즐거운 책읽기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마치 맛자랑 프로에 나오는 훌륭한 요리처럼 읽음직스러운 책이라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