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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 최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평점 :
남녀 평등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불란서 대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비로소 정착되면서 오랜 사회 현상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던 가부장적 권력 구도는 남성과 여성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무너지기 시작되었고, 결국에 가서는 남녀가 가지는 존재론적 동등가치를 기치로 하는 성해방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일반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은 여성이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서 남성 중심의 권력 기제가 낳은 사회적 산물에 대한 반대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미셀 푸코나 아네트 쿤 등은 그런 점에 깊이 첨착해서 인간의 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상 이런 흐름은 인간의 욕망의 기제를 존재론적 측면에서 다루고자 한 프로이트의 후계자들에 의해 심리학적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인간의 성의 본질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다룬 책이 있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남과 여'가 바로 그것이다. 철학과 인류학, 정신분석학, 자연과학 등의 범주를 넘나들면서 미 개척분야인 현대 여성학의 토대를 놓은 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녀의 지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존재가 부여안고 있는 해부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근본적으로 뛰어넘어 동일적 존재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바댕테르는 섹슈얼리티의 상호보완성의 시원성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자신의 논지를 시작하고 있다. 인간 현상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너무나도 분명해 보인다. 해부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그 둘은 영원한 나-너의 관계에 있어 보인다. 그래서 전통적 가치 체계에서 섹슈얼리티는 완전한 인간, 완전한 사회를 구성하는 완전한 상호보완적 존재라는 개념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하나와 다른 하나'로서 상호보완적 존재라는 저 개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바댕테르는 지난한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시작한다. 영장류의 궁극적 진화체로서의 인류는 존재적 본질을 사회문화적 코드에 따라 적응하였고, 남성과 여성의 이원적 분리를 자연스럽게 확립하였다고 그녀는 보았다. 그녀에 따르면 인류의 사상 속에 자리잡은 이원론적 개념의 영원성은 아마도 남녀의 구분이라는 이 섹슈얼리티의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던진다.
그녀의 이러한 논지는 전방위적인 깊이에서의 지성적인 탐구로 확립되어 간다. 원시 시대가 가지는 남녀의 상호보완적 체제에서부터 자연의 어머니로서 숭배받는 모권 사회, 그 후 신적 의식의 형성과 더불어 형성된 절대적 가부장 사회로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수만년의 역사에서 나타난 인류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토대로 섹슈얼리티의 역할 분담 및 지배 담론의 이론적 배경을 훑으면서 바댕테르는 섹슈얼리티의 기능성이야말로 사회적 유산이지 절대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인간본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저자의 의식은 '하나와 다른 하나'로부터 '하나는 다른 하나'로 논리적으로 전이되고 있다. 과거의 상호보완적 존재에서부터 이제 상호평등적 존재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권력과 지배 담론은 지극히 사회적 유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식의 전이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 간에 나타나는 권한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퍼즐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그녀의 에필로그는 그런 현상을 외면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의 과정에서 남녀의 역할에 대한 관념의 변화에 대한 바댕테르의 지성적 탐구는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면서도 그녀 역시 남녀가 가지는 해부학적인 차이만큼이나 그 존재들 자체의 차이의 시원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인류가 안고 있는 영원한 문제의 근원이 아닐까? 더러는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또는 주체성의 철학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려 하겠지만 그 역시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나마 인류 역사 전편을 통해서 사회 문화적으로 이 문제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던 바댕테르의 지성이 더 빛나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