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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ㅣ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5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달라지게 될 것이다. 미학적이 접근방식에서 먹는 것은 식도락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의미론적 접근방식에서 그것은 보다 본질적인 인간의 행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주의적 접근방식에서 볼 때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유명한 자연주의자로 활동하고 있는 헬렌 니어링이 차려놓은 '소박한 밥상'이 그 답을 주었다. 먹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다. 니어링은 먹는 것을 생명과 연결시켰다. 그것을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런데 자신의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하는 우리의 행위 속에 수많은 생명의 희생이 이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저자가 던지는 물음속엔 소박한 그녀의 철학 속에 담겨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도전이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채식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건강한 삶에 역점을 둔다. 니어링의 밥상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소박한 밥상은 채식주의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탐욕스런 현대 물질문명주의에 대한 경고의 퍼포먼스이다. 물론 그녀의 책은 그렇게 혁명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 철학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만큼 탁월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자연주의적 시각에서 설파한 루소의 혜안이 니어링의 밥상에 잘 차려져 있다.
그렇다면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 올려진 메뉴는 어떤 것인가? 싱그런 과일들, 요리되지 않은 단순한 야채들, 가공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식품들, 가급적 스스로 가꾼 자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공급된 식품들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위한 메뉴이다. 그리고 이 요리책 아닌 요리책 속에 그녀가 소개하는 메뉴들이다.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사실 너무 풍성하다. 이미 설명한 먹는 행위의 의미뿐만 아니라 소박한 밥상이 주는 많은 삶의 철학들이 넘쳐 흐른다. '최선의 요리는 요리하지 않는 것이다.' '요리에는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든지 음악이나 책에 몰두하고 싶다.' '인간만이 음식을 먹기 전에 조리한다.
육식을 반대하는 그녀의 이유는 이렇다. '그것이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이며, 해부학적으로 불건전하고, 건강하지 못하며, 비위생적이고, 비경제적이며, 미학적이지 않고, 무자비하며,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반면에 '식물과 과실, 씨앗, 견과를 먹고 사는 것이 이성적이고 친절하며 지각 있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채식주의자들에 의해서 단편적으로 제시되어 왔던 여러 철학적 의미들이 헬렌 니어링에 의해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그녀의 밥상은 단순히 소박한 밥상만은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소박하지만 정신과 영혼을 위해서는 더 없이 풍성한 밥상이다. 이런 밥상이 차려지기를 꽤 원했던 독자들은 이 책을 품에 안고 사유의 풍성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신의 축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