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밟다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9월
절판


"잘은 모르지만 말야, 짊어지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짊어질 필요는 없잔아."


뱀 마누라는 좋아, 아주 꼼꼼하지.
집안일도 잘 꾸리고 계산도 할 줄 알아.
밤일 또한 끝내주거든.
신경질도 안 부리고 무엇보다 말이 없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잠자코 이쪽을 바라보는 그 눈이 커다랗고 흰자위는 맑기만 하지.
약간 고집이 있긴 하지만 인간 여자들처럼
감정만으로 고집을 피우지는 않아.
그저 몸 자체가 좀 고집스럽게 생겨먹었을 뿐이야.
그런 만큼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거든.
아이는 못 낳아도 알은 낳고.
물론 그 알은 뱀밖에 못 되지만 뱀이 그걸로 좋다면 나도 불만은 없어.
애당초 애들은 좋아하지도 않고.


몇 몇쯤, 여자나 남자와 마음이나 몸이 연결되었다든거, 한동안 날마다 디니던 곳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밀고 당기던 일 따위가 몇 가지 떠오르긴 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것은 없다. 단지 지금 떠오르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무의식 중에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지만, 철이 들고 나서 무의식중에 잊어버릴 정도라면 그다지 몰두했다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담과 에블린 민음사 모던 클래식 57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절판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모든 게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제 어떻게 될까 문득 자문해 보면..."
"그럼 그떄부터 불안해지지. 난 심지어 이런저런 의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우린 인생이 뭘 뜻하는지 사실 아직 잘 모르잖아."
"아담은 늘 만족해. 저녁에 맥주를 마시고, 정원에 앉아 시가나 피우고, 그럼 이웃들이 울타리로 와서 말을 걸고.. 그는 심지어 이웃들과도 잘 통한다니까. 난 그런 점에 끌렸어. 그는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았어. 그거 알아? 아담은 독특했어. 대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은 죄다 조심성 많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었지. 하지만 아담은 완전 해방이었어. 그는 의견을 거리낌 없이 말했어. 하지만 이젠 늘 정원에만 앉아 있으니.."

"넌 모를 거야, 내가 여기 이 모든 것을 얼마나 만끽하고 있는지."라고 에블린이 말했다.
"다른 데서 살아 본 적은 한 반도 없었던 느낌이야."
몇 모금 빤 후 그녀는 담배를 눌러 껐다.



처음에 그녀는 그가 쓴 자신의 밀짚모자를 보았다.
아담은 펼쳐진 앨범을 악보처럼 들고서 거기 붙은 커다란 여자 사진들을 찢어내 불꽃 속으로 던져 넣었다.
서두르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그는 페이지를 넘겨 다음 사진을 꺼내 불 속으로 던졌다.
사진 한 장이 다 타지 않고 펄럭거리며 위쪽으로 날아오르다가 이내 오그라들며 열기 속으로 사라졌다.
에블린을 가장 무섭게 한 건 그의 행동이 보여주는 규칙성과 차분함이었다.
...
갑자기 아담은 마치 그녀가 거기 서 있다는 것을 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음 모자를 도로 썼다.
에블린의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
에블린은 자기 자신과 주위의 방을 보았다.
방은 실제 크기보다도 훨씬 더 커 보였다.
실로 거대해 보였다.
그녀는 방 한가운데 선 작고 알록달록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구판절판


"설명은 잘 못하겠어. 그냥 직감이야. 자네는 저 데모하는 친구들하고는 질이 달라. 데모하는 학생들은 목슴을 걸고 하는 게 아냐. 아직도 부모 밑에서 어리광이나 피우는 주제에 무슨 혁명이고 나발이고 있겠어?"
"너 어째 어린애 같이 구냐? 하나하나 다 물어보네. 아무튼 이 세상에는 뒤로 뭐든 다 해주는 브로커라는 게 있다는 것만 알아둬."
"진짜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은 패거리 짜는 게 좋아서 전쟁을 하는구먼."
"너는 걸핏하면 그런 소리를 하는데, 그래도 도쿄가 없으면 일본인은 기운이 쪽 빠져버려. 다소 불공평하긴 해도 지금은 일단 탑을 높직이 쌓아올릴 시기가 아니겠어? 옆으로 쌓는 건 나중에 해야지."
"내가 아들도 손자도 없잖아. 그러니 자네 아들이라도 안아보고 싶어. 혹시라도 잡힌다면 자네는 아무것도 안 했고 내가 다 했다고 할 거야. 그러니 권총 뽑은 경찰한테는 덤비지 마."

'남의 위에 선다는 것은 가장 겸허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한껏 들뜬 일본에서 그런 것을 자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며 아지랑이처럼 바탕 없는 번영에 집단적으로 도취되어 있다.'
'400년 전에 지배자가 휘두르는 칼날에 순순히 굴복해버린 이 나라의 민족성은 참된 자유를 알지 못한 채 근대로 돌입해버렸다. 그래서 사회주의 운동도 탁상공론에만 그쳐버리곤 한다. 학생의 봉기도 어딘가 혁명놀이처럼 유치한 면이 있다.'
"도쿄 올림픽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급조된 번영을 바탕으로 거행되려 하기 때문이에요. 이 나라 프로레타리아는 완전히 짓밟혀 발판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그대로에요. 기걸 용서한다면 국가는 점점 더 자본가를 우대하겠지요. 누군가 반기를 들지 않으면 민중은 앞으로도 계속 권리를 받탈당한 채 살아야 합니다."

'권력의 편에 서게 되면 사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인은 거치적거리고 열등한 생물로 보인다. 권력을 일단 손에 넣으면 그리 쉽게는 놓지 못하겠구나. 요컨대 세상은 윗분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구판절판


‘천황제는 이런 때 참 편리하구나.. 완전하신 공인이 정점에 있어주는 덕분에 이 나라 지배층은 언제라도 봉공인이라는 입장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가혹함과 맞서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천황제는 일본인의 영원한 모라토리엄인 것이다."

"진심으로 혁명을 일으킬 마음이 있다면 천황을 죽여"

‘형사가 된 지 6년째가 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만 쌓여갔다. 그럴싸하게 밝혀낸 범행 동기라는 건 공술 조서와 공판을 위해 종이쪽에 적어놓은 것일 뿐, 애당초 인간의 마음속이라는 건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응,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다들 금세 잊어버리는데, 그 범인은 아직 살아 있어."

"참말로 도쿄에서 복이란 복은 죄다 독차지한 것 같구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가오리의 팬이라면 2번째 테마 남성친구의 방이 흥미로울 것 같아요^^ 본의는 아니고 본의는 아니나 득을 보는 가오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